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잠자던 신앙심의 코털을 건드린, 바티칸에서의 미사
2017.10.22~30 이탈리아 밀라노/꼬모-베네치아-피렌체(피사)-친퀘테레-로마 여행기
로마 2일 차.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볼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높이도 들떠있었습니다. 다행히 숙소 앞에 바티칸까지 한 번에 가는 트램이 있었습니다. 40분간의 여정 끝에 도착한 바티칸 시티.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검색을 받아야 했는데 공항, 특히 더블린 공항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삼엄했습니다. 열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이 성당을 위에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옆 건물은 교황님의 거처. 그저 생경하기만 했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한 번 천천히 둘러본 후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복사부터 사제, 추기경들이 하나씩 들어오는데 저도 모르게 살갗에 소름이 올라왔습니다.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 그중에는 언뜻언뜻 아는 라틴어도 들려오고 입술이 기억하고 있는 노래들도 있었으며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이게 이 기도문이겠구나 몸이 저절로 미사의 진행 순서를 따라갔습니다.
엄숙한 와중에 당황한 한 차례가 있었는데 바로 옆 사람과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미사 중에는 평화의 기도가 끝난 후 사제가 신자들에게 서로 평화를 빌어달라고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 보통 한국에서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옆사람에게, 앞뒤 사람에게, 혹은 눈이 마주치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가 내민 정처 없는 손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아 맞아! 여기서는 ‘평화를 빕니다!’하고 악수를 했었지. 예전에 더블린에서 미사에 한 번 참석했을 때도 여기서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잊고 있다가 아주 기본적인 문화 차이를 다시금 로마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도 한국에 들어올 때는 선택적 수용이 되었구나 하며 혼자 웃음을 짓고 미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도 쉽게 가시질 않는 성스러움이 저를 에워싸 밖으로 나가서 교황님을 기다렸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일요일 12시마다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주신다는 교황님. 12시가 다 되어가니 수많은 인파가 모였고, 마치 에버랜드의 파도풀을 상기시켰습니다.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시고는 다정스레 손을 흔들어주시는 교황 프란체스코 1세. ‘신앙이 없으면 자신의 신념을 믿으면 된다’ 던 종교를 초월한 현명한 대답을 했던 그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교황은 인사와 함께 바티칸에 온 각 나라의 단체들의 이름들을 한 번씩 불러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서는 “God bless you POPE!” 팬클럽을 방불케 하는 외침들이 들려왔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돌아가 무수한 관중들과 함께 왕의 연설이라도 본 것 같은, 이 날의 광경은 너무나 강렬히 제 마음 안에 자리 잡혀 아마 죽기 전에 떠올릴 하나의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줄이 너무 길어 그냥 다른 곳에 갈까 했지만, 다른 식당과 달리 투명한 창문을 통해 요리사가 통통한 면을 직접 반죽하고 뽑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호기심이 제 발목을 꽉 붙들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자리에 앉았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주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습니다. 저는 두꺼운 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참 맛있게도 먹었습니다. 다만 파마산 치즈가 너무 들어가 제 입맛에는 조금 짰습니다. 돈은 좀 빨리 받아가려나 했지만 또 한참 기다린 후에야 계산을 하고 나올 수 있었지요. 점심 때문에 거의 한 시간을 허비하고는 허겁지겁 콜로세움으로 갔습니다. 이제 드디어 어제 역에서 구매한 로마패스를 개시합니다.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그리고 포로 로마노는 폐장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기 때문에 일정을 촘촘하게 잘 짜시기를 권유합니다.
콜로세움은 워낙에 교과서에서도, 심지어 즐겨하던 게임에서도 자주 봤었기에. 오히려 그래서 더욱 기대감이 없었던 장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외관을 보는 즉시 압도당하고 말았지요. 예상보다 규모가 훨씬 컸고 더 웅장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남은 이 거대한 유산이 로마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겠구나 감히 추측해보며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수많은 문화재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했습니다. 콜로세움의 내부는 외관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글래디에이터와 맹수의 잔혹한 전투이자, 관중들에게는 짜릿한 축제가 벌어졌던 콜로세움.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콜로세움의 내부는 마치 거대한 동물의 잔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프렌즈’의 조이가 Thanks giving day의 거위 고기를 반 정도 먹었을 때 보였던 뼈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축제 건 전투건, 뭐가 됐든 골조만 남았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골조라도 남은 게 어디야 라는 안도감도 들었지요.
콜로세움에서 나와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에서 사진을 남기고 버스를 타고 천사의 성으로 갔습니다. 어느 교황이 이 성 꼭대기에서 미카엘 천사의 환상을 본 뒤 흑사병이 사라졌다고 하여 천사의 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성도 성이지만 다리에 있는 천사의 상들도 역동적이고 멋졌습니다. 어릴 때는 ‘천사’라는 게 여리고 유약한 존재라고 줄곧 생각을 해왔었는데 저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특히 로마의 태양이 지는 하늘 아래의 천사들은 매우 강인한 자태로 곧 승천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핑크빛 하늘이 번지고 있었고, 저물고 있는 로마의 마지막 하늘을 아쉬워하며 다시 시내로 돌아갔습니다. 뜨레비 분수의 야경, 나보나 광장을 돌며 더블린에 있는 친구에게 줄 기념품들을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