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볼러 May 28. 2017

바벨성, 그 안에 폴란드는 여전히 찬란했다

유유자적 바벨성을 거닐다

과거의 번영과 영광이 살아 숨 쉬는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

그곳에 11세기부터 17세기의 폴란드 왕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크라쿠프 남쪽 언덕 위에서 비스와 강을 품고 있는 폴란드 천년고도의 상징, 바벨성(Wawel Royal Castle)이다.

나는 이 곳을 찬란했던 그 옛날 폴란드 왕국의 숨결을 느끼며, 유유자적 거닐었다.




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Rynek Główny)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높은 언덕 위 빨간 벽돌의 성벽이 보인다. 바로 그 옛날 폴란드 왕의 집, 바벨성이다.


성벽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면 바벨성으로 들어가는 문에 다다르게 된다. 바벨성은 총 2개의 문이 있는데 내가 지나간 문은 베르나딘스카 문(Bernardyńska Gate)이다. 다른 문은 헤르보바 문(Herbowa Gate)인데 이 곳에는 과거 폴란드 3국 분할에 대항했던 폴란드의 영웅,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서로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어 나갈 때 보기로 하고 일단, 옛 폴란드 왕실의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벨성 뒷편의 성곽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바벨성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다
베르나딘스카 문(Bernardyńska Gate)

문을 통과하자마자 탁 트인 전경이 가장 먼저 나의 동공을 자극한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덕분에 성벽 위로는 크라쿠프 시내, 아래로는 잔잔한 비스와 강과 잘 정돈된 공원이 보인다. 아주 높지는 않아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크라쿠프 시내와 비스와 강변 #1
크라쿠프 시내와 비스와 강변 #2
비스와 강을 여유롭게 노니고 있는 배

어느 나라 사람이건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감수성이 풍부해지나 것 같다. 성곽에는 세계 각국 커플들의 사랑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비스와 강을 바라보며 둘만의 사랑의 증표를 남겼을 연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른 아침부터 내 감수성도 꿈틀거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부릅뜨고 한글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한적했던 바벨성 성곽길 #1
한적했던 바벨성 성곽길 #2




다시 발걸음을 옮겨 성벽을 따라 바벨성 입구로 향했다. 드디어, 바벨성에 도착했다.


바벨성의 첫 느낌은 광활함이다. 보통 성(Castle)이라고 하면 크고 웅장하다는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지만 바벨성은 넓고 푸른 정원이 어우러져 광활하다는 수식어가 먼저 떠올랐다. 성곽을 따라 올라오면서 비스와 강을 바라볼 때와 같은 시원함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이 느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역시 사람의 눈보다 좋은 카메라는 없는 것 같다.

입구에서 바라본 바벨성 전경

바벨성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바벨성 모형 앞으로 다가갔다. 모형도 모형이지만 이 위치에서 바벨성의 꽃, 대성당과 지그문트 종탑을 중심으로 바벨성의 모습이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겼다. 때문에 모형 주위는 언제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바벨성 모형
내 차례가 되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사람들이 붙잡을 새도 없이 다 가버렸다;;;  내 사진에는 오로지 바벨성만 담았다




바벨성은 폴란드의 수도가 크라쿠프였을 당시인 11세기에 지어졌다. 17세기까지 폴란드 왕들이 살았던 성이다. 성은 왕궁, 정원, 대성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모습은 16세기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이 혼합 개조되면서 갖추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비껴간 크라쿠프 구시가지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바벨성은 현재는 박물관으로서 폴란드 사람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견학 온 폴란드 학생들

박물관은 총 8가지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전시마다 관람시간, 비용이 다르다. 관람시간은 크게 동절기와 하절기로 나누어져 있고, 비용은 일반과 할인 티켓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료입장인 요일도 있다.

바벨성 내부를 관람할 계획이 있다면 사전에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Visitor Information
참조 및 출처 : 바벨성 홈페이지


각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미리 표를 구매해야 한다. 각 전시마다 입장 인원수 제한이 있고 그에 따라 입장 가능한 시간이 있다. 때문에 가능한 오전에 가는 것이 좋고 표를 구매할 때 입장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중간에 붕~뜨는 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난 총 8가지 전시 중 스테이트 룸(State Room), 왕의 개인 아파트(Royal Private APT), 왕실 보물관(Crown Treasury and Armoury) 이렇게 3가지 티켓을 구매했다.

바벨성 매표소, 헤르보바 문으로 들어올 경우 입구 바로 오른편에 있다




왕의 개인 아파트 관람은 반드시 투어로만 진행되도록 되어 있다. 그중 세계 공통어인 영어 투어가 가장 빨리 매진된다. 때문에 늦게 방문하면 어쩔 수 없이 나처럼 폴란드어 투어를 선택해야만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생애 첫 폴란드어 박물관 투어! 두 번째 줄 'POL' 이라고 적힌 부분이 사용언어를 의미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투어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듯싶었다. 물론 영어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폴란드어는 전~~ 혀 알아들 수 없기에 티켓을 환불하고 그냥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티켓 환불을 위해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내 상황을 전했다. 그러자 잠깐 기다려보란다. 어디론가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내가 구매한 투어보다 10분 늦게 시작하는 영어 투어가 있는데 나를 거기에 넣어주겠다고 한다. 이미 인원은 꽉 차있지만 1명 정도는 괜찮다는 가이드의 동의를 얻었다며...

