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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03. 2018

모로코 여행기(6)

#6. 탕헤르 공항에서 생긴 무시무시한 일

2017.05.16 ~ 2017.05.22 일주일 간의 모로코 여행 기록입니다.




 탕헤르에 간 이유는 단순히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쯤 도착하여 가까운 곳을 구경할 새도 없이 바로 호텔로 들어가 가쁜 일정으로 지친 몸을 풀어주었습니다. 아침 7시 비행기였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 공항까지 걸어가는 데  모로코라는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계속 곱씹으며 걸었습니다. 마라케시에 도착했을 때, 사하라 사막의 별과 모래를 만났을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셰프샤우엔에 입성했을 때 등등 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경험했구나 하며 이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는 폴더로 벌써 보내야 하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는데 봉창을 두드리는 듯한 직원의 한 마디.      


“YOU ARE NOT IN THE LIST" 정말 청천벽력 같아 마치 저렇게 대문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매한 티켓을 보여주며 항의를 했는데 항공사에 직접 전화하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동행인이 티켓을 다시 찾아보려 메일에 접속했더니 메일이 하나 와있더랍니다. 저희 비행기가 어제 출발했다고.     


 그러니까 저희가 떠나기 한 5일 전쯤 비행기가 변경되었으니 환불을 원하거나 변경을 원하면 연락을 달라는 그런 메일이 와있었는데, 동행인은 유심칩도 없었을뿐더러 메일을 확인할 일도 없어 몰랐던 겁니다. 맙소사. 뭐 이딴 경우가 다 있지? 싶어 화도 났지만 일단 집에 가는 티켓을 구하는 게 급선무라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다음 비행기 티켓을 사버렸습니다. 동행인은 이 돈을 우리가 왜 내야 하냐며 일단 그 항공사에 전화를 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했는데, 저는 일단 빨리 그곳을 나가고 싶었고 더블린에 돌아가서 해결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항공사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변경해버리는 경우가 어딨으며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자기들이 예약해줄 수 있는 비행기는 이틀 뒤에나 있다는 겁니다. 당시 영어 울렁증이 있어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면 한참을 생각하고 말을 해왔던 저는 그 말을 듣고 분노가 폭발해 미친 듯이 영어로 따져대기 시작했습니다.      


 심카드에 돈이 더 없어 저희가 애초에 샀던 비행기 티켓을 환불해준다 까지만 듣고 통화는 끊어졌습니다. 집에 가기만 해봐 다 죽었어!라는 마음으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동행인도 저도 이 상황에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대화를 안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공항직원이 와서 동행인에게 "Are you Kim?"하고 묻습니다. 맞다고 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너의 입국을 거부했다.’ 역시 나의 영어 듣기 능력은 짧아. 아직도 잘 못 알아듣겠다니까 하하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그가 정확하게 또박또박 말합니다.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너.의. 입.국.을. 거.부.했.다!”      


 왓?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이유를 묻자 제가 동행인의 비행기 티켓을 한꺼번에 산 게 문제가 됐을 거랍니다.(저는 당최 아직도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 친구가 본인 비행기 티켓을 다시 사면 문제가 없는 거냐고 묻자 그럼 괜찮다고, 다만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니. 하지만 일단 침착하게 상황을 해결하고 더블린으로 오늘 안에만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심사대를 다시 나갔습니다. 금액은 거의 2,800 디르함이었고 동행인은 그 금액을 듣자마자 얼굴까지 시뻘게지며 분노에 찼지만 저는 그를 다독이며 일단 출금을 해오자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설상가상 인출기는 500 디르함을 넘게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6번에 나눠 디르함을 뽑고 직원에게 달려갔습니다. 저는 재차 직원에게 우리 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건 맞는지 물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아주 여유롭게 “No problem”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그들이 뭔가를 쓰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봐야만 했고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어  불안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나. 직원이 갑자기 “Sorry"라고 합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답신이 오기 전에 비행기가 벌써 출발해버렸다고. 아침에 비행기가 변경됐을 때도, 비행기를 기다리다 다시 심사대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저였는데 그 Sorry라는 한 마디를 듣자마자 아주 어린아이처럼 공항이 떠나가라 울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곳에 영영 발이 묶이는 건 아닌지 무서웠습니다. 당황한 직원들이 저를 달래주며 일단 이 항공사에 전화하라며, 이건 100% 항공사 잘못이라 그쪽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줄 거라 합니다.      


 몇 분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으니 해결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항공사 측에선 저희가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정보까지만 받은 상태고, 입국 거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공항 직원을 바꿔줄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하필 그 시간에 저희를 도와줬던 직원들의 교대시간이라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퇴근하고 있는 직원 한 명을 발견하여 헐레벌떡 뛰어가 제발 이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교대된 직원에게 저희의 상황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잠깐 앉아서 기다려달라는 말에 의자에 또 한참 앉아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건 새벽 6시쯤이었는데 벌써 점심시간도 지난 2시가 되었습니다. 배고픔도 잊은 채 힘없이 앉아있는데 도대체가 별다른 지시가 없는 겁니다. 이런 여유로운 것들. 한국인만 속이 터지는구나 싶었습니다.


 다가가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물어보니 자기에게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시간은 충분이 주고도 남았다 이것들아 소리치고 싶었지만 거짓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는 건 상관이 없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지라도 알려줬으면. 오늘 갈 수 있는 건지 아닌 지만이라도 알려줬으면 싶었습니다. 동행인은 낙담하며 오늘 묵을 곳을 찾아보자고 제안했지만 저는 제발 빨리 이 곳을 탈출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직원을 기다려보자며 다시 말없이 축 쳐진 채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찾지 않았던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그럼 더더욱 착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직원이 뭔가를 들고 다가옵니다. 흔히들 결혼할 남자는 보자마자 바로 알게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가 걸어올 때 직감했습니다. 우리 오늘 더블린으로 갈 수 있구나.     


 직감대로 그는 마드리드를 경유하는 더블린행 티켓 두 장을 뽑아 들고 왔습니다. 저는 연신 땡큐 땡큐를 외쳤습니다. 동행인은 안도감에 참던 눈물을 흘리고, 저도 덩달아 울었습니다. 이제 정말 끝났다. 집에 갈 수 있다. 다시 한번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메르주가에서부터 줄곧 동행했던 H양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언니! 왜 아직도 안 가셨어요? 아침 비행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희는 여태까지의 상황을 설명했고 H양은 저가 비행사에서 그런 일이 종종 있어 메일을 잘 확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본인도 비행기가 2시간 지연되어서 지금 왔다고. 해맑은 H양과 얘기하고 나니 마치 몸을 빨래 비틀 듯 짜내어 없어진 기운이 다시 생겼습니다. 저희는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며 빵을 나눠먹고 드디어. 드디어. 비행기를 탔습니다.   

  

 마드리드에서 H양과 작별하고 저희는 마드리드 공항을 구경하고 다시 더블린행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하나하나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모든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정말 더블린으로 가는구나.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영어울렁증은 어느새 극복이 되어있었습니다. 더블린에 도착하니 찬바람이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홈, 스윗 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그 큰 일로 인해 이후 여행을 하며 생기는 크고 작은 돌발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해결하는 방법을 아주 처절하게 깨우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안 겪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던 일이었지요. 일 년이 훨씬 더 지난, 글을 고쳐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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