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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3)

#3. 사하라 사막을 건너다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분명 차가운 방바닥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데도 엄청나게 찌는 더위에 잠에서 깼습니다. 에어컨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고, 핸드폰 충전도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앉아있는데 밖에서 찬찬 수저소리가 들려오니 배가 고파집니다. 그래 일단 조식부터 먹고 생각하자 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로코식 빵과 밀병, 우유, 커피, 각종 잼, 버터 그리고 오렌지쥬스까지. 아마 모로코 숙소의 조식은 다 이렇게 비슷한 형식인가 봅니다. 근데 또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맛있는지. 오렌지주스도 세잔씩이나 마시며 그 불볕더위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한 행복이 피어올랐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니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핸드폰 충전과 함께 에어컨을 무료로 쐴 수 있었습니다.     


@ 라소스 숙소 안

 사막으로 가는 시간은 오후 5시로, 저희는 꼼짝없이 숙소 안에 묶여있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메디나로 나갈 수는 있었지만 건물 안도 이렇게 더운데, 밖으로 나가는 자살행위에 자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와 동행인은 나란히 거실 바닥에 누워 간신히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국인 두 명을 더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말해서 참 죄송하지만 누가 봐도 군대를 갓 제대한 어린 청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한 눈에 갓 제대한 걸 알 수 있었다고 하니, 군인 티 나지 않으려 스페인에서 나름 다듬은 머리라고 합니다. 그 중 한 청년이 사진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친구라 어마어마한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니 제 미러리스는 아주 초라해집니다. 이 미물로도 사막의 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또 친절하게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라소스 숙소 밖
@ 숙소 안 수영장. 더위가 겁나, 결국 입수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막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역이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얼음물을 몇 병씩이나 사먹으며 동행인과 이거 혹시 물을 팔려는 상술은 아닐까 음모론도 꾸며보았습니다. 5시도 지나고 6시가 되어서야 겨우 출발. 숙소 밖으로 나가니 낙타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낙타를 끌고 온 아저씨가 눈대중으로 사람들의 무게를 짐작하며 낙타들과 짝을 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얗고 키가 큰 낙타에 낙점이 되었는데 낙타에 몸을 싣고 낙타가 뒷다리부터 몸을 일으켜 네 발로 서는 그 과정에서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키가 꽤 크고 건장한 한 친구가 의외로 작은 낙타와 짝이 지어졌는데 사막을 건너는 내내 그 낙타에게 미안해 죽겠다며 연신 사과를 했습니다. 아무튼 차도르로 얼굴과 목까지 꽁꽁 싸매고 드디어 사하라 사막으로 향합니다.     


@ 안녕 낙타야. 잘 부탁해
@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중입니다


 사막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녁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햇볕이 강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람까지 불어와 선선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두 줄로 만들어진 낙타무리가 함께 터벅터벅 사막을 건너니 신난 사람들은 내내 사진을 찍어대거나 감탄사를 참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사막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지금 이 모습을 우주에서 현미경으로 지구를 확대하듯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나 사하라 사막을 건넜잖아”라고 으스대야지 하며 재수 없는 다짐도 해보았지요. 내가 아일랜드에 오지 않았다면 모로코에 올 생각을 해보았을까 하며 하나의 선택이 또 이렇게 다른 선택에 꼬리를 물었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합니다.


@ 너희도 덥긴 하니?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건너니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한 낙타와 셀카도 한 장 찍었습니다. 낙타에서 내리자마자 양말과 신발을 벗어 사하라 사막의 그 고운 모래 위에 맨발로 착지했습니다. 우와. 지구의 맨 얼굴에 발을 내딛은듯한 느낌. 왜 이 모래를 담아갈 공병을 가져올 생각을 못했을까 가슴을 치며 후회했지요.     

@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중, 인생샷을 하나씩 찍어주시는 친절한 낙타아저씨

 저녁시간까지 자유라 모래 언덕위로 뛰어올라가 점프도 해보고 영화 ‘러브레터’에 나온 장면처럼 누워서 두 팔을 휘휘 저어보기도 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사하라사막 한 가운데에 앉아 떨어지는 해를 마주한 이 순간은 엄청 행복한 순간인데 이상하게도 동시에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장면이 저로 하여금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이렇게 흘러 흘러 나는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어쩐지 서글프고 야속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귀에 감기듯 부딪히는 모래바람과 함께, 앉은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워 진하게 번져가는 하늘을 공허히 바라봤습니다.     

@ 점프!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찌나 나약한지, 오랜만에 떠오른 이런 성숙하고 철학적인 고민이 저녁식사 냄새에 와장창 무너집니다. 힘들게 올라온 모래언덕을 첨벙첨벙 뛰어 내려가 베이스캠프로 향했습니다. 사실 사막을 건너오는 일은 낙타의 네 발로 다 했는데, 멀리까지 왔다는 심리가 작동해서 그런지 엄청난 허기를 느꼈습니다. 메뉴는 우리가 이미 첫 날 먹었던 따진과 쿠스쿠스였지만 여기서 먹은 게 전체 일정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아마 배고픔이라는 반찬 덕분이었겠지요. 어제부터 동행해온 한국 분들과, 또 오늘 숙소에서 만난 청년들과 함께 앉아 밥을 먹는데 저마다 가져온 술을 한 병씩 꺼냅니다. 진짜 이럴 때면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건 마치 “내 딸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예뻐”라고 말하는 우리 아빠처럼. “내가 한국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 정말 최고야”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라소스 4형제가 준비한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종 악기로 아프리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고. 한 이탈리안이 저의 손을 이끌고 춤을 추자고 합니다. 빵빵한 사운드와 어두운 조명. 술에 취하지 않으면 절대 춤을 추지 않는 저인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 끌려나오니 어쩔 수 없이 박자에 맞춰 어정쩡한 춤을 선보였습니다. 어릴 때 갔던 캠프 생각도 나고 참 즐거웠습니다. 하민이 오늘은 별이 그렇게 많이 보이는 날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늘을 뚫고 나올 정도로 반짝 거릴 별들을 기대하며 사막에 왔기에 실망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저는 그 밤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축제가 끝나고 저는 동행인과 둘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래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에 눈동자를 고정 시키고 나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정말 하나씩, 하나씩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치 눈물이 고인 양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겁니다. 원래 그 밤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던 거창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별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정해보자고. 까만 하늘에서 점점 더 반짝이는 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간에서 저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들리는 건 오로지 눈꺼풀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뿐. 모래바람이 스산히도 귀를 간질이던 그 순간, 어쩌면 우리는 동시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부질없게 되리라는 걸 깨달아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근두근 간질간질 거리던 마음을 다 애태울만큼 뜨거운 태양과 함께 시작했던 사막여행은 밤이 되자 급격히 떨어진 온도와 함께 잔잔하게 끝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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