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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May 14. 2017

폴란드 최대의 종, 지그문트 종의 새로운 전설

그곳에 운명적인 만남이 있을 지어니...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르네상스 건축물, 지그문트 예배당(Kaplica Zygmuntowska)이 있는 바벨성 대성당으로 들어왔다. 파이프 오르간, 십자가, 예수님 상, 스테인드글라스. 비록 마감이 이 1시간도 채 안 남았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천천히 둘러봤다.

티켓 뒷면에 있는 추천경로

추천경로에 충실하게 한 바퀴, 두 바퀴. 보고 또 보면서 감동에 젖어 있는데 보안요원이 나를 잡아 세웠다.


'내가 뭐 잘못했나?'


아무래도 성당은 신성하고 예를 갖추어야 하는 곳이기에 모자나 사진 촬영이 불가한 곳이 많다. 이 곳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애초에 모자는 벗고 핸드폰은 가방에 넣어 꺼내지 않았다. 이 두 가지 말고는 딱히 걸릴만한 것이 없었기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혹시 지그문트 종탑 다녀오셨나요? 종탑 운영이 3시 반 까지라 안 가셨으면 먼저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순간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면서 함께 긴장도 풀어졌다.


"오케이! 땡큐 베리 머치!"




만사 제쳐두고 종탑으로 오르는 입구를 찾았다. 티켓 뒷면의 지도를 보고 찾아갔지만 아무리 찾아도 올라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놓친 것일까 싶어 다시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흰색 푯말이 보였다.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를 표시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문은 아니었다. 이러니 못 찾았을 수밖에...

쥐구멍 같은 종탑 입구

몸을 접어 입구로 들어갔다. 계단은 사람 한 명 딱 들어갈 정도였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지금 오르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조급한 마음에 두 칸씩 성큼성큼 올랐다.

종탑을 오르는 계단

꼭대기에만 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중간중간에도 종이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가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꼭대기의 종보다는 작았다. 그래도 제법 컸다. 웬만한 남자 키보다 크고 통로를 꽉 채울 만큼 품이 넓었다.

계속해서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는데 인적이 느껴졌다. 계단에서 두 청년이 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이 친구들은 민망했는지 웃으면서 나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던 나도 되려 민망해져 웃으며 지나갔다. 그렇게 계속 올라 마침내 종탑의 꼭대기에 도착!

그리고 그곳에, 폴란드 최대의 종, 지그문트 종(Bell "Zygmunt") 이 있었다.




지그문트 종은 1520년에 만들어진 폴란드에서 가장 큰 종이다. 전체 높이 460Cm, 무게는 12,600kg에 육박한다. 종의 중심을 왼손으로 만지면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 때문인지 종의 중심이 대머리 할아버지 마냥 맨들맨들하다. 나도 꼭 다시 오고 싶은 마음에 마르고 닮도록 열심히 만져댔다.

지그문트 종(Bell "Zygmunt")
벽에 붙어 있는 지그문트 종에 대한 폴란드어 설명




종을 문지르고 있는 사이 오르는 중간에 마주쳤던 두 친구가 도착했다. 아까의 기억 때문일까? 서로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는 뒤늦게 올라온 그 친구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종 맞은편에 있는 종탑의 창가로 향했다.

종탑은 종탑으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크라쿠프 구시가지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에메랄드 색과 붉은색의 지붕이 어우러진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유럽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지그문트 종탑 정상에서 바라본 크라쿠프 구시가지

한껏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옆에서 낑낑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두 친구들이 서로에게 인증샷을 찍어주고 있었다. 종이 워낙에 크다 보니 종과 사람을 모두 담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제가 같이 찍어 드릴까요?"


"좋아요. 감사합니다!"


사실, 올라올 때부터 서로 독사진만 찍어주는 모습에 내가 같이 찍어 줄까란 생각을 스치듯 하긴 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브로맨스에 끼어드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기도 해서 그냥 올라왔다. 이제는 올라와서 종도 만졌고 사진도 찍었고 여유로운 상황이 되니 아까의 마음이 다시 되살아 난 것 같았다. 둘에게 종을 만지는 포즈를 부탁하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저희도 하나 찍어줄게요!"


덤으로 나도 종 만지는 사진을 하나 얻었다.

급하게 포즈를 잡느라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잡아버렸다, 그리고 감출 수 없는 어색한 미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서야 우리는 인사를 했다. 이 친구들은 폴란드 우쯔(Łódź)라는 곳에서 함께 유학 중인 터키 친구들이었다. 알다시피 터키와 한국은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형제 국가라는 이름하에 굉장히 서로에게 친숙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쉽게 마음이 열렸다. 창밖을 바라보며 2002년 월드컵 3,4위전을 시작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고, 불과 몇 분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사실 우리는 일행이 두 명 더 있어. 그중에 한 명이 예전에 한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서 한국말도 조금 알고 한국 친구도 조금 있어. 걔가 널 보면 반가워할 거야. 특별한 계획 없으면 우리랑 같이 갈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아주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Sounds Great!!!"




이 친구들을 만난 건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마감이 다가오는 시간에 대성당에 가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보안요원을 통해 종탑이 30분 일찍 마감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부랴부랴 종탑에 올랐고, 거기서 이 두 친구들을 만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다른 두 친구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현지에서 친구가 생겼고 혼자가 아닌 우리로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혼자 여행이 처음인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최고의 추억이자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종탑을 내려가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다른 두 친구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행을 출발할 때 비행기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온종일 걷느라 조금 지쳐있던 내게 다시 에너지가 솟구쳤다.

과연 폴란드에서 만난 터키 친구들과 어떤 추억을 만들고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내려가기 전 셋이서 함께, 서로 친해져 표정과 포즈 모두 한결 편해졌다 (가운데가 쌔미, 우측이 압둘라)




나는 지그문트 종에 얽힌 나만의 새로운 전설을 썼다. 바로 '지그문트 종탑에서 사진을 찍어주면 친구가 된다'는 전설이다.

만약 언젠가 내가 지그문트 종탑을 다시 찾는다면 종의 중심을 왼손으로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쌔미와 압둘라의 만남을 추억하기 위해, 그리고 또 새로운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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