연습 삼아 가본 캠핑, 이게 되네?!
캐캐묵은 아빠의 텐트를 발견한 이후, 공짜 아닌 공짜로 텐트가 생긴 김에 본격적으로 캠퍼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삶이나 여행에 있어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 나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텐트 하나만 달랑 가지고 캠핑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더구나 캠린이 주제에. 그래서 일단은 빈대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빈대캠핑으로 우리의 캠핑 스타일에 맞는,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장비들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여기저기 빈대 붙어 다니며 리스트업 해둔 장비들은 1 캠핑 1 장비, 캠핑을 갈 때마다 하나씩 야금야금 구입했다. 여기에 늘 빈대를 붙는 우리를 안쓰럽게 지켜봐 주는 주변 지인 캠퍼들의 기부가 더해지자 어느덧 창고로 쓰고 있는 안방 화장실이 캠핑장비들로 가득 찼다. 가지고 있는 장비들을 꺼내 거실에 쫘~악 펼쳐보니 이제는 더 이상 빈대캠핑을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이게 될까...? 우리 차 경차인데...
소싯적 오락실 테트리스 장인이었지만 사람 4명 타기도 답답한 경차에 이 많은 장비들을 싣고, 거기에 나와 아내의 몸뚱이까지 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띵동! 그 와중에 울리는 캠핑장 예약 확정 문자 알림. 이제는 빼박캔트.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 산 장비들도 개시하고 짐들이 우리 차에 다 실리는지도 확인해 볼 겸 연습 삼아 캠핑을 가보기로 했다. 최대한 욱여넣어보고 정 다 안 들어가면 뭐, 그냥 버리고 가면 되니까. 앞문, 뒷문, 그리고 트렁크까지, 열 수 있는 차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대학을 졸업한 지가 어언 13년이 다 되어 가지만 몸속 깊숙이 어딘가 숨어있을 공대생 유전자의 공간지각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요건 저기 넣고, 저건 요기 넣고, 자로 잰듯한 눈대중으로 어떤 짐을 어디에 어떻게 넣을지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놓았다.
"오케이! 됐어! 되겠다!"
짐 실을 준비 끝! 이제 힘을 쓸 차례. 물론 오롯이 나의 몫이다. 아내는 그저 거들뿐. 먼저 부피가 크고 길이가 긴 무거운 것들로 트렁크와 뒷좌석 바닥을 채웠다. 요령은 최대한 평평하게 쌓기. 밑바닥 공사가 잘 돼야 잘 쌓을 수 있을 테니. 다음은 부피, 길이 관계없이 세워두면 공간활용도가 좋은 짐들을 뒷좌석에 기대놓았다. 마지막으로 따로 모양이 없고 가벼우면서 떨어져도 괜찮은 것들을 위에 얹었다.
"오~ 우리 차 크네! 남네 남어"
"오빠, 얘도 차야."
물론 내가 잘 쌓은 것도 있겠지만(^^V) 다 때려 넣고 보니 또 생각보다 짐이 별로 안 돼 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맥시멀리스트 아닌가 싶었던 게 민망할 정도. 개인적으로는 저게 꼭 있어야 하나 싶은 것들도 몇 가지가 있긴 하나 그렇다고 어디 가서 맥시멀리스트라고 명함은 절대 못 내밀 것 같다. 아무튼 경차에 짐 싣기 성공!
"우리도 이참에 부부캠퍼가 되어볼까?"
무슨 선언하듯 질러버린 내 말을 듣고 아내는 걱정이 앞섰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어린 시절 가족끼리 꽤나 자주 캠핑을 갔었다. 난 찐 캠린이지만 사실상 아내는 고수까지는 아니어도 서당개 경력 몇 년으로 어깨너머 배운 게 있는, 내 기준에 캠핑 경험만큼은 중수정도는 되었다. 경험은 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이유는 가족캠핑에서는 늘 장인어른이 슈퍼맨처럼 모든 걸 도맡아 하셨기 때문.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아빠는 평소에도 슈퍼맨이지만 캠핑장에서는 한층 더 크고 강한 슈퍼맨이 된다. 늘 슈퍼맨과 함께 캠핑을 하다가 이제 막 캠핑을 시작해 보려는 일반인, 일반인 중에서도 캠린이 남편과 함께 캠핑을 가려니 어릴 적 추억에서처럼 릴랙스 체어에 앉아 팔짱 끼고 편하게 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역시 빗나가질 않는다.
