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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5)

#5. 꿈에 그리던 파란 마을 셰프샤우엔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셰프샤우엔에 도착하기 전에 선불로 구매했던 유심칩 데이터가 바닥나버렸습니다. 저녁 9시쯤에야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주변에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어떻게 숙소를 찾아가지 한참을 헤매다 진짜 너무도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과 영어로 소통이 단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갖 손짓 발짓으로 데이터를 요만큼 충전하고 싶다고 설명했는데 신기하게 그분이 차츰 알아듣고는 친절하게 도와주셨습니다. 통신사에 전화해서 제 모로코 전화번호를(아일랜드 번호도 기억 못 하던 이때에 모로코 번호라니) 입력하는 등 복잡한 절차로 데이터를 충전해야만 했던 건데, 영어를 선택할 수 있는 장치도 아니라 아마 혼자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돈을 더 요구하지도 않았고 본인 핸드폰까지 꺼내 들어 이래저래 도와주셨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게 셰프샤우엔의 첫인상이었습니다.     

@ 셰프샤우엔 숙소
@ 셰프샤우엔 숙소
@ 셰프샤우엔 숙소
@ 셰프샤우엔 숙소에서 먹는 조식

 데이터를 충전하고 구글 지도를 열어 숙소를 찾아보니 여태껏 왜 발을 동동 굴렀나 싶을 정도로 숙소는 정류장 코앞에 있었습니다. 일단 짐을 풀고, 라소스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메디나로 올라갔습니다. 친구들 숙소 테라스에서 맥주를 함께 마셨는데 옆에 어떤 영국인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맥주를 어디서 샀냐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는데, 페즈에서 샀다니까 자기들은 한심한 바보라며 자책합니다. 그러더니 한 30분 뒤에 은밀하게 물어왔습니다. “대마초랑 바꾸지 않을래?” 세상에. 맥주를 대마초와 바꾸겠다니. 모로코에서 대마초는 참 구하기 쉽고, 맥주는 구하기 불가능한 이 현실이 수요와 공급에 대해 배웠던 고등학교 경제수업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교환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모로코에 와서 처음으로 화장을 곱게 했습니다. 파란 셰프샤우엔 배경에서 뒤지지 않는 사진을 남기고자 말입니다. 낮에 메디나로 다시 올라갔더니 어젯밤에 본 것과는 또 다른 아주 새파란 마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살에 닿는 기온은 느껴지지 않고 그냥 마음속에서부터 어떤 청량한 것이 팍 터지는 듯했습니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작은 가게 하나도 그냥 지나치질 못했습니다. 문득 어떤 사람이 “내 고향은 셰프 샤우엔이에요.”라고 하는 걸 상상해봤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궁금해지는 그런 곳. 굉장히 밝고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만 같은 그런 동네였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골목을 걷는 중에 어떤 상인이 갑자기 니하오 하고 인사를 걸어옵니다. 중국인이 아니라고 했더니 이번엔 안녕하세요 라며 자기 친한 친구 중에 한국인이 있다고 한국인을 참 좋아한다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더니 본인의 가게로 들어가 한 명함을 들고 나왔는데 정말 한국인 어떤 교수님의 명함이습니다. 그러더니 잠깐 자기 가게로 들어와 차나 한 잔 하자고 합니다. 저희는 정말 한국인과의 교감이 있는 분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갔더랬지요. 이는 역시 카펫을 팔기 위한 접근이었습니다. 카펫 한 무더기를 하나씩 펼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부터 고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시키는 대로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 카펫을 살 돈이 없어요.”라고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2,000 디르함 넘게 부르던 가격이 500 디르함까지 떨어집니다. 의도치 않은 흥정 성과(?)는 놀라웠으나 다시 “카펫이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딱 잘라 거절했더니 그가 신경질적으로 카펫을 접기 시작합니다. “Sorry” 한 마디만 덧붙이고 가게에서 후다닥 나왔습니다. 누가 친근하게 대한다고 가게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교훈과 끝까지 안 산다고 하면 가격을 엄청나게 깎을 수 있다는 팁을 얻을 수 있었지요.      

@ 친절한 상인인 줄 알았던 그가 따라주던 차
@ 점심으로 먹은 오믈렛
@ 따진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한참을 구경하다 배가 고파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슬슬 탕헤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을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썬드레스를 입은 채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터덜터덜 내려고오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 미끄러운 것을 밟고 슬라이딩하듯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동행인 말로는 제가 그 와중에 카메라를 지키겠다고 카메라를 든 손을 높이 쳐들며 미끄러져, 그 모습이 마치 운동선수가 골을 넣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찍은 것 같았다고 합니다. “괜찮아?”라고 다급하게 저에게 온 동행인의 콧구멍에서 숨길 수 없는 웃음의 기운을 엿보았습니다. 저희는 땅바닥에 앉아 한참을 자지러지게 웃고서야 일어났는데, 아니 글쎄 옷의 어깨끈 부분이 똑 하고 끊어진 겁니다. 그걸 보고 또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언덕길을 마저 내려오는데 제가 넘어지는 광경을 본 어떤 모로칸 아주머니가 "Are you okay?"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너무 창피해서 괜찮다고 말하고 빨리 지나가려 했는데 아주머니가 재차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끊어진 어깨끈을 보여주며 이걸 해결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Wait!"하고는 실과 바늘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 문제의 썬드레스

 그렇게 아주머니는 길바닥에서 선채로 저의 어깨끈을 꿰어주셨는데 그 모습을 마치 제가 아닌 제삼자가 옆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시트콤 같은 그 상황에 저와 동행인, 아주머니 모두 바느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떨어진 어깨끈을 부여잡고 먼 길을 가야만 했을 텐데. 이렇게 매번 여행지에서 만나는 귀인은 도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일까요. 조상님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근처의 누군가에 빙의해서 나를 도와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발동했지요. 바느질이 다 끝나자 저는 "Thank you!!!" 고마운 마음을 한가득 담아 그녀를 포옹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었는데, 모로코에서 얼굴 사진을 찍는 게 영혼을 뺏어가는 일이라고 하여 셀카 욕구를 꾹꾹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이제 탕헤르로 가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하고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갔는데 웬 걸 버스 하나가 그냥 출발해 버리는 겁니다. 버스 기사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봤더니 한 시간 뒤에 오면 된다고 합니다. 분명히 시간은 지금이 맞는데 이상해서 시계를 체크해봤는데 친구 핸드폰 시간이랑 제 핸드폰 시간이 다른 겁니다.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어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앞당겨졌길 망정이지, 느려졌으면 버스를 놓쳤을 뻔했습니다.     


 아무튼 이제 모든 여행을 다 마치고 드디어 탕헤르로 갑니다. ‘다 끝났다, 잘 마쳤다.’라고 안도하며 버스를 탔는데. 누가 알았을까요? 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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