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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Sep 27. 2017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실화
아우슈비츠

노동은 그대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아우슈비츠 입구에 도착하면 만날 수 있는 아우슈비츠의 슬로건이다.

도대체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나치 독일에는 이처럼 멍청한 생각을 가진 사람밖에 없었을까? 자유는 인간의 기본 권리이거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자유를 지불하다니... 더욱더 화가 나는 사실은 이 슬로건도 그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슬로건 뒤에는 감히 입에 담기 조차 힘들 만큼 잔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크라쿠프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저녁, 아우슈비츠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히 고민이 됐다. 블로그에서 본 후기도 그렇고, 같은 방 외국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갔는데 너무 끔찍해서 제대로 못 보고 돌아왔어."

"사람마다 다르긴 할 텐데, 난 괜찮았어."

"난 원래 가려고 했었는데 무섭다는 얘기 듣고 포기했어."

"무섭다기보다는 비위가 좋아야 돼~ 한번 가봐. 보면 알 거야."


어릴 적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대한 답을 하는 것만큼 결정하기 어려웠다. 한쪽이라도 치우치는 의견이 있으면 그냥 다수결의 원리를 따르려 했건만 하필 친구들의 의견은 반반이었다. 고민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국 처자 로렌이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다. 50대 50인 상황에서 이제 모든 건 로렌에게 달렸다.


"로렌, 혹시 아우슈비츠 다녀왔어?"

"아, 다녀왔지. 아우슈비츠 가려고?"

"지금 그걸 못 정하고 있어서 어땠는지 물어보는 거야."

"흠... 나쁘지 않았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애매모호한 입장의 답변이었지만 적극 추천하는 입장은 아니었기에 나는 안 가는 쪽에 한 표를 더했다. 결국 아우슈비츠는 패스하기로 했다. 이렇게 일단락되나 싶었는데 막상 안 가겠다고 결정을 하고 나니 왠지 택시에 물건을 두고 내린 것 같이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때문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 도 미리 보고 왔건만 이렇게 안 보고 가면 분명 후회될 것 같았다.


'그래, 가보자! 갔다가 그냥 돌아오든 후회를 하든, 일단 가자!'


결정을 바꾸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여전히 마음속에 걱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난 처음부터 아우슈비츠에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꼭 가야만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나라의 아픈 역사를 알고 그 슬픔을 공감하는 것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게 진짜 여행이니까.




아침이 밝았다. 아우슈비츠에 가는 날 아침이다. 내가 아우슈비츠에 가는 걸 하늘이 알고 그러는 걸까?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아우슈비츠에 가기 딱 좋은 날씨다. 엄숙한 곳이니 만큼 마음가짐도 약간은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있을 테니. 날씨가 나를 도왔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
우리가 아는 아우슈비츠는 독일어, 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Oświęcim)


크라쿠프 중앙역에서 미니 버스로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한 아우슈비츠 정류장. 아우슈비츠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물론 마음도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초입에서부터 긴장감이 밀려온다. 이게 아우슈비츠의 음산한 기운인가???


매표소와 입구는 궂은 날씨가 무색하게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부분 단체로 견학 온 학생들이다. 이 것만 보더라도 아우슈비츠가 폴란드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수능 단골 출제 소재이자 중고생들의 필수 수학여행 코스였을 것이다.


많고 많은 서양 사람들 중에 유일한 동양인이 눈에 뜨였는지 검표원이 멀리서 나를 부른다.


"티켓 좀 볼 수 있을까요?"


티켓을 건네자,


"지금 바로 들어가셔서 대기하셔도 돼요. 학생들은 어차피 단체 관람이라 나중에 들어갈 거예요."


하마터면 긴 줄을 다 기다리다 시간에 쫓겨 들어갈 뻔했다.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티켓에 도장을 받고 입장했다. 안에는 나와 함께 투어를 하게 될 사람들이 이미 모여있었다. 가이드의 목소리와 내 귀를 이어 줄 오디오 세트를 받은 후 투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1시 반 영어 투어 이제 입장합니다. 밖으로 나가시면 가이드분께서 인솔해주실 거예요."