텐트까지는 스무스했다. 몇 달 전 빈대캠핑에서 피칭 연습을 해본 게 신의 한 수였다. 여기까지는 아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차에 앉아 오구오구 궁디 팡팡을 해주며 칭찬으로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기세를 몰아 처음 개시하는 타프를 펼쳤다. 야침 차게 펼치긴 펼쳤는데 사이즈부터 텐트의 2배 정도는 되다 보니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역시나 캠핑 중수답게 눈치 빠른 아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거들었다. 타프지옥의 서막이다.
일단 서로가 생각하는 완성된 타프의 모습이 달랐다. 아내는 어린 시절 아빠가 쳤던 타프의 모습을 생각한 반면, 난 빈대캠핑을 다니며 봐온 이런저런 방식들 중 현재 우리 사이트에서 공간을 가장 넓고 여유 있게 쓸 수 있겠다 싶은 방식을 그리고 있었다. 비록 생각은 달랐으나 여기까지도 아주 나쁘진 않았다.
"그럼 오빠가 생각하는 대로 해봐!"
일단 아내가 일선에서 물러나 내 의견을 지지해 주며 나에게 일임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뚝딱뚝딱 내가 그린 그림을 어떻게든 완성시켰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폴대 2개 중 하나 세우는 것도 갈팡질팡, 여기 세웠다 저기 세웠다를 반복했다. 팩도 박았다 뺐다, 끈도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바닥에 펼쳐놓고 봤을 때 생각했던 그림이 실제 폴대를 세워보니 그대로 그려지지 않았던 것. 단순히 모양의 문제뿐만 아니라 동선, 공간 등도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텐트 위치부터 다시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멘붕. 이런 상황에 안 답답해할 사람 어디 있으랴? 심지어 나도 내가 답답하거늘. 참다 참던 아내가 결국 다시 등판했다.
지휘권을 아내에게 넘기고 일꾼 모드 ON. 아내의 방식이 절대 틀리거나 잘못된 건 아니었다. 다만 넓은 사이트의 일부만을 사용하는 격이라 넓고 여유 있는 공간활용에 꽂혀있는 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티격태격했던 것인데 이제는 내가 내려놓아야 할 때였다. 아내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다다랐고, 한창 신선할 때 사온 문어숙회와 막걸리가 점점 미지근해져 가는 중이었고, 우리보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이미 집 짓기는 물론 자리 펴고 앉아 지글지글, 보글보글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알량한 자존심도 상하고 부럽기도 하면서 창피하기도 한 게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이제는 정말로 집을 완성해야 할 때였다. 그래야 얼른 저녁 준비도 할 수 있으니까.
캠핑장으로 오는 내내 아내는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 집 짓기를 마치고 릴랙스 체어에 앉아 애피타이저 겸 셀프웰컴 드링크로 문어숙회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느지막이 들어오는 다른 캠퍼들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모든 것이 아주 완벽하게 망했다.
"미안^^;; 다음엔 잘해볼게...(끙...ㅠㅜ)"
"그래, 다음엔 잘해봐. 다음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헉)....."
가까스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집 짓기를 마무리하고 3시간 늦은 애피타이저 겸 웰컴드링크를 즐겼다. 살짝 꽁~ 해 있던 아내도 문어 한 점, 막걸리 한 모금에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이제야 캠핑 온 기분을 좀 내야겠다 싶어 릴랙스체어를 뒤로 젖히고 본격적으로 여유 좀 부려볼까 하는 찰나,
"오빠 모해? 우리 저녁 안 먹어?"
"어? 응 먹어야지. 저녁."
문어숙회와 막걸리를 다 먹기도 전에 바로 또 저녁이라니. 허나 시계를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주변에서도 이미 지지고 볶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냄새를 타고 들려왔다. 남아있는 문어 몇 점과 막걸리를 후딱 해치우고는 셰프모드 ON. 저녁 메뉴는 기름이 많이 튀어 캠핑장에서만 해 먹는 스테이크. 고기는 안심과 부채살로 준비했다. 고기 시즈닝 후 숙성을 시켜놓고 버터, 타임, 양송이, 올리브유 등 나머지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사이 아내는 가리비찜을 준비했다. 본래 조개류 찜에 일가견이 있어 능숙하게 냄비를 채우고는 불위에 올렸다. 가리비술찜은 이제 보글보글 끓으며 애들이 입 벌리기만을 기다리면 끝! 다시 난 스테이크로 돌아와서, 꺼내 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적당히 달군 후 숙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시켜둔 고기를 올렸다.
우리 부부의 스타일은 미디엄 레어. 앞뒤로 빠삭하게 겉바를 만들어준 후 버터와 타임으로 풍미를 입히고 고기 주변으로 양송이를 둘렀다. 양송이에 물이 고이며 먹기 좋게 익어갈 때쯤 고기를 팬에서 구했다. 도마 위 상온에서 잠시 또 숙성의 시간을 갖게 한 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슥싹슥싹. 과연 떼깔이 잘 나왔으려나...
