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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May 14. 2017

폴란드에서 느낀 터키의 정

너흰 감동이었어

커버 사진 - 좌측 남:쌔미 / 중앙 남: 오스만 / 우측 남: 압둘라 / 좌측 여: 이스마


폴란드 크라쿠프 여행 이틀째.

바벨성 지그문트 종탑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압둘라쌔미의 인연은 오스만이스마와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만남으로 내 생에 처음으로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을 했다. 그동안 관광 명소, 맛집, 풍경에만 집중했던 내 여행에 새로운 방식의 여행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다른 여행보다 더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감동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준 친구들, 내 폴란드 여행을 빛내준 친구들을 그리운 마음을 담아 추억하며 한 명씩 떠올려 볼까 한다.




터키 국적의 이 친구들은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교환 학생으로 폴란드 우쯔(Łódź)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와 만났을 때는 방학이라 폴란드의 다른 도시로 여행을 온 것이란다. 놀라운 건 이 친구들도 원래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압둘라와 오스만은 터키에서부터 대학 친구였지만 쌔미는 우쯔에서 만났고 이스마는 크라쿠프 여행 중 호스텔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 중에 만난 셈이다.




우리는 바벨성을 빠져나와 어디 가서 무얼 할지 토론의 장을 펼쳤다. 다들 유들유들한 성격이라 뭐든 좋단다. 그렇다면, 배가 고팠던 내가 슬며시 제안을 했다.


"배고프지 않아? 뭐 먹으러 갈까?"


내 제안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 어디로 가서 무얼 먹느냐! 이것이 문제였다. 뭘 먹을지는 몰라도 일단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야 먹을게 많으니 일단 그쪽으로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역시나 모두 오케이! 때마침 친구들이 구시가지 광장을 안 가봤단다. 잘됐다 싶었다. 나는 이미 구시가지 광장을 한 바퀴 쭉~ 봤기에 가이드처럼 안내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크라쿠프 구시가지, 중앙시장 광장으로 향했다.




크라쿠프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구시가지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이나 성당과 같은 특별한 곳이 나오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길거리 벤치에 앉아 오스만이 가지고 있던 초콜릿도 나누어 먹었다. 함께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추억을 쌓았다. 쌓이는 추억만큼 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세계 동전 수집가, 압둘라

압둘라는 26살, 네 명의 친구들 중 가장 붙임성이 좋다. 지그문트 종탑에서 내가 처음 말을 걸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함께 다니자는 제안도 먼저 해주었기에 다른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었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압둘라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기운이 있다. 어설픈 내 영어 농담에도 가장 핫한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나에게 자기보다 어리게 보인다며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 압둘라에 나는


"더 나이 들면 네가 더 어려 보일 거니까 걱정 마!"


라고 토닥토닥 격려해주었다.

압둘라와 함께 #1  (photographed by 이스마)
압둘라와 함께 #2 (photographed by 이스마)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사러 같이 마트에 들어갔다. 큰 물 두 개를 집더니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나도 돈 있다고 얘기하자 웃으면서


"나도 알아! 그냥 내가 원해서"

(I Know! I just want!)


생수 한 통에 이렇게 감동받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압둘라가 선물해준 생수, 새로 물을 사서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물만큼은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아껴마셨다

압둘라의 취미는 세계 동전 모으기다. 주로 동전을 모으지만 이따금씩 화폐도 수집한단다. 그래서 마지막 만남 때 헤어지면서 우리나라 천 원짜리 지폐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아 선물해 주었다. 생수에 대한 보답으로 뭐라도 주고 싶던 찰나에 지갑에 천 원짜리가 보여 마침 생각이 났다. 큰 액수가 아니냐며 극구 사양하는 참에, 폴란드 돈(즈워티)으로 환전된 금액을 보여주고 한국의 물가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결코 큰 액수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키고서야 줄 수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애연가, 쌔미

틈만 나면 흥얼거린다.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운다. 나이도 제일 어린것이.

