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굳이 뭘 더하지 않아도 찬란한 에펠탑이여, 파리
2018.4.14~18 프랑스 파리, 몽생미셸 여행기
크리스마스 이후에 꽤 오랜만의 여행이라 마치 소풍 가듯 달뜬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더블린에 살면서 왜 여지껏 거길 안 갔어?’ 지겹게도 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로의 여행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브뤼셀이랑 별 다를 게 없을 거야!’ ‘유럽 다 똑같아!’ 파리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Grumpy 했던 친구와의 약간의 마찰이 있어 걱정이 되었지만 본인 왈 “막상 여행 가면 Happy 할 거야!”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내비치는데 찌릿한 눈빛 말고는 더 줄 것이 없었지요. 연달아 비가 왔던 아일랜드의 날씨마저 참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더블린 공항에 가는 날이면 특별할 것 없는 Irish breakfast나 오믈렛이 왜 그렇게 먹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배를 채우고 비행기에 탑승 후 잠시 기절해 있다가 승무원이 내미는 프레첼과 음료수에 눈을 떴습니다. 항상 라이언에어만 타다 보니, 갑작스러운 간식 제공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Is it free?”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봤고 승무원은 아주 인심 좋은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파리 공항에 내려 RER이라는 열차를 타려 입구에 들어서려는 찰나, 어떤 아이가 제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위로 휘젓고 또 다른 뚱뚱한 아주머니가 제 뒤에 밀착해있었습니다. 처음엔 ‘뭐야’ 싶었는데 이내 ‘아! 소매치기구나!’ 깨달아 옆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고쳐 메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코백이었는데 다행히 지갑을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지라 역시 악명 높은 파리답군 경계심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숙소까지 오니 이미 5시가 넘어있었습니다. 장장 3시간이나 걸리다니! 벌써부터 피로함이 몰려옵니다. 그래도 Air BnB 깔끔한 숙소를 둘러 보고 나니 다시 의욕이 타올랐고 저희는 우선 크레페를 먹으러 나갔습니다. 또 다른 벨기에 친구 기욤이 강추해준 곳인데, 호기심에 럼과 과일이 들어간 크레페를 주문했다가 쓴맛을 호되게 당해버렸습니다. 맛없는 메뉴를 주문한 우리를 탓해야 하는 건지, 기욤의 입맛을 혼내줘야 하는 건지 저희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이 미각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파리 여행 시작. 멀찌감치 바라보는 개선문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습니다. 과연 역사에 기록된 나폴레옹의 위업은 엄청난 거였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샹젤리제 거리를 찾아가는데, 명동 한복판과 같은 그 커다란 상권이 샹젤리제임을 길을 걷는 도중 깨닫고는 크게 실망을 해버렸지요. 노천카페나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한 곳일 것 같은 이름인데. 씁쓸했지만 아주 큰 가게에 들어가 비싼 케이크이나 마카롱들을 잔뜩 구경하고는 에펠탑으로 향했습니다. 더블린보다 10도나 높아서 특별한 걸 하고 있지 않아도 기분은 마냥 좋았습니다. 멀리서 기념품처럼 작게 보이는 에펠탑에 발걸음은 빨라지고 드디어 세계에서 손에 꼽는 랜드마크 아래에 섰습니다. 저는 원래 철조 건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에펠탑은 빛나지 않아도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경을 보고 들어가려던 계획은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로 무산되고 저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빵과 브리치즈, RILLETTES, 과일, 와인 반 병 등을 샀습니다. 조촐한 디너를 함께하고 다음 날을 기약합니다.
둘째 날, 크로와상과 커피로 고소하게 여는 아침을 기대했는데, 일요일이라 웬만한 상점의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직행합니다. 더블린에 일 년이 넘게 머무면서 웬만한 여행지를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곳에서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 가이드! 번역조차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었지요. 너무나 어마어마한 규모라 모든 곳을 다 둘러볼 수는 없어 저희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습니다. 루브르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벽시계 동부터 이집트 전시관, 아폴론 갤러리, 루브르의 꽃이라고 불리는 모나리자 등. 한국어 가이드로 설명을 들으니 정보가 명료하게도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옵니다. 그간 영어로만 가이드를 듣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뇌야. 그에 따른 보상이란다. 개인적으로 영국의 대영박물관보다 전시를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장장 두 시간이 넘게 내부를 구경하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봤던 다이아몬드 형태의 건축물, 그리고 퇼리르 정원까지. 풋풋한 날씨를 한껏 만끽하며 사진을 한창 찍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생제르맹 거리로 나섰습니다.
벨기에에도 있다는 엄청나게 맛있는 빵집. 욕심이 발동한 친구는 바게트, 레몬 머랭 케이크, 까르보나라 포카치아, 마들렌, 머핀 등 여러 가짓수를 골랐고, 저희는 다시 퇼리르 정원으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간판으로만 봤던 '파리바게트'구나. 살짝 뜯어먹는 순간, 제가 여태까지 먹어왔던 바게트는 신문지였음을 깨닫습니다. 더블린에 살면서 제일 그리운 게 한국의 식빵인데, 비록 식빵은 없었지만 그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던 점심이었지요. 루브르에서 너무 헤매고 걸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우리의 체력이 바닥인 건지. 전자라고 희망하며 숙소에서 한 시간만 쉬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밤 위층에서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TV 소리에 둘 다 잠을 설쳤던 지라, 한 시간으로 압축된 수면이 오히려 양질이었습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청, 콩시에르쥬리, 스트라빈스키 광장을 구경하고 노트르담까지 걸었습니다.
벚꽃이 가득 핀 노트르담 뒤편은 혜화역을 상기시켰습니다. 노트르담 성당 내부에 들어가 저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성당에 웬 카드결제기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성당 내부로 들어갈 때면 항상 촛불에 불을 붙이는 값으로 €1 정도 받는 헌금통이 놓여있었는데, 카드 결제기가 있을 줄이야. 저도 가톨릭 신자이지만(불성실한) 순수한 헌금의 행위마저 관광산업으로 변질되는 것만 같아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어느덧 저녁 시간. 파리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멀끔하게 생긴 한 프랑스 남자가 와인에 잔뜩 취했는지 아주 큰 목소리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파리의 좋은 레스토랑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순발력 좋은 저의 친구가 식당 이름을 기억해놓아 오늘은 그곳에 가기로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고, 잘 알고 있는 파스타 말고 생소한 음식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깔라마리와 가지 튀김, 이탈리안 라비올리 요리와 함께, 하도 걸어서 텁텁해진 목구멍을 맥주로 깨끗이 넘겨내고 나니 파리에 잘 왔다 싶습니다.
드디어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샤이오 궁으로 향했습니다. 낮에도 예쁘지만 밤이야말로 반짝반짝 너의 진가를 발휘하는구나. 사진을 수장 찍기도 해보고, 한참 바라보기도 해보고. 평소 같으면 이 장면을 어떻게 메모해놔야 이담에 예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할 텐데. 그 날은 그저 넋을 놓고 에펠탑만을 응시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보기만 해도 좋으니까. 굳이 뭘 더하려 하지 말자며. 그렇게 최대한 그 광경을 흡수하고는 숙소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