"오~ 제법인데?"
일단 비주얼은 합격! 속이 완전히 익지 않고 약간 핏끼가 있는 게 겉바에 이어 속촉에도 성공을 직감했다. 한 점씩 입에 넣고 씹는 순간. 팡~~~ 입 안에서 육즙이 터진다. 소스나 소금이 필요 없을 만큼 간도 적당했다. 완벽하게 구워진 스테이크 홀릭이 된 사이 가리비들이 입을 벌리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냄비채로 탁자에 옮겨 가리비살을 국물에 적셔 한 입에 쏘~옥. 쫄깃한 식감과 달콤고소매콤한 국물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 순간 필요한 건 뭐...? 당연 와인이지~ 와인과 페어링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메뉴가 어디 있으랴? 스테이크 한 점에 레드와인 한 모금, 그리고 가리비술찜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적시면 다시 또 레드와인이 당긴다. 그야말로 출구 없는 마성의 조합.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다 먹어 없애는 것뿐이다.
"하... 캠핑은 이래서 문제야..."
"왜?(눈치 보며 긴장 중;;;)"
"아까 타프 칠 땐 그렇게 싫었는데 다 치고 노니까 또 좋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음은 없다던 아내였는데 다행히 다음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캠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우정아가 부릅니다. 도망가자.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평소 캠핑할 때 BGM으로 즐겨 틀어 놓는 노래인데 이번에는 정말로 가사처럼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가능한 한 빨리. 최대한 아무도 모르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이토록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된 건 약 30분 전. 캠핑 후 바로 이어서 다른 여행 스케줄이 잡혀있어 체크아웃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철거를 시작했다. 전날 힘들게 세운 게 무색하리만큼 철거는 신속허무하게 진행됐다. 마치 아무도 머무르지 않았던 것처럼 마지막 쓰레기 한 톨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고 이제 떠나려는 순간,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뭐지? 브레이크를 안 밟았나? 사이드 때문인가? 기어 때문인가? 아무리 원인을 찾으려 해 봐도 거의 습관에 가까운 시동 거는 행위에 잘못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이런 경우는 딱 하나, 배터리 방전. 하지만 밤새 시동을 걸어 놓지도 않았을뿐더러 차문도 잠가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일단 보험을 불렀다. 30분 안에 도착한단다. 다행히 다음 체크인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던 터라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기다렸다. 일찍 철수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다음 캠퍼와 사장님께 민폐를 끼칠 뻔했다.
우리 사이트는 캠핑장 중에서도 가장 안 쪽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해서 차가 들어오게 되면 모든 사이트를 지나올 수밖에 없다. 그 말인즉슨, 모든 캠퍼가 이 상황을 알게 된다는 말. 뭐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그래도 나름 삐뽀삐뽀 키고서 요란하게 등장할 텐데, 그럼 호기심에 한번쯤 기웃기웃할 텐데, 차보다는 쪽팔릴 걱정이 앞섰다.
삐뽀삐뽀~
아니나 다를까 동네방네 소문 다 내려는 심산인지 저 멀리 입구에서부터 요란하게 등장했다. 오늘따라 주황색 경광등이 유난히 휘황 찬란해 보였다. 진단 결과 예상대로 배터리 방전이었고 기사님은 배터리 교체나 배터리 충전 관련된 부분을 점검받아보라 코멘트를 남기고 떠나셨다. 떠날 때는 조용했다. 소리는 끄고, 경광등만 번쩍번쩍. 그리고 다음은 우리가 떠날 차례. 차마 좌, 우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오로지 앞만 응시하며 캠핑장 안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액셀을 밟았다. 출구까지는 차로 10초도 안 걸릴 거리지만 체감상 1분은 걸린 느낌. 뒤 돌아보지 말고 이제 진짜, 도망가자!
하솜캠프
'하얀 솜사탕'의 약자라서 하솜캠프다. 사이트 위치에 따라 호불호가 있다. 기본적으로 관리동에 가까울수록 화장실, 개수대, 샤워실이 가까워 좋지만 멀어질수록 멀어지는 건 둘째치고 언덕이라 한 번 왔다 갔다 할 때면 소화가 다 되는 느낌. 제법 운동이 된다. 대신 그만큼 프라이빗함이 커진다. 사이트는 파쇄석으로 공간은 넓은 편. 특히 개수대와 샤워실 시설이 깔끔하게 잘 되어있다. 뷰는 딱히 볼 게 없다. 산 속이라 밤에 별은 잘 보인다. 재방문의사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