21살인 쌔미는 음악을 사랑하는 기타 쟁이이자 우리들 중 유일한 흡연자, 담배 쟁이다.

담배를 피울 때면 이스마가 잔소리를 많이 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담배를 놓지 않았다. 이스마와 은근히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그러면서도 둘은 다른 어떤 친구들 보다도 친하게 지냈다. 쌔미는 사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스마를 위해 묵묵히 하루 종일 사진작가가 되어주기도 했다. 오늘 하루만 이스마를 찍어준 사진이 100장도 넘는단다. 정작 자신 사진은 50장도 안되면서...


나의 고정관념? 혹은 편견? 일지 모르겠지만 예술 인적인 성향이 있어서일까 혼자 자아도취해서 흥얼거리거나 셀카를 찍느라 뒤쳐지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구시가지를 걸으면서 대화는 그리 많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직전, 숙소에서 작은 선물 하나로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친구다. 쌔미가 나에게 준 것은 기타 칠 때 쓰는 기타 피크였다. 선물을 건네면서 자신의 영혼이 깃든 아주 아주 소중한 거라고, 이걸 가지고 있으면 자신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는 거라고 했다. 이렇게 주는 선물을 터키에서 '테제네' 또는 '무즈라'라고 한단다.

쌔미의 영혼이 깃든 기타 피크

농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에게 농구화는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다. 그렇기에 기타를 사랑하는 쌔미에게 이 기타 피크가 어떤 물건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처럼 소중한 걸 선뜻 선물로 준다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맙고 감동받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맙게 받고서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당장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미안함을 표시하자 쌔미 역시 자기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라며 괜찮단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감동의 물결로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으로 남겨 함께 추억을 간직하는 것뿐이었다.

선물 증정식!


사진과 한국을 좋아하는, 이스마

22살 꽃다운 나이인 이스마는 한국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다. 특히 이승기의 광팬, 일명 빠순이였다. 한양대학교에서 4개월간 공부한 적이 있어 한국어도 조금 알았다. 대화는 못하고 단어 정도만 말할 수 있었다. 종종 나에게 이게 한국말로 뭐냐며, 이게 맞냐며 묻곤 했다. 한국어를 잘하고 싶어 하는 열정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터키에서 휴양지에 놀러 갔다가 지금의 한국인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현재 남자 친구는 강원도 삼척에서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가오는 9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국에 올 거란다. 나는 그때 꼭 연락하라고 했다.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겠다며...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스마는 보통의 여대생들처럼 사진 찍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이스마의 전담 사진기사였던 쌔미는 본인 사진보다 이스마 사진이 더 많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나도 이스마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스마와 많은 사진을 남겼다. 한국 여대생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셀카를 찍을 때 각도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것이다. 일명 얼짱각도라는 건 전혀 몰랐다. 내가 말해주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화면에 찍고자 하는 사람, 사물, 배경만 들어가 있으면 주저 없이 화끈하게 '찰칵!' 셔터를 눌렀다. 얼짱각도는 한국만의 트렌드인가 보다.

크라쿠프 길거리에서는 큰 도넛 모양의 빵을 파는 리어카 노점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스마가 저 빵을 먹어 봤느냐고 물었다. 안 먹어 봤다고 하자 터키에서도 파는 빵이라며 나에게 맛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성큼 리어카로 다가가 두 개를 주문했다. 내가 사겠다며 돈을 꺼내려하자 괜찮다면서 먼저 선수를 쳤다. 내가 만난 친구들이 그런 건지 아니면 터키 사람들은 원래 다 이러는지, 뭔가를 해주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름 모를 크라쿠프 국민 빵
이 빵도 아껴 먹었다, 아침으로 다 먹어치우기 전 마지막 빵 영정사진


핸썸 가이, 오스만

잘생긴 외국 배우 같은 오스만은 내성적인 친구다. 말수가 적었다. 같이 다니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이도 못 물어봤다.