덕분에 난 10분을 더 기다려 영어 투어를 하게 되었다. 직원분의 센스가 돋보였다. 배려에 감사했다.


그렇게 참가한 영어 투어는 생각보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단, 내부 촬영이 불가하여 사진을 찍지 못한 것만 빼면.(바벨성은 모든 전시관이 원천적으로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 관람에 대한 주관적인 평을 잠시 해보자면 왕의 개인 아파트 투어는 해볼 만하다.
왕의 아파트이기에 평범한 가정의 모습은 아니긴 하나, 그래도 폴란드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방 곳곳에 걸려있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덤!

스테이트 룸은 왕의 아파트와 거의 비슷하다.
왕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신하들과 회의를 하는 일종의 접견실, 대회의실 같은 곳인데 내부 인테리어 양식이 왕의 개인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왕실 보물관은 액세서리나 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보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로 화려려한 장신구들과 날렵하게 잘 빠진 검, 창 같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장작 3시간에 걸쳐 3가지 전시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투어시간에 쫓겨 바쁘게 이동하느라 왕궁 안의 풍경을 볼 새도 없이 들어갔는데 이제야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유럽광장 같은 느낌의 왕궁 안 마당

밖에서 보이는 창문 하나하나가 모두 각각의 방인데, 이렇게나 많은 방들을 둘러보고 나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아치형의 구조물을 연속적으로 배치한 아케이드 구조도 돋보인다. 이탈리아 폼페이와 같은 고대 도시나 고대 신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그래서인지 왕궁에 신전에서나 느낄 수 있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듯하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출구는 혼자만 연한 분홍빛을 띄고 있다. 왕궁으로 가는 통로라 그랬을까? 과거 바벨성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특별한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이 든다.

나오는 사람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 뭔가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것 같았다




다음은 대성당을 둘러볼 차례.

시곗바늘은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동절기면 오후 4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 대성당 매표소로 향했다. 왕궁 티켓을 구매했던 매표소와 별개로 대성당 맞은편 건물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대성당 입구 맞은편 건물이 매표소

대성당은 1364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18세기까지는 폴란드 왕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대성당 옆에 두 예배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중 단연 황금색 돔이 눈에 띈다. 지그문트 예배당(Kaplica Zygmuntowska)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건축물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된 바벨성 대성당
두 예배당은 과거 국왕과 귀족들이 기증했다고 한다

흔히 유럽 성당 지하에는 위대한 민족 영웅들의 무덤이 있는데 이곳 역시 무덤이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나는 시간상 지하까지는 무리겠다 싶어 티켓 뒷면의 경로대로만 빠르게 돌아보기로 했다.

티켓 뒷면에 있는 탐방경로

대성당의 하이라이트는 7번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 지그문트 종탑이다. 그곳에 폴란드 최대의 종, 지그문트 종(Bell "Zygmunt")이 있다. 거대한 종의 크기와 종의 중심을 왼손으로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 있어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색다른 여행을 하게 될 수 있었던 시작점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곳보다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지그문트 종과 이 곳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에서->https://brunch.co.kr/@yooym2000/55)


대성당을 끝으로 바벨성과는 이만 작별을 했다.

대성당 첨탑과 지그문트 종탑




바벨성을 떠나는 길.

처음에 바벨성으로 들어오면서 헤르보바 문(Herbowa Gate)으로 나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의 동상을 보고 갈 생각이었으나 나도 모르게 들어왔던 곳으로 나와버리고 말았다. 원래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항상 변수가 존재하고 그게 여행이기에 그냥 가던 길로 계속 가기로 한다.


바벨성 아래 비스와 강변을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호기심에 그 무리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봤다. 사람들이 용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제야 이 곳이 시즌 전시 중 하나인 '용의 동굴(Dragon's Den)'이 있는 곳임을 알아차렸다.


비행기에서 읽은 '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라는 책에서 바벨성을 나설 때는 반드시 용을 만나고 가라고 했었는데 바로 그 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상만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3월은 운영기간이 아니었다.


짤막하게 책에서 읽은 용에 얽힌 전설을 풀어보면, 옛날 비스와 강가에 나쁜 용이 아름다운 소녀들을 유괴해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 용을 물리친 용감한 구두 수선공이 있는데 그의 이름이 '크라크'. 크라쿠프라는 지명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용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용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비스와 강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는 오후 4시의 비스와 강변은 적적했던 아침과는 달리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공원 분위기는 전혀 시끌벅쩍하지 않다. 잔잔히 흐르느 비스와 강의 물결처럼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 분위기에 취해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지금 이 느낌 그대로 일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문득 스친다.

어느덧 바벨성이 저 멀리에 보인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광스러웠던 중세시대 크라쿠프의 산증인, 바벨성.

그 안에 폴란드는 지금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적한 비스와 강변, 그리고 바벨성


매거진의 이전글 폴란드에서 느낀 터키의 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