안 그래도 무거운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내리는 빗방울과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것 같다. 힘들고 내키지 않더라도 아프면 아픈 대로 이 곳을 느껴보겠노라 다짐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 옛날 인간이 저지른 잔인한 짓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곳, 아우슈비츠 앞에 섰다.




아우슈비츠의 상징과도 같은 슬로건이 걸려있는 입구에서부터 투어가 시작된다. 가이드는 먼저 아우슈비츠 슬로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글자를 자세히 보면 'ARBEIT'의 B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보통 알파벳 대문자 B는 위가 날씬하고 아래가 뚱뚱한데 여기에는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저 말은 거짓말이라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노동자들의 최대한의 비폭력적인 저항의 표시였다고 한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이 그들을 자유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나치에 복종해야 했던 아니,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고 애통했을까? 순식간에 감정이입이 된 나머지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작부터 이렇게 감정에 휩쓸릴 줄이야... 역시 소문대로 임팩트가 강하다.

수용소 분위기는 삭막하다. 군부대 창고 같기도 하고, 대학교 기숙사 같기도 하고, 동네에 있는 작은 마을 같기도 하지만 어느 것에 비유하더라도 삭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날씨가 화창했으면 다르게 보였으려나? 아마 화창한 날에 왔어도 삭막했을 것 같다. 아우슈비츠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중충한 날씨나 황량한 풍경 때문만이 아니니까.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 곳만이 지니고 있는 어두운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이 날씨든 풍경이든 그 모든 것을 누를 만큼 지배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 이제 수용소 안으로 들어간다. 각 수용소들은 박물관으로 운영되어 그 당시 수용소의 모습, 사람들이 입었던 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사람들마다 평이 갈렸는지도 이해가 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왔는데도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 이어진다. 아우슈비츠 투어에는 튼튼한 두 다리보다 튼튼한 멘탈과 비위가 필수다.

수감자들의 안경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식기류
수감자들이 신었던 신발들
수감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가방, 잠시 맡겨 놓은 가방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가방이 돼버렸다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직물, 가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가장 소름 끼친다(실제 머리카락을 따로 모아둔 방이 있으나 촬영 금지다)
사시사철, 추운 겨울조차 수감들은 저 옷가지 하나만 걸쳤다
부실하게 짝이 없는 한 끼 식사


투어를 하는 내내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들려온다. 어떤 사람은 너무 놀라 입을 막고 작은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카메라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나 역시 처음에 의무감 때문에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빼고는 더 이상 찍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찍을 필요가 없었다. 굳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될 만큼 보기만 해도 뇌리에 강하게 새겨지기 때문에.


수용소를 나와 가이드가 우리에게 잠시 바람 쐴 시간을 주었다. 모두들 충격적인 광경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밖으로 나와봤자 삭막한 수용소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바깥바람을 맞으니 충격과 공포가 조금은 씻겨지는 것 같아 나름 상쾌하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찰나 이어폰으로 다시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뭐가 보이시나요?"


눈 앞에 초소가 보인다. 초소 뒤쪽으로는 담벼락이 높게 서있다. 초소 앞으로는 철조망이 쳐져있다. 철조망 앞에 'STOP(독일어: HALT)'이라는 경고와 함께 해골 그림이 들어간 푯말이 박혀있다.



