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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9. 2018

벨기에 여행기(1)

#1. 작지만 무한 매력을 가진 벨기에, 브뤼셀-브뤼헤


2017.10.10~12 벨기에 브뤼셀, 브뤼헤 여행기




 더블린에서 가장 가까워진 친구는 아이리쉬도, 한국인도 아닌, 참 엉뚱하게도 ‘벨지안’이었습니다. ‘벨기에’라고 하면 와플이나 비정상회담의 ‘줄리앙’밖에는 모를 정도로 생소한 나라였는데. 한국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으로 유창한 한국말과 한국음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친구로 인해 저희는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현재 더블린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10월에 휴가가 있어 벨기에 집에 다녀온다며, 브뤼쉘 여행 생각이 있으면 맞춰서 오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도 마침 SuperValu에서 Dayoff를 신청할 수 있어 그렇게 저희의 벨기에 여행은 급 결정되었습니다. 외국인 친구의 집으로 가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고, 이렇게 며칠 신세를 져도 괜찮은 것인가 양심적인 고민도 되었지만 친구는 오히려 가족들도 환영해줄 거라며 저보다 신나 했지요.     


@ 기대보다 훨씬 더 맛있었던 벨기에 감자튀김


 이 친구는 입맛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나름 맛있는 빵집을 찾아 친구에게 알려주면 “벨기에에 맛있는 빵 진짜 많아!”, 식당에 가면 “벨기에가 훨씬 싸고 맛있어!” 초콜릿을 하나 쥐어주면 “웩! 네가 벨기에 초콜릿을 한 번 먹어봐야 해.” 맛 자부심이 아주 강했습니다. 제가 아는 맛의 나라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였기에, 그때만 해도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지요. 10월 10일, 브뤼셀 공항에 도착.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친구의 차를 타고 먼저 집으로 향했습니다. 짐을 놓자마자 친구가 저를 끌고 간 곳은 동네의 한 빵집. 갖가지 빵을 주문해주더니 먹으라고 강요합니다. 과연 친구가 자랑한 대로 맛있었습니다. 어떠냐고 재차 묻는 친구에게 “그래! 더블린 빵보다 훨씬 훨씬 맛있다!” 마음에 쏙 드는 답변을 해주었지요. 그리고는 친구가 자주 간다는 유기농 마켓에 들렀습니다. 신선한 채소는 물론, 각종 건강한 재료들을 아주 예쁘게 팔고 있었습니다.(개인적으로 다른 관광명소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 영국이나 아일랜드보다 훨씬 맛있는 벨기에 빵
@ 유기농 샵


 이제 본격적인 브뤼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내로 나가려 트램을 기다리는데 정류장 이름이 두 가지로 병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벨기에는 아주 복잡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의 투쟁 무대였고, 워털루 싸움에서 나폴레옹의 실패로 네덜란드에 합병되었다가 결국 독립하여 왕국으로 승인되지요. 그래서 브뤼셀을 중심으로 북부는 네덜란드어, 남부는 프랑스어, 곳곳에 독일어는 쓰는 지역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친구는 브뤼셀 토박이인데 불어를 모국어로 씁니다. 더블린에 와서 브라질-포르투갈, 파나마-멕시코-스페인, 벨기에-프랑스 이렇게 다른 국가의 친구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걸 목격할 수 있었고, 그게 퍽 신기했습니다. 나와 다른 나라의 사람인데 같은 언어를 쓰면, 정서적으로 조금 더 친밀하게 느껴질까? 하물며 벨기에처럼 같은 국가 안에서 여러 개의 언어를 쓰는 건 더욱 진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 본격 브뤼셀 탐험


 그랑플랑스부터 시청사, 예술의 언덕 등을 돌며 느낀 건, 브뤼셀은 확실히 작지만 굉장히 정교하고 흐린 날씨가 음침함이 아닌 운치를 더해 고상함을 느끼게 해주는 도시였다는 겁니다. 또,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도란도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듯했지요. 각종 초콜릿, 쿠키, 마카롱 등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드는 예쁘고 달콤한 가게들. 특히 초콜릿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갖가지 정말 창의적인 모양들이 많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유명한 ‘벨기에 맥주’를 마시러 펍으로 가는 길에 브뤼셀의 상징물 ‘오줌싸개 동상’을 만났습니다. 이 날은 멕시코 모자 같은 것과 함께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지요.(루이 15세가 동상의 약탈을 사과하는 의미로 프랑스 후작의 의상을 입혀 돌려보낸 것으로 시작된 전통) 세상에서 가장 실망적인 여행 관광거리로 뽑혔다고 하는데, 그것은 슬프게도 사실이었습니다.     


@ 예술의 언덕
@ 카마수트라 초콜릿
@ 낮의 그랑플라스
@ 내가 바로 오줌싸개 동상이올시다!


 다음 날은 기차를 타고 브뤼헤에 갔습니다. 가는 동안 기차가 연착되어 저는 살짝 지쳐있었는데, 친구나 다른 승객들은 모두 태평해 보였지요. 유럽인에게 기차 연착은 당연한 일상이라고 합니다. 내리자마자 마르크트 광장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발루봉’이라는 닭고기 크림 요리와 생선요리를 정말 별 다른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과연 친구가 벨기에 맛 부심을 부린 것에는 근거가 있었구나 싶었지요. 특히 빵에 발라 먹는 ‘RILLETTES’라는 이 스프레드는 고기를 갈아 만든 것인데, 짭조름한 참치 맛 같은 것이 제 입맛을 바로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제가 맛있게 먹으니 친구도 꽤 흡족한 모양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브뤼헤의 유람선을 타고 마을을 돌아봤습니다. 강을 건너며 보는 뾰족뾰족한 건물의 지붕들이 벨기에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 RILLETTES 스프레드
@ 생선요리와 발루봉
@ 브뤼헤 마르크트 광장
@ 브뤼헤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뾰족뾰족한 지붕


 유럽여행 책자에도 브뤼셀은 반나절 여행코스로 짜여 있을 만큼 정말 작은 도시였습니다. 만약 혼자 여행을 왔다면 큰 감흥 없이 휘리릭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저에게는 벨기에 친구가 있었고, 그로 인해 브뤼셀이나 브뤼헤 거리를 걸으며 벨기에의 문화 같은 것들, 예를 들면 다국어를 쓰는 만큼 혼혈도 많아 벨지안-벨지안 순혈을 보는 것이 더 어렵다던가, 그래서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통합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지요. 길거리 음식이 흔치 않은 유럽에서 €1 짜리 와플이나 감자튀김(두 번 튀겼기에 특별한 바삭함을 지녔다고, 친구가 침을 튀며 설명합니다. 프렌치프라이가 아니라 벨지안 프라이가 맞다며...) 등 따뜻한 간식거리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듣던 대로 벨기에 초콜릿은 남다른 스윗함을 지녔고, 깊이 있는 맛의 벨기에 맥주는 저를 벨기에와 사랑에 빠지게 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이런 사소한 가치들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지금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브뤼셀의 저녁
@ 밤이 찾아온 그랑플라스
@ 더욱 더 예쁘게 반짝입니다
@ 사랑에 빠져버린 벨기에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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