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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6. 2018

이탈리아 여행기(1)

#1. '맛'의 나라로, 밀라노-꼬모-베네치아


2017.10.22~30 이탈리아 밀라노/꼬모-베네치아-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여행기




 여행지를 정하고 나면 보통 그 나라의 수도로의 왕복 티켓을 사버리면 그만이었던 이전 여행들과 달리, 이탈리아는 비행기 티켓을 사기까지 상당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더블린에서 만났던 이탈리아 친구와 밀라노에서 언제 만날 건지에 대해 조율을 하느라, 두 번째 이유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아름답다는 이 나라는 정말이지 한 달을 여행해도 모자랄 듯 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8일. 지도를 보며 동선을 정하는 데만 한참 걸렸고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는데, 결국 친구와 일정이 맞지 않아 저의 루트는 이렇게 확정 되었습니다. 밀라노-꼬모-베니스-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토스카나와 나폴리같은 남부지방도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야 말았지요.    


 새벽 일찍부터 시작된 하루 때문인지, 간격이 좁아진 여행 텀 때문인지 이 날의 저는 산만의 극치를 달렸습니다. 밀라노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지하철 티켓을 사려 줄을 서있는데 옆의 어떤 여자가 제가 돈을 떨어뜨렸다고 5유로를 주워주었습니다. 유럽에서 돈 흘리면 바로 가져가는 게 인지상정인줄 알았는데, 감사한 그 분 덕분에 저는 티켓 살 돈을 되찾았지요. 지하철 티켓 자판기 옆에는 머리가 치렁치렁 길고 자유분방한 느낌의 옷차림의 여자들이 2인 1조로 딱 달라붙어 사람들의 티켓 구매를 돕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역의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시였습니다. 티켓 구매를 돕는 척 하다 잔돈이 나오면 달라는 손짓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들이 버튼을 눌러주거나 하면 돈을 강제로 줘야만 할 것 같아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손짓으로 그들을 피했습니다.     


@ 밀라노 두오모
@ 밀라노 두오모


 밀라노는 사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꼬모로 가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할까요. 반나절동안 구경한 건 중심지인 두오모와 화려한 쇼핑센터였습니다. 저는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 별 감흥은 없었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확실히 천국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밀라노에서 봤던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건장한 남성의 손가락 세 마디 정도는 될 것같은 두께의 빨갛고 묵직한 체인으로 아주 단단히 매인 자전거들이었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어디에나 있다지만 이렇게 거대한 체인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저에게 자전거는 가벼운 나들이에 쓰는 이동 도구 정도인데, 이렇게까지 무거운 체인을 들고 다니며 자전거를 타야하는 세상이라니. 이탈리아 소매치기는 정말 조심해야한다는 친구의 당부에 ‘난 숙련된 여행자야’라고 손사래 쳤던 저에게 ‘그들도 숙련된 도둑놈들이야’라고 재차 경고했던 것이 떠올라 가방을 한 번 더 꽉 움켜쥐었던 순간이었지요.     


@ 이 거대한 자전거 체인을 보십시오
@ 밀라노 쇼핑센터
@ 밀라노 쇼핑센터
@ 밀라노 쇼핑 거리
@ 밀라노 쇼핑 거리
@ 하이힐 모양의 초콜릿


 밀라노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는 캐리어를 화장실에 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까지 탔습니다. 깨달은 즉시 허겁지겁 올라가 다행히 캐리어는 찾았지만 저는 저의 주의 없음에 꽤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여행 경험이 쌓일수록 노하우가 쌓이는 것도 맞지만 긴장감이 풀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핸드폰, 여권 절도는 정말이지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고삐를 바짝 조였습니다. 오후 3시에는 꼬모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40여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달려 꼬모역에 도착했습니다. 호스텔로 다다르기 전까지는 그냥 도시느낌이었는데, 두오모를 지나치는 순간 펼쳐진 광활한 파란 호수와 산자락에 자리한 알록달록한 건물들에 앓고 있던 갈증이 탄산처럼 터지는 듯 했습니다.      


