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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4)

#4. 무슬림 국가에서 드디어 맥주를 맛보다(Feat. 염색공장)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원래는 사막에서 2박 후 셰프샤우엔으로 직행할 계획이었는데, 체력이 부치기도 하고 라소스 숙소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이 페즈로 간다고 하기에 택시를 함께 타고 가면 딱일 것 같아 페즈까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택시를 요청했더니 흥정할 필요 없이 하민이 알아서 택시를 잡아주었습니다.(오예!) 아침부터 화려하게도 올라오는 메르주가의 더운 열기에 작별 인사를 고하고 그렇게 페즈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웬 걸. 택시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겁니다. 여행 중반이라 다들 꽤나 지쳐있는 상태라, 답답한 차 안에서 장장 6시간을 달리려니 넘치는 짜증을 참기 힘든 모양이었습니다. 기사에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했더니 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르기에 그냥 창문을 열고 가자며 찜통 속에서 우리는 말을 잃은 채 땀만 줄줄 흘리며 달렸습니다.     


 드디어 페즈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일찍 셰프샤우엔으로 갈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고, 동행인들이 이 곳에 맥주를 살 수 있는 까르푸가 있다고 하기에 다시 택시를 탔습니다. 사실 페즈는 모로코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관광지인데, 모로코 특유의 흥정 문화로(여행 동안 갖은 흥정에 환멸을 느꼈던 제 동행인) 가장 악명 높은 곳이고 몇몇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악평이 많아 생략했었습니다. 까르푸에 도착하니 이게 웬 걸. 도시다! 그리운 도시다! 하며 반가움에 몸서리쳤습니다. 일단 가격정찰제라는 데에 동행인은 쾌재를 불렀지요. 시원한 에어컨과 버거킹, 피자헛과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그렇게 반가울 수 있을 줄이야. 일단 배가 고팠기에 피자를 먹고 마트에서 장을 실컷 봤습니다. 그리고 Off licence 코너에 들어가 드디어 꿈에 그리고 그리던 맥주를 살 수 있었습니다.(모로코는 무슬림 국가이기 때문에 술을 일절 팔지 않습니다. 관광객에게만 판매 허용 된 Off license)      


@ 페즈 숙소 안

 

@ 맛있었던 모로칸 민트티

 날이 저물고, 더욱이 사막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숙소까지 한 번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약 30분 정도를 걸으니 숙소를 찾을 수 있었고 눈웃음이 아주 매력적이었던 친절한 주인 핫산이 민트 티를 내어주어 테라스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페즈 메디나에 오늘 큰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고 해서 저희는 짐을 방에 들여놓고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희 둘 다 음악을 정말이지 사랑하고 특히나 페스티벌은 죽고 못 사는데, 너무나 다른 형식의 음악이라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로코에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만큼이나 많구나 느낄 수 있었고 할머니 품에 안겨, 혹은 젊은 커플이 손을 잡고 함께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그 모습에서 마치 부평 풍물대축제 같은 느낌도 나고,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구나 생각했습니다.


@ 페즈 입구
@ 뮤직 페스티벌 중

  다음 날 아침, 워낙 미로로 유명한 페즈라 처음으로 가이드 투어란 걸 해보았습니다. 셰프샤우엔으로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없어 자칫하면 길을 헤매다 하루를 보낼 것 같아 결정한 건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가이드는 나이가 꽤나 지긋한 분이셨는데 마치 동네 할아버지가 본인이 자주 가는 복덕방을 들르듯 이런저런 가게와 명소들을 들렀습니다. 저희가 가게를 구경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가게 주인과 수다 삼매경이라 너무 일찍 나서기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페즈 골목골목의 수제 카펫 가게나 세공점 등에 들러 장인들의 솜씨를 엿보기도 하고 상세한 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골목마다 엄청난 벌 떼가 몰려있는 상점들이 있었는데, 소라과자같이 생긴 것들이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라마단 기간에 당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간식이라고 합니다. 라마단 기간 전까지 팔고 라마단이 시작되면 볼 수 없다고 합니다.     

@ 저희를 가이드해주셨던 할아버지


 드디어 페즈의 꽃인 염색공장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을 지나가면서 저는 염색공장으로 가는 길에 표지판이 굳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독한 냄새 탓입니다. 입구에 가까이 서지 않았음에도 풍겨오는 이 진한 향기만 따라가면 아마 다들 길을 쉬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염색공장 문에서 민트를 하나씩 받아 코에 꽂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안 좋다는 평만 보고 페즈를 생략해버렸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과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큰 팔레트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작은 사람들이 그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엄청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라 할 순 없었지만 그 이색적인 광경에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고약한 냄새에도 불구 꽤 오랜 시간 그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 염색공장 입구
@ 입구 계단을 올라가면 가게가 보입니다
@ 색깔이 참 곱지않나요
@ 드디어 만난 염색공장 a.k.a 팔레트
@ 제 손에 쥐어진 민트는 본인의 역할을 다 하고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 마른 몸으로 아기를 안아주고 있는 고양이

 페즈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질이 좋다기에 팔찌, 작은 종지 등을 샀습니다. 모로코에서 4일 차가 되니 흥정에 재미가 붙어 가격도 꽤나 잘 깎기 시작했습니다. 포인트는 그들이 비싼 가격을 제시했을 때, 기분 나빠하며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주 귀엽게 “에이~ 그건 너무 비싼 거 같은데! 이 정도 어때요?”, 혹은 “3개 살 테니까 조금 더 깎아주세요!”와 같은 합리적인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라소스에서 만난 귀여운 H양에게 배운 방법인데, 다시 한번 그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셰프샤우엔으로 가기 전 다시 까르푸에 들러 시원한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고 셰프샤우엔까지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사실 셰프샤우엔 때문에 모로코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가슴이 실제로 두근두근 뛰어댔습니다. 아니면 너무 무더운 날씨에, 게다가 오랜만에 먹은 맥주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사무실에서 숙취 가득한 몸뚱이를 풍덩 빠뜨렸던 모니터 속 세상, 셰프샤우엔을 이제 곧 실제로 만나게 됩니다.

@ 페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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