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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1)

#1. 흥정의 서막을 예고한 마라케시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이 여행은 풀리지 않은 숙취로 고생했던 어느 점심시간의 장래희망이었습니다. 전 날 과음으로 회사에 출근해서도 붉은 기운이 가시질 않았던 날. 하필 그 날은 팀 점심이라 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한 층 밑으로 움직이는 순간, 제 속의 이물질이 한 층 위로 함께 움직여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다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화장실로 직행했더랬지요. 1리터가 넘는 물에도 여전히 마른 목에 고통받으며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영혼 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한 새파란 마을.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물보다, 그 쉐프샤우엔의 사진이 저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듯했습니다. 숙취마저 빠르게 사라지는 기분. ‘내 언젠가 이 곳에 꼭 가고야 마리다!’ 마치 ‘이담에 커서 슈퍼마켓 언니가 될 거야!’ 단지 과자가 좋아서 다짐했던 어린 시절 그 장래희망처럼, 풀리지 않는 숙취를 해결해준 새파란 사진에 일차원적인 다짐을 했더랬습니다.

 @ 셰프샤우엔 예고편

 엄마는 저에게 가까운 영국, 프랑스 놔두고 갑자기 웬 모로코냐고 물었습니다. 글쎄 말입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지가 모로코가 되다니. 안 그래도 동행인과 럭셔리 프랑스 여행을 얘기하다 흘러 흘러 모로코로 결정이 된 지라 저도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뿐이었는데, ‘모로코 일주일 여행’을 검색하면 모로코는 2주는 있어야 한다는 글들이 다수였습니다. ‘나는 쉐프샤우엔과 사하라 사막이면 되는데’라며 계속 고민하다 그래도 일주일 안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여정으로 모로코를 다녀왔다는 개고생 선배들, 소수의 블로거들이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동시간이 일주일의 반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더운 날씨와 불나방 같은 호객 행위를 견뎌야 한다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그 날 숙취를 해결해준 그 새파란 마을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블린 공항에서 파리를 거쳐 마라케시에 도착했습니다. 사시사철 추웠던 더블린에서 모로코로 순간이동을 했더니 원래도 더운 날씨겠지만 체감은 더했습니다. 엄청난 시멘트 열기 무리를 뒤로하며. 일단 다음날 계획이 메르 주가행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수프라 투어 버스 티켓을 사러 가야만 했습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택시로 약 10분 정도 거리였고 물가를 계산해보니 택시비 약 50 디르함 정도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항 직원이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는데, 기사가 목적지를 묻더니 200 디르함을 부르는 겁니다. 당황한 저는 저의 계산 착오인가 싶은 마음 반, 이것들이 장난하나 하는 마음 반으로 100 디르함으로 흥정을 시도했습니다. 자기들도 먹고살기 힘들답니다. 기사가 한 명이었으면 더 흥정할 자신이 있었는데 여러 기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결국 150 디르함에 동의하여 택시를 탔습니다.     


 웬 걸. 더도 덜도 않고 딱 10분 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화가 났지만 다음부턴 더 세게 나가야겠구먼 속으로만 칼을 갈았지요. 매진이 빠르다는 수프라 투어 오피스에서 메르주가행 버스 티켓을 구매한 뒤 유심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는지 둘러보았습니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Moroc telecom 간판을 발견했습니다.(가장 잘 터진다고 하더군요) 조그만 슈퍼 같은 곳이었습니다. 유심을 사고 싶다는 것 까지는 의사전달을 했는데 그 이후에 유심을 갈아 끼우면서 뭔가 소통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옆에 위치한 핸드폰 가게로 데려가 저를 그들에게 맡겨버렸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영어를 꽤나 잘 하는 사람들이었고, 유심을 무사히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덤터기에 택시 공포증이 생긴 저희는 30분 정도 되는 거리의 숙소까지 한 번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30도를 웃도는 온도였지만 뭐, 그것도 경험이라 치고! 가기 전에 시원한 음료수를 사려고 다시 그 구멍가게에 들어가 환타를 집어 들고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저희 눈치를 슬쩍 한 번 보더니 얼마라고 가격을 부르더군요. 나와서 환타 병을 확인했더니 원래 가격보다 5 디르함 정도 더 불렀던 겁니다. 이런 제길. 또 당하다니! 부르는 게 값이라더니 정말이구나! 다음부턴 뭐든지 깎고 깎아야겠다! 또 한 번 날을 갈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마라케시 메디나에 있는 숙소까지 용케도 걸어갔습니다.     


