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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2)

#2. 장장 12시간에 걸친 메르주가행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숙소 옥상으로 우당탕 올라갔습니다. 제가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 바로 조식 때문입니다. 사실 엄청나게 대단한 조식은 아니었지만 처음 와 본 나라에서 먹는 첫 아침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뷔페식으로 가져다 먹는 형식이었는데 여러 가지 빵과 삶은 계란, 잼, 버터, 커피 등을 고를 수 있었고, 게다가 환상적인 모로코 오렌지주스가 무한리필이었습니다. 옥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벌써부터 분주하게 아침을 여는 마라케시 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숙소로 내려와 짐을 챙겼습니다. 다음 행선지인 메르주가까지는 장장 1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래 차라리 이 더위 속에 어딜 거니는 것보다는 차 안에 있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어제 버스표를 예매했던 수프 라버스 투어로 다시 택시를 타고 가야 했는데 이번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숙소 주인에게 적정 택시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30~40 디르함이 적정선이고 정 흥정이 안 되면 50까지는 줘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50이면 되는 거리를 어제 150이나 주고 왔다니. 한 번 더 화가 났지만 친절한 숙소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택시를 타러 나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00을 달라고 합니다. 저는 30이 아니면 절대 안 간다고 하고 다른 택시를 찾겠다고 가려는 찰나 40을 부릅니다. 별 거 아니지만 흥정에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에 괜히 아침부터 마음이 들뜨고 이제부터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이 넘쳤지요.     


 수프라 투어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한국인 세 명이 얘기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우와 한국인이다! 싶었지만 저는 낯가리는 여자이기 때문에 동행인에게 저기에 한국인들이 있다고 속닥거리기만 했습니다. 모로코에서 버스를 탈 때는 주로 짐을 싣는 비용을 추가로 내는데, 저희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야 알아 급박하게 매표소로 가서 표를 다시 구매해 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차후에 모로코에 가실 분들은 이 점 꼭 주의하시길!) 드디어 메르주가로 떠납니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여전히 기분이 이상합니다. “드디어 메르주가로 떠납니다.” 목욕탕에서 말하는 것 같은 성우 아저씨의 목소리로 다큐멘터리에서나 들어온 말이 아니던가. 내가 정녕 그 ‘사하라 사막’에 다녀왔었나 싶습니다.     



@ 휴게소 앞 프링글스와 함께

 버스 창밖을 바라보면 온통 흙색 빛깔의 건물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두고 도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카운터에 앉아있는 가게 주인들도 간간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몹시도 이국적이라 내가 아프리카 위를 달리고 있다는 걸 실감 나게 해주었습니다. 장시간 버스 이동에 몸이 찌뿌듯하긴 했지만 저는 워낙 버스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지라, 게다가 사하라 사막에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약 3시간을 달려 휴게소에 내렸습니다. 배가 슬슬 고파 간식을 사 먹고 싶었는데 또 흥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차도르를 걸친 소녀가 프링글스를 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그 소녀에게 얼마를 줬는지 물어보고 그대로 가게 주인에게 프링글스를 주문하고는 얼른 그의 손에 딱 고만치의 돈을 얹어주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봤던 한국 사람들과 드디어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들 혼자 여행을 하다가 모로코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알고 보니 저희와 같은 숙소여서 사막투어까지 같이 하게 될 멤버들이었습니다. 가장 연장자였으나 두 여자 사이에서 가장 많이 구박받았던 S오빠, 스페인어 능통한 똑순이 Y 씨, 웃는 얼굴이 참 예쁘고 해실 해실 밝은 막내 H 씨까지. 사실 아일랜드에서는 한국 사람을 만나도 그리 반갑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여행지에 와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또 몇 시간을 지나 한 식당에 내려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까 본 휴게소의 풍경도, 이 곳 식당의 풍경도 너무나 모로코스러워서 좋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숙소 주인이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레게에 심취한 것 같은 머리카락의 소유자인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시종 음악을 크게 틀고 환영한다고 외쳐댔습니다. 이 숙소는 형제 네 명이 운영하는 곳으로, 형제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로 고객 민원을 담당한 막내 하민과 소통했습니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묵은 더위를 씻어내고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았다. 그치? 내일 드디어 사막에 가네. 우와 등등 하루 마무리 멘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어컨이 작동을 멈췄습니다. 덩달아 저희의 입도 작동을 멈추고 애꿎은 땀구멍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 라소스 숙소 안
@ 라소스 숙소 안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방은 뜨거웠고 심지어 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정전이었습니다. 당장 하민을 찾으러 나갔지만 이미 늦은 밤이라 숙소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옆방에 있는 S오빠를 호출해서 그 방은 괜찮은 지 물어봤더니 숙소 전체가 정전이 된 모양입니다. 하민을 찾다가 실패한 저희는 도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조금 있다 다시 밖으로 나가니 하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전이 되었다고 얘기하니 하민이 숙소 한 구석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뭔가를 교체해야 한다며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30분 뒤, 지금 당장 교체가 힘들다며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맙소사. 도저히 방 안에 있을 수가 없어 옥상에 올라가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하민이 다가와 원한다면 옥상에 이불을 깔아주겠다고 합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그러고 싶었지만 동행인이 그냥 방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해서 다시 불타는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저히 침대 이불에 살을 댈 수가 없어 이번에는 차가운 바닥에 온 몸을 바짝 붙여보았습니다. 더운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불보다는 훨씬 나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다음 날 일어나 하민에게 조심스레 우리가 어제 에어컨도 전기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얘기하니, 하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비용을 빼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숙소비용이 엄청나게 줄어 그래 돈 아낄 수 있고 좋지 뭐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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