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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Jul 31. 2018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기(6)

#6. 어디선가 퀴디치를 하고 있을 해리포터를 상상하며, 에든버러 안녕

2017.9.6~9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기




 정말 마지막 날. 아침 일찍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기차역에 짐을 맡겨둔 후, ‘Arthur's seat'으로 향했습니다. 더블린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저를 붙잡듯 화창한 날씨에 에너지가 한껏 올라왔습니다. ’Arthur's seat'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주거단지는 힘들게 일한 후 맞이하는 주말 아침을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용조용히 걸었지요.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는데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나 나올 법한 숲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세 갈래의 길이 있었는데 아이유 ‘분홍신’의 가사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내 운명을 고르라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길치인 저는 따닥히도 붙어있던 세 갈래에서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하나를 선택해서 걸으며 구글 지도를 보면 틀려 있고, 다시 다음 길, 또 틀리고 마지막에야 제대로 된 길로 갈 수가 있었지요. 저는 제 운명을 고르려면 구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게스트하우스 안녕
@ Arthur's seat으로 가는 길
@ 눈을 감고 골라도 맞는 길을 고르지


 숲길을 헤쳐 올라가니 이번엔 오솔길이 펼쳐졌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Arthur's seat’에 올라가기 바로 직전 작은 동산과 호수 하나를 발견했는데 잔잔하니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어 꽤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호수를 감상했습니다. 그리고는 등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키가 작은 편이라 주로 굽이 조금 있는 투박한 구두를 신고 다니는데 하필 그날도 이 구두를 신은지라 비에 젖은 산을 오르는 것이, 또 조금 후에는 내려가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운동화를 신으리다 다짐을 하고는 낑낑대며 산을 올랐지요. 생각보다 많이 높아 그만 올라가고 여기서나 좀 쉬다가 내려갈까 하는 찰나 뒤를 돌았더니 세상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있더군요. 등산의 역설은 항상 옳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야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가훈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의자에 이름이 쓰여있었는데 누구 것인지 궁금합니다
@ Arthur's seat으로 올라가는 길


 헥헥대며 한 10분 정도 더 올랐을 때 작은 탑처럼 생긴 하얀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네. 그것이 바로 제가 그토록 산까지 오르며 찾아 헤맸던 ‘Arthur's seat’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Arthur 이 새키 가만 안 둬!’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산 비틀에 앉아 밑을 내려다보니 한편으로는 Arthur가 굳이 왜 여기에 조만한 의자를 지어 앉아있었을까 이해는 되었지요. 사람이 많아 시끄러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잔잔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차 사람들의 소음은 옅어지고 오로지 제가 보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건 제가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 중에 속하는 일례인지라, 그저 좋았습니다. 감사히도 에든버러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 그건 제 인생에서 여러 가지들이 얽히고설켜 빚어낸 결과물일 테니, 제게 주어졌던 모든 행운과 불행에까지 감사했지요.     


@ 꼭대기 저 아저씨가 손대고 있는 것이 바로 Arthur's seat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험난했습니다. 주춤주춤 한 발 한 발 겨우 떼내며 내려오는 도중, 한 젠틀맨이 “Do you need help?” 하며 손을 내밀어 왔습니다. 저는 거절의 미덕을 모르는 여자라 덥석 그의 손을 잡고 “Oh Thank you!” 하며 그의 도움을 받아 내려왔습니다. 여행 중 만난 은인들의 선행은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기에 항시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제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발견하면 받은 만큼, 혹은 기회가 된다면 보다 더 되돌려주어 선이라는 것이 순환할 수 있도록 기여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오전보다 더욱 화창한 날씨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자꾸 언덕길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올라오는 것입니다. 궁금증이 발동해 그들이 올라오는 길 그대로 내려갔지요. 그러다 보니 웬 궁전같이 생긴 곳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Queen's gallery’였습니다.  


    

@ The Queen's Gallery


 계획했던 예산보다 초과지출이라 차마 갤러리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기념품샵과 외관을 구경하고 무엇보다 저에게 가장 급박했던 화장실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을 돌아보니 꽤 현대적인 건물이 하나 보였습니다.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이었습니다. 무료입장이라는 표지를 보고 고대로 따라 들어가 작지만 공항을 연상케 하는 삼엄한 심사를 마치고 국회의사당에 입장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정치 과정을 꽤나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었고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의결을 하는 곳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제가 계속 사고 싶어 하던 체크무늬 장갑이 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40파운드라는 비싼 가격에 계속 머뭇머뭇 거리다가, 그래! 시내에서 더 저렴한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비록 이 장갑보다는 안 예쁘겠지만... 하며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버렸지요.(다행히 더 예쁘고 저렴한 장갑을 찾았다는 해피엔딩이)     


@ 국회의사당 앞마당
@ 에든버러의 수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낮
@ 점심으로 줄까지 서며 먹었던 오잉크버거. 맛은... 너무 짭니다


 맑은 날씨의 에든버러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해리포터가 어디선가 퀴디치를 하고 있을 것 같은 풍경. 에든버러의 엘리펀트 카페는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집필 장소로 유명합니다. 그 카페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저 에든버러 시내만 둘러봐도 이 곳의 그 어떤 무언가가 그녀의 상상력을 이렇게까지 건드릴 수 있었구나 추리를, 혹은 실제로 그녀가 정말로 마법을 목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모함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내셔널 박물관이었습니다. 런던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분류로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엔 스콧 기념비 앞에 있는 공원에 앉아 에든버러 성곽 쪽으로 시야를 확보하며 앉아있었습니다. 더블린의 한 공원처럼 많은 청년들이 간만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박물관 내부
@ 박물관 내부
@ 평화로운 한 낮의 에든버러


 더블린에 온 김에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는 다시 와보고 싶은 곳도 점점 늘어나는데, 한정된 저의 자원들에 사뭇 섭섭합니다. 그래도, 일생 중 가장 책임감이 없는 상태에서 노닥노닥 곳곳을 헤매며 다녔던 이 시간들은, 다시 같은 장소로 여행을 온다 할지라도 똑같은 여정이 될 수는 없으므로. 지금의 나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을 누려야겠습니다. 흠뻑 취해있던 에든버러도, 이렇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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