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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6. 2018

이탈리아 여행기(2)

#2. 오감을 사로잡는 도시, 베네치아


2017.10.22~30 이탈리아 밀라노/꼬모-베네치아-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여행기




 다음 날 아침은 일찍 리알토 다리로 다시 걸어가서 다리 밑의 한 가게에서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 한 조각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을 쬐며 산마르코 광장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금까지 봐온 유럽의 성당은 다들 비슷한 양식으로 느껴졌기에 별다른 기대 없이 갔는데 산마르코 성당은 정말이지 그 화려함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필 그 날 맑은 날씨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살짝 취해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날 봤던 모든 것들이 꿈처럼 남아있습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금빛 성당을 한참 둘러보고 옆으로 길게 펼쳐진 해안가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하늘 높이 던지고 받으며 꺄르륵 놀고 있었는데, 흐린 안개와 합쳐지니 마치 천국의 천사들을 보는 것 같아 그 꺄르륵 소리에 저도 덩덜아 행복해졌습니다.     


@ 베니스의 아침
@ 리알토다리에서 바라본 새 날의 전경
@ 에스프레소 콘파냐와 초콜릿 크로와상
@ 산 마르코 광장


 해안가에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더니 한적한 마을이 나왔습니다. 공용 빨랫줄에 널려있는 색색 깔깔 옷가지는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현실과 참 대조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줄을 같이 걸고 빨래를 널고 다시 수거하고 하는 과정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만약 옆집에서 실수로 내 양말을 가져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상상도 해보게 되었지요. ‘앗 미안! 내가 오늘 자네 양말을 가져와 신어버렸어.’ ‘오 어리석은 조르지오! 하하 괜찮다네. 다시 빨래해서 줄에 걸어두게!’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도 꽤나 괜찮은 수다의 한 모습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채도의 순서대로 널어둔 빨래들을 보며, 관광지의 주민들은 옷 하나를 입더라도 빨랫줄에 걸려있을 색깔을 코디하면서 입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 질서있게 널려있는 빨래들
@ 예술적 감각으로 빨래 널기


 벌써 점심시간이라 어제 가지 못했던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세 가지 메뉴로 구성되어있던 점심메뉴는 단 돈 €13!(서비스료 포함 €14.50) 원체 입이 짧아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저의 ‘위’대함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린페스토파스타, 가지를 기름에 데친 것 같은 요리, 그리고 삼계탕과 맛이 비슷했던 닭고기 요리. 너무 맛있어서 €14.50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파스타야 한국에서도 흡족하게 먹을 수 있지만 닭고기 요리와 가지 요리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레스토랑의 주변이 한적하면서도 너무 예뻐서 수로 위에 앉아 사진을 한참 찍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예전에 아이유 ‘하루 끝’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부라노 섬이 떠올라 지금 당장 거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항구로 찾아가는 길목이 너무 아름다워 ‘앗! 그냥 여기에 더 있을까?’ 잠시 흔들렸지만 항구로 직진했습니다.      


@ 그린페스토 파스타
@ 닭고기 요리와 가지 요리


@ 실로 베니스에서 제일 좋았던 곳


 배 놓치기 1분 전에 탑승 후 부라노로 가는 길은 한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부라노는 베니스보다는 아담했지만 훨씬 진한 색깔의 건물들이 유화 그림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색깔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선명한 원색의 건물 창문에 걸려 거꾸로 만세를 부르고 있는 티셔츠 한 장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이 곳에서 하루 종일 따뜻한 햇볕에 바짝 말려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온몸을 주욱 뻗어 가만히 균형을 유지하며 잘 말려지기.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게. 가만히 숨을 들이키며 부라노 섬에 있는 모든 강렬한 색채들을 흡수한 채 다시 베네치아로 가는 배에 탔습니다. 배에서는 이상하게도 미안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 의아하면서도 죄책감이 자꾸만 나를 따라오게 하는 그런 사람. 신났던 마음은 다 부라노 섬에 두고 왔는지 쓸쓸함 가득히 베니스에 다시 발을 디뎠습니다.     


@ 부라노 섬으로
@ 색색깔깔의 집들이 관광객들을 맞아줍니다


 다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한 식당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악단의 연주를 즐겼습니다. 연주를 들으며 반짝반짝한 산 마르코 광장의 야경을 바라보니 제가 마치 어디 영화제에라도 초청받은 양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노래 중 ‘십자가의 신비로’라는, 어릴 때 한창 성당 성가대를 할 때 자주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동시에 저는 유년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반팔을 입은 살갗을 차게 만들었던 성당 뒤편이, 그 퀴퀴하지만 시원한 성당 특유의 냄새가, 이마에 닿았던 차디찼던 성수의 느낌이. 그 날 베니스에서 들은 아름다운 연주는 로마에 가면 바티칸에서 꼭 미사에 참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쓰기만 했던 에스프레소가 고소해지기 시작했던 이탈리아의 3일 차였습니다.


@ 초승달이 뜬 베니스의 저녁
@ 다시 산마르코 광장으로


@ 맥주 한 잔과 곁들이는 음악
@ 잊지 못할 베니스에서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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