 메디나까지는 도착을 했는데, 숙소를 찾는 게 또 하나의 관건이었습니다. 분명 메디나 입구에 있다고 했는데 이 달팽이관 같은 구글 지도는 뭐란 말입니까.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 돌아 숙소 이름을 찾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헬로 말을 걸며 어디를 찾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모로코에서 길을 알려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노 땡스 노 땡스라고 말하고 무시했는데, 한 청년이 "I will let you know for free!"라고 억울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하하. 리얼리? 호텔 이름을 알려줬더니 정말로 친절하게, 공짜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땡큐 땡큐를 외치고 드디어 호텔에 들어섰습니다. 아침부터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 배가 무진장 고파 짐을 풀고 바로 메디나로 다시 나오는데, 세상에 정말 메디나 입구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구글 너 뭐니?     


 메디나에서 제일 처음으로 향했던 곳은 하루 1잔 해야 한다는 오렌지주스 카트였습니다. 한 잔에 4 디르함. 온갖 갈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택시기사와 구멍가게 아저씨 때문에 상한 마음도 동시에 사르르 녹아버렸지요. 메디나를 천천히 구경하고 식사를 하러 광장에 즐비해있는 점포로 향했습니다. 시장바닥도 이런 시장바닥이 없습니다. 한 걸음에 한 명씩 붙어서는 자기 가게에 오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심지어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저와 동행인은 찢어져 각자 다른 가게에 앉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행인이 제가 있는 쪽으로 왔고 그 가게 직원들 전부 마치 오스카라도 수상한 듯 저희에게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 대낮의 마라케시 메디나
@ 포장마차처럼 즐비해있는 식당들을 만날 수 있어요

 모로코 주식인 빵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저희는 모로코 전통 음식인 따진과 쿠스쿠스를 주문했습니다. 어떤 맛일까. 생전 처음 보는 광경 안에 스며들어 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 따진에 얹어진 닭고기는 뻣뻣하고 쿠스쿠스에 있는 곡식의 질감은 그닥 좋지 못했으나 무언가 처음 경험한다는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여전히 벌 떼 같은 호객행위로 시끄럽고, 매캐한 연기가 그윽한 가운데 앉아있었지만 내가 어떻게 지금 모로코라는 나라의 한 부분을 딛고 있는 걸까 마냥 신기했고 모로코행을 결심했던 내가, 더 나아가 더블린행을 결심했던 내가 스스로 기특했습니다. 


@ 이미 준비되어 있는 식전빵
@ 따진과 쿠스쿠스

 식사를 마치고 날이 저문 메디나 골목골목을 걸었습니다. 사막에서 쓸 차도르도 하나 사고, 오렌지주스를 한 잔 더 마시며 밤공기를 즐겼습니다. 골목에는 고양이가 참 많았는데 한국에서나 아일랜드에서나 봤던 고양이들과는 달리 너무 마른 몸에, 사람이 다가가도 힘이 없는지 잘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의 얼굴을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는데 사람도 인종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듯 모로코 고양이도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뭔가 더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고 예민해 보였습니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미동조차 고단 할 걸까. 먹이라도 주고 싶은데 딱히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괜스레 미안했습니다.     

@ 해가 저문 마라케시 메디나
@ 미로같은 골목들
@ 마라케시에서 만난 마른 고양이


 길이 어두워지며 켜지는 가로등 불빛은 뭐랄까, ‘여기 참 이국적이지? 너 여기 마음에 들지?’라고 뽐내듯 은은했습니다. ‘응! 그러니까 남은 일정도 잘 부탁해!’ 당연히 몸은 힘들겠지만 지금 이 느낌을 떠나기 전까지, 아니 떠나서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으면. 그렇게 모로코에서의 첫날이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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