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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6. 2018

이탈리아 여행기(3)

#3. 위태로움 속의 안정감, 피렌체

2017.10.22~30 이탈리아 밀라노/꼬모-베네치아-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여행기




 베네치아를 떠나기 전 산타루치아 역쪽으로 다시 나와 한참을 앉아 있다가 언젠가 이 곳에 함께 오고 싶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야. 여기 정말 예쁘다.” 여전히 건조한 말투로, “여기서는 이상하게 엄마 생각만 났어. 아빠도 동생도 아닌 엄마만. 이상하지? 나중에 엄마랑 나랑 둘이만 오자!”하는 낯간지러운 말을 이제는 참 스스럼없이 잘도 합니다. 호스텔의 사소한 부스럼 소리에 일찍 잠이 깨 그냥 나와 버렸다는 저에게 “참 이상하다. 넌 어릴 때 자다가 누가 업어 가도 몰랐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엄마가 묻습니다. 그러게. 왜 이렇게 변했을까? 저도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29년이나 봐왔으니까 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해도 손색이 없는데, 그럼에도 “얘는 생선을 안 좋아해.”하면 “아니 엄마. 나 생선 엄청 잘 먹어.”하는 어색한 순간이 생깁니다. 엄마가 알고 있던 큰 딸은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아있을까. 너무 많이 변해서 엄마가 많이 슬펐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베네치아 산타마리아역 앞


 따사로운 햇볕 아래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베네치아를 힘겹게 등지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피렌체로. 피렌체는 사실 이탈리아 여행지 중 가장 기대치가 낮았던 곳입니다. 역에서 내리니 베네치아와 확연히 다른, 낡은 기운이 물씬 풍겼습니다. 피렌체는 티본 스테이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 도저히 혼자는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또 다시, 이탈리아 전문가 친구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을 찾아 파스타를 먹으러 갔습니다. 친구가 그 곳에선 반드시 까르보나라를 먹어야한다고 했는데 까르보나라 재료가 없다고 하는 웨이터. 까르보나라 재료라면 계란, 크림, 버섯, 베이컨, 뭐... 파마산 치즈 정도...? 어떻게 까르보나라 재료가 없을 수가 있지? 의문스러웠으나 웨이터에게 가장 맛있는 걸 추천해달라 하여 색다른 맛의 파스타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만두처럼도 보이는 이 파스타의 정체는 ‘라비올리’로, 안에는 명란 같은 짭쪼롬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 꽤 괜찮았던 라비올리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호스텔로 찾아갔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남자가 제 이름으로 예약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로봇처럼 “여권 주세요.”라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한국말에 하하 웃음이 터져나오며 “발음이 엄청 좋으시네요.”라고 했더니 “한국사람 많이 와요. 무료 지도”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고 지도를 건넵니다.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왜 이렇게 정감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내로 나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먼저 들렀습니다. 피렌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하얀바탕에 청록색 테두리로 둘러싸인 건물들. 이탈리아는 지역만 옮겨도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이게 피렌체의 느낌이구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안에는 프레스코식 벽화가 많았는데 흐릿흐릿한 그 벽화가, 내가 정말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 안에 들어와 있구나 라는 기분을 확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 피렌체 산타노벨라 성당


 피렌체에서는 세례당, 두오모 쿠폴라, 지오또의 종탑 등을 24시간 내로 다 볼 수 있는 원티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단 구매는 했는데, 종탑에 줄을 선 사람이 너무 많고 시간이 없어 티켓을 다 쓰지도 못하게 되었지요. 다음부터는 여유 시간과 어디에 그리고 몇 시에 사람들이 몰리는 지 철저히 계산을 해본 뒤 티켓 구매를 고려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두오모 쿠폴라는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장소였는데 천장이 정말이지 너무 높아서 사진을 찍는 내내 고개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딘가를 그래도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고 목이 빠져라 보는 내 자신이, 과거의 어느 시절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5유로 정도였던 통합권을 다 쓰지 못한 아쉬움은 젤라또 하나와 피렌체의 거리를 걷는 것으로 달래고 있었습니다.      


@ 피렌체 두오모
@ 깊이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


 베끼오 궁 근처에 있는 다리는 제가 피렌체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다리 위에 있는 집들은 위태로움과 동시에 계속 바라보고만 싶은 안정감도 주는 역설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이 장소는 저에게 따뜻한 노란빛으로 남아있습니다. 석양을 보러 미켈란젤로 정원으로 가는 길은 꽤나 가팔라서 중간까지 오르고는 ‘아 이정도면 잘 보이겠다.’ 나를 꾀려는 꼬마 악마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가훈을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결국은 끝까지 올라 눈앞에 펼쳐진 피렌체를 안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해가 지면서 핑크빛 방울을 톡 떨어뜨린 듯 파란 하늘에 확산되더니 금세 보랏빛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유독 핑크빛 보랏빛 하늘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제가 한국에 있을 땐 하늘을 유심하게 관찰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유럽의 하늘 색깔이 이렇게 고유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예쁜 하늘 아래 오똑 혼자 서있는 미켈란젤로 상의 사진을 하나 찍고 나서는 알 수 없이 우울해졌습니다.   


 

@ 다시 봐도 입맛이 다셔지는 젤라또
@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집

 

@ 미켈란젤로 정원으로 가는 길은 보는 것보다 가파릅니다
@ 물감 확산을 보는 듯 했던 하늘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데 그냥 뭔가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여, 정원에서 내려와 예쁘게 생긴 한 비스트로에 들어가 와인 한 잔과 피자 한 판을 해치웠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늘은 아주 깜깜하게 칠해졌고 노랗던 건물들은 드문드문한 창밖으로 빛을 뿜어내고들 있었습니다. 그냥 숙소에 들어가기는 너무 아쉬워서 다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 앞에 들어가 버스커들의 연주를 들으며 다시 조금씩 기운을 차린 저는 왜 피렌체에서의 일정을 하루만 잡았을까 후회했습니다. 다음에 오면 우피치 미술관도 가고,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 많은 계단을 다 올라 종탑위에서 내려봐야지 하며. 또 그렇게 불확실한 약속만이 늘어갑니다.     

@ 분위기 꽤 괜찮았던 비스트로에서
@ 피자 한 판을 혼자 해치운
@ 듬성듬성 켜진 불빛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너무 짧았던 피렌체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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