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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9. 2018

벨기에 여행기(2)

#2. 가족의 의미를 새기며 걸었던 '크리스마스 마켓'


2017.12.24~28 벨기에 브뤼셀 크리스마스 마켓 방문




 한 11월쯤부터였을까. 더블린에도 벌써부터 거리마다 빨갛고 파란 전구들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오코넬 스트릿은 언뜻 보기에 한국의 명동 거리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학원도 휴교, 아르바이트도 휴무. 아이리쉬 선생님 말로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으니, 장은 미리미리 봐 두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이 성황기인데 말이지요. 또,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커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크리스마스가 100일 기념일이 되도록 계산하여 교제를 시작하기도 하고, ‘솔로대첩’이라는 아주 거대한 이벤트가 성화를 이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감사스럽게도, 크리스마스란 커플의 전유물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리츄얼'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과 같은 것이지요.     


@ 10월과는 또 다른 그랑플라스의 풍경


 12월 24일부터 28일까지. 벨기에 친구(브뤼셀을 함께 여행한)에게 초대받아 2017년의 크리스마스는 브뤼셀의 가정집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가족들의 선물을 사는 것도 함께 도와주고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처럼 브뤼셀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버킷리스트를 적어둔 것 중에 ‘독일 산타마을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라는 목록이 있었습니다. 독일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는 으뜸이라 하여 꼭 가보고 싶었지만, 친구 덕분에 벨기에에서라도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지요. 마켓이 열리는 중심지까지 걷는 내내 콩닥콩닥.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도착. 저희가 제일 먼저 산 것은 뱅쇼. 한 손에 쥐어지는 뱅쇼를 난로 삼아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 뱅쇼와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 시작


 맛있게 구워낸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부터 그릴 치즈 샌드위치, 설탕이 범벅이 된 넛 종류들. 아일랜드에는 길거리 음식이 흔치 않아 늘 불만이었는데, 브뤼셀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채워 넣을 수 없는 저의 작은 위장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수공예품이나 작은 선물가게들이 제 지갑을 열게 만듭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상점들의 불빛은 더욱 환해지고 이제 정말 크리스마스 마을로 진입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리마다 가족 단위로 손을 잡고, 혹은 아기를 목마를 태우며 맛있고 뜨거운 것들을 호호 불어가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늦어 다시 친구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0월에 이어 친구의 가족들을 두 번째로 뵙는 거라 이제는 조금 친근하게 비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프랑스에서 비쥬는 양쪽 볼에 두 번, 벨기에에서는 오른쪽 뺨에 한 번인데, 최근 프랑스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지내다 보니 벨기에 친구의 동생이 공항에 마중 나왔을 때 두 번 비쥬를 하려는 저돌적인 저의 입술에 동생이 무척이나 당황했답니다.)    


 


 집에는 작지만 따뜻해 보이는 트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알록달록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반겨주었던 이 집의 고양이 두 마리. 룰루와 나타샤. 룰루는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개냥이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고 나타샤는 전형적인 시크한 고양이라, 친구의 어머니와만 교감이 깊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정성스레 해주신 요리와 맛 좋은 와인을 한 잔씩 나누어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남의 가족의 명절모임에, 친구를 떠나 이방인의 신분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있다는 자체가 웃기기도 했지만 따뜻한 친구의 가족은 저의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주실 정도로 저를 환영해주셨습니다. 함께 선물을 열며 서로에게 고맙다며 뽀뽀를 해주는 장면은 저에게 새로운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값비싼 명품이나 현금도 아닌, 그저 서로가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며 의미 있는 선물들을 골랐을 이 가족. 이런 단란한 모습이 지금 제가 좋아하는 이 친구의 사랑스러움을 빚어낸 거겠지요.


@ 새우관자크림요리, 라자냐


@ 작은 트리 밑에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 가족
@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탁
@ 오늘의 포토제닉, 룰루 LOULOU


 벨기에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방에서 시상식을 보고 있을 엄마, 늘처럼 거실에서 따로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을 아빠. 그리고 신나게 친구들과 홍대나 건대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동생까지. 한 집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늘 같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사실은 그때에도 우리는 함께 있지 않았던 거구나 깨닫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도 각자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우리. 그런 것들이 이제야, 아빠의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덮어가는 이제야, 관절이 약한 엄마의 손가락이 구부러진 이제야 시큰해집니다. 스물아홉에도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저를. 장난감 피아노도, 킥보드도 필요 없으니, 불가피한 선 하나가 우리 가족을 제각각 떼어놓는 그 순간까지는 되도록 자주, 반드시 네 식구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지구 반대편에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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