모두 수용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함이었다. 해골 푯말 뒤로는 지뢰가 깔려있다고 한다. 운 좋게 지뢰를 피하더라도 다음 관문은 철조망. 그냥 철조망이 아니라 전기 철조망이다. 게다가 2중으로 되어 있다. 그것 마저도 기적적으로 통과했다면 이제 남은 건 초소와 담벼락. 하지만 담벼락은 어디 하나 잡을 곳 없이 평평해서 스파이더 맨이 아닌 이상 맨몸만으로는 통과할 수가 없을 것 같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초소에서 지키기고 있을 나치 독일군에게 총살을 당할 것이 뻔했다.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어느 누구도 인물사진을 찍지 않는다. 특히나 모든 여행객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그 흔한 셀카봉조차 이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나 역시도 사람들의 뒷모습만 담겨 있을 뿐 사람에 초점을 맞춘 사진은 없다. (그 사진마저도 사람들을 찍으려 한 것이 아닌 풍경을 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담겼을 뿐이다.) 유일하게 사람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이는 사진이 하나 있다면 복도에 걸려있는 수감자들의 프로필 사진이다.

수감자들의 사진,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있다


다들 순박한 시골 사람들 같다. 만약 살아계셨더라면 지금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인생 여행자가 되어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다해야만 했다. 지금도 종종 지인들이 찾아와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가기도 한다고...

수감자들이 생활했던 수용소 내부


이제 아우슈비츠 투어의 마지막 코스, 가스실로 들어간다. 멀리서 봤을 땐 우리나라 큰 왕릉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검게 그을려진 외벽, 우뚝 솟은 붉은 벽돌의 굴뚝이 음침한 포스를 풍긴다. 저 굴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재가 되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니... 안타까움과 공포, 그리고 나치 독일의 극악무도에 대한 분노가 함께 올라온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가스실 내 시체 소각장




가스실을 끝으로 아우슈비츠 투어는 끝이 났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인간이 사악하다 해도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나도 인간인데 행여나 나에게도 저런 사악함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지 나 자신조차도 무서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인간인 것 같다.


출구를 나와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슬픔, 공포, 분노가 뒤섞인 여운에 이끌려 다시 뒤를 돌아봤다. 처음 아우슈비츠를 봤을 땐 삭막하고 공포스러웠는데 이제는 애처롭고 슬퍼 보인다.


입구의 슬로건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노동과 자유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생략이 되어 있다. 아우슈비츠의 실상은 노동이 자유를 주지만 그 사이에는 노동으로 찾아오는 고통, 그 고통으로 얻어지는 처참한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재가 되어야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중략된 이야기의 진실을 알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할 일인 것 같다.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진실과 마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우슈비츠에 오기를 참 잘했다. 올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아우슈비츠에 대해 묻는다면 난 꼭 가보라고, 꼭 가야만 한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Miejsce Pamięci i Muzeum Auschwitz-Birkenau)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로, 폴란드의 오슈비엥침(독일어 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위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이며, 좀 더 가까운 크라쿠프에서는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로마인·옛 소련군 포로·정신질환을 가진 정신장애인·동성애자·기타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1945년 기준 약 600만 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는 법] Więźniów Oświęcimia 20, 32-603 Oświęcim, Poland
  - 크라쿠프 중앙역(Kraków Główny)에서 미니버스로 약 1시간 30분 소요
  - 크라쿠프 중앙역(Kraków Główny)에서 기차로 약 2시간 15분 소요 (오슈비엥침역(Oświęcim) 하차)

[영업시간] 매일 (월별 시간 상이)
  - 12월 07:30AM - 14PM
  - 1월/11월 07:30AM - 15PM
  - 2월 07:30AM - 16PM
  - 3월/10월 07:30AM - 17PM
  - 4~5월/9월 07:30PM - 18PM
  - 6~8월 07:30AM - 19PM
 ※ 1월 1일, 12월 25일, 부활절 일요일(Eastern Sunday) 휴무

[입장료]
  - Reg Entry Pass-Guided Tours for individuals+GTS(일반) 70즈워티 
  - Reg Entry Pass-Guided Tours for individuals+GTS(학생 할인, 26세 이하, 학생증 필요) 60즈워티
※14세 이하 어린이들의 관람은 권장되지 않음

[전화/문의] +48 33 844 8000 /  reservation.office@auschwitz.org
※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 및 가격 등 상세정보 하단 홈페이지 참조

[온라인 예매] https://visit.auschwitz.org/?lang=en

참고: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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