그렇지만 내성적이라고 해서 소극적이거나 소심하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조용히 혼자 하곤 했다. 구시가지 풍경 찍는 걸 좋아해 종종 혼자 뒤처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한 뜬금없이 혼자 벤치에 앉아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 모습이 꼭 자유로운 낭만주의자 같았다. 그러다가 우리끼리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뒤늦게 나타나 뒷배경을 책임졌다. 그래서 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뒤에 있다.

왼쪽 뒷편에서 홀로 만세를 외치고 있는 오스만
어느 새 합류한 오스만
뮤지션 다운 쌔미의 제스처, 뒤에서 슬금슬금 오고있는 오스만
오스만 도착!


내가 알려준 한국식 미니 하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종일 함께 했던 하루가 다 가고 깊은 밤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폴란드의 밤 11시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나 밖에서는 더 이상 놀거리가 없었다.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한 끝에 내가 친구들의 호스텔로 놀러 가기로 했다. 다행히 외부 손님이 방에는 들어갈 수 없어도 로비까지는 출입이 가능했다. 다만 음주는 금지되어 있는지라 아쉬운 대로 차를 마시며 반갑고 즐거웠던 우리의 만남을 서서히 마무리 지어갔다.


우리가 만난 다음 날,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나치 독일이 저지른 끔찍한 역사의 현장, 아우슈비츠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난 따로 투어를 예약해놓은 상태였기에 친구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혹시나 시간이 맞으면 내일 또 보자는 작은 희망을 남겨둔 채 내 숙소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사진은 역시 미니 하트!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늦은 시각이라 거리는 조용했다. 폴란드 사람들도 거의 돌아다니지 않고 차도 없는 크라쿠프 거리가 날 더 허전하게 만들었다. 다시 또 외로움이 밀려왔다.


돌아가는 길에,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니 정말 꿈만 같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하루 반나절을 함께한 시간이 여전히 생생했다. 과연 내가 나중에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꿈같은 터키 친구들과의 여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다음 날, 아우슈비츠로 출발 전 연락을 했을 때 친구들은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예상컨대 내가 도착할 때쯤 구경을 마치고 나올 것 같았다. 나오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서둘러 출발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 존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연락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구경 중이라는 답장이 왔다.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문제는 이 넓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금 서있는 와이파이 존을 떠나면 우린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나머지는 운에 맡기기로 하고 일단 안으로 입장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정말 이루어졌다. 한 15분 정도 돌아다녔을까? 멀리서 호리호리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쌔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인사를 했다. 쌔미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놀랬다. 쌔미를 따라 다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어제의 멤버가 다시 모두 모였다. 다만 나의 투어 시간이 곧 다가와 오랜 만남은 가지지 못했다. 그렇게 진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어제 하루 동안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연습장과 펜을 꺼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꼭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각자 한 명 한 명에게 짧은 영어지만 하고 싶은 말과 고마움을 전했다. 세계 동전 수집가 압둘라에게는 특별히 천 원짜리에 적어주었다. 꼬깃꼬깃한 지폐, 스프링 연습장을 뜯어 지저분한 종이,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친구들은 굉장히 좋아해 주었다. 반듯하게 접어 고이 품속에 간직해 주었다. 그 모습에 난 또 고마움을 느꼈다. 정말이지 고맙고 또 고마운 친구들이다.


우리의 진짜 마지막 사진, 내가 준 작은 선물과 함께 아우슈비츠에서


웅장하고 유서 깊은 성당, 유명한 전통음식, 아름다운 절경. 이 모든 것 위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인 것처럼 여행에서도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 이토록 행복하다는 것을 터키 친구들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따듯한 정과 배려심이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진짜 제대로 된 여행을 한 기분이다.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내 폴란드 여행은 빛났고, 아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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