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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영 Aug 06. 2018

이탈리아 여행기(8)

#8. '역사' 그 자체인 '로마'라는 도시


2017.10.22~30 이탈리아 밀라노/꼬모-베네치아-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여행기




 로마,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갰습니다. 오늘은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신청한 날이었습니다. 어제 간 김에 한꺼번에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게 다 가이드를 늦게 예약한 저의 불찰이었지요. 저는 그 날 로마의 지하철을 처음 타봤는데, 과연 악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음침했습니다. 가방을 앞으로 메곤 그것도 모자라 두 손으로 꼭 안고 바티칸에 내렸습니다. 가이드를 함께 할 사람들은 주로 커플이 많아, '대학생 연인들끼리 유럽여행을 많이 다니는구나.'라고 별생각 없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전부 신혼부부들이었습니다. 허걱! 다들 나보다 어리게 생겼는데 벌써 결혼을 했나? 흠칫하다가 ‘아 맞아. 나 서른이지.’ 허탈한 웃음을 지었지요. 유럽여행을 하면서 한국어 가이드를 듣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박물관 입장 전 주요 작품에 대한 예습과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가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에 셀카봉 반입이 금지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셀카봉을 휘두르다 조각상을 많이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박물관 물건, 심지어 바티칸의 물건을 파손하면 얼마 큼을 배상해야 하는 걸까 제가 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관람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죽어가는 아들을 보는 애처로운 아버지의 표정이 아주 선명하게 묘사되어있던 조각 작품이었습니다. 돌과 칼이라는 거친 재료들로 어떻게 이런 매끄럽고 정교한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었을까 봐도 봐도 신기했습니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왕이 3세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그림들에서 아이를 지키려 발버둥 치는 엄마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으로 걸어가는 복도의 천장화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빛을 내고 있었는데 마치 제가 천국에라도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천국으로 가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니,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 넓은 박물관을 저 혼자 왔다면 그 가치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걷고 또 걸었겠구나 싶었지요. 뭐니 뭐니 해도 바티칸의 클라이맥스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였습니다. 아주 높고 면적이 넓은 천장에 있는 이 그림을 천천히 걸어가며, 찬찬히 뜯어보았습니다. 율리시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그림을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이내 다른 화가와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결국 붓을 잡았다고 합니다. 저도 유독 욕심이 없다가도 작은 라이벌 의식에 불이 붙으면 화라락 불타오르는 성격이라 미켈란젤로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타오른 불씨는 이렇게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명작을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성가가 흘러나와 ‘천지창조’의 성스러움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 숨어있는 유명인사 찾기 그림


 어제 로마패스를 다 쓰지 못해 바티칸에서 가이드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다시 팔라티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로 향해야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였던, 지금은 콜로세움처럼 잔해만 남은 듯 보였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보니, 고대 로마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아직도 땅만 파면 유물들이 나와 여러 지역에서 공사 중이라는 로마. 어쩜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이 계속 발굴되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동시에 빼앗긴 우리의 유물, 까맣게 타버린 문화재들이 생각나 괜히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점심시간이 되어 시내로 돌아와 한 레스토랑에 앉았습니다. 바티칸 성물방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산 ‘장미향 묵주’를 꺼내 찬찬히 보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교황님을 봤다고 자랑도 하고,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 엄마랑 이탈리아에 꼭 같이 오겠다고 허세도 부렸지요. 이탈리아는 유독 엄마를 상기시키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저녁 비행기라 시내를 조금 더 구경하고 로마 떼르미니 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로마의 공항은 피우미치노, 치암피노 이렇게 두 개인데, 처음에 이름이 헷갈려서 표도 잘못 살 뻔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줄을 바꿔 섰습니다. 공항행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운행하는 듯했는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탑승조차 하지 못했을 뻔하여 다시금 ‘미리미리’를 실천하자는 다짐을 했지요. 일주일간의 이탈리아 세상 구경을 마치고 더블린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저의 삶은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느껴집니다. 진짜 집으로, 인천으로 돌아가는 날은 어떤 기분이 들까. 아직은 액자의 내부에 조금 더 머물면서, 지구 반대편의 삶을 천천히 더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럼 다시 액자의 중간쯤을 차지할 더블린 집으로. 이탈리아도 이렇게 안녕.


@ 이렇게 로마도 안녕, 다음엔 엄마와 함께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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