@ 꼬모 도착
@ 파란 호수가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 한낮의 꼬모 전경


 호스텔에 짐을 두고 같은 시기에 꼬모에 여행을 온 친구와 만나 첫 젤라또를 개시한 뒤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 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꽤 역동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던 꼬모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굉장히 잔잔했습니다. 좁게 난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여행 계획을 나누었습니다. 친구는 꼬모에 하루 더 있다가 남부쪽을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저희는 로마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습니다. 좋았던 날씨는 날이 저물면서 쌀쌀해졌습니다. 검푸른 호수 위로 잔잔하게 떠다니는 불빛들을 더 가만히 보고 싶었지만 추운 바람은 저를 호스텔 문 앞까지 굳이 바래다주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흘리고 다니는 일은 없을 거라는 다짐을 반듯하게 접어 베개 밑에 넣어둔 채, 첫 날은 그렇게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요
@ 평화로운 꼬모
@ 꼬모
@ 꼬모 중심가
@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파스타


 다음 날은 띵띵 부은 얼굴에 억지로 화장을 입히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호스텔 침대가 목조라 혹여나 베드버그가 있을까 아침부터 온 몸을 조목조목 살펴보고 매트리스를 힘껏 들어도 봤습니다. 일찍 밖으로 나와서 어제 봐두었던 호수 바로 앞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토스트를 핑계삼아 잔잔한 호수를 오래토록 바라봤습니다. 이렇게 예쁜 곳도 일상의 터가 되면 아무 감흥이 없을까 궁금했지요. 더 오래 앉아있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 자리를 떠야만 했습니다. 오늘은 베니스로 가는 날입니다. 베네치아, 베니스. 왜 이름이 두 개인 걸까 그런 사소한 의문을 품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는데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기차를 놓친 전적이 있어 불안한 마음도 한소끔 같이 안고 기차를 타게 되었지요. 다행히 마지막 열차만 지연이 되어 안전히 베네치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아침을 맞는 꼬모는 더욱 예쁩니다
@ 베네치아 입성!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기차역입구부터 와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더니 내려서 역을 나서 숙소로 찾아가는 순간은 어딘가 다른 세상, 최면 속에서 보는 전생의 기억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도시가 있을 수가 있지? 온통 늪지대라 말뚝을 박아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는 베네치아는 지금까지 다녔던 유럽의 도시들 중 가장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경한 색깔과 생경한 시공각 안, 들뜨고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호기심은 뜨겁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숙소까지 정말 힘들게 찾아가 짐을 놓고 이탈리아를 잘 아는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영업시간에 포함되지 않은 시간에 찾아간 죄로 내일 점심을 기야하며 나와야만 했지요. 아침만 챙겨먹고 오후 3시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터라 더 무언갈 찾아다닐 힘이 없어 그냥 옆옆가게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할 수 있는 지 묻고 주인에게 가장 맛있는 걸로 달라고 요청한 뒤 환타로 갈증을 풀었습니다.     


@ 쫀득쫀득했던 첫 파스타


 배가 너무 고파 맛있게 싹싹 비워가며 먹었지만 맛부심이 강한 이탈리아라, 이제부터는 아무데나 들어가지 않고 맛의 정수만 경험하리라 다짐을 했더랬습니다. 그 날은 딱히 어느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그냥 골목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아이돌 걸그룹은 ‘예쁜 애 옆에 또 예쁜 애’라고 하던데. 이탈리아야 말로 ‘예쁜 거 옆에 또 예쁜 거’였습니다. 파스텔톤의 물감을 풀어 무겁고 텁텁했던 마음마저 옅어지게 만드는 그림 같은 도시. 리알토 다리에서 말간 석양을 바라보면서 저 빨간 해가 강 속으로 풍덩 빠지는 상상을 했습니다. 해가 지고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결국 와인을 한 잔 마셨지요. 10월, 썸머타임이 아닌 유럽은 저녁이 너무 일찍 찾아옵니다. 썸머타임의 소중함을 본의 아니게 뼈저리게 느꼈던 베네치아에서의 첫 밤은 대조된 무게로, 그러나 비슷한 느낌의 두 갈래의 고민으로 보냈습니다. 어딘가에 안착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은 왜 자꾸만 발을 붙이지 못하고 동동 구르고 있는 걸까. 호스텔로 들어가야 할까 조금 더 걸어야 할까. 


@ 베네치아 구경
@ 리알토 다리
@ 내일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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