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높음"은 백인이 아니다
한국은 다인종 국가다. 2020년 기준으로 약 3.9퍼센트의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고 매년마다 국제결혼의 추세는 늘어난다.* 인종으로 보자면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는 건 중국인, 베트남인, 태국인이다. 그리고 외국인을 제외하면 당연히 한국인이 가장 많다.
인종 얘기로 시작된 이 글은 사실 대한민국 패션 시장에 대한 글이다. 어느 날 부터, 모든 쇼핑몰을 점령한 백인에 대해서 말이다.
29cm, w컨셉 등 소위말하는 ”감도 높음”을 자랑하는 온라인 편집샵을 둘러보자면 이상하리 만큼 백인이 많다. 입점한 국내 패션 브랜드들의 대다수가 모델로 한국인이 아닌 백인을 쓰며 아시아인이 절대 다수인 패션 시장에서 화이트워싱을 자처하고 있다.
패션은 이미지다. 옷을 파는 것은 이미지를 파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국내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백인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옷 뿐만 아니라 모자나 귀걸이 같은 악세서리들까지도. 그들은 백인에게서 어떤 이미지를 보았고, 무엇을 전달하려 하나? 그들이 말하는 “감성적” “감도높음” “세련됨”은 백인인가? 왜 패션씬에서 한국인이 지워지는가? 그것도 자발적으로.
중요한 건 소비자는 대다수가 아시아인인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본디 모델 핏이란건 이상적인 것이나 일단 실용적인 측면에서 백인 모델의 신체는 아시아인과 다르다. 소비자인 한국인이 백인 모델의 핏을 보며 얻는 효용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모델 핏과의 괴리는 더 커진다.
그런데도 브랜드들은 시간이 갈 수록 더 많은 백인들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미 쇼핑몰 썸네일의 반은 이미 백인이다. 이러한 현상이 매우 괴이한 이유는 백인 모델의 기용이 소비자 입장에서 명확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백인이 많은 서구권으로의 진출을 앞둔 것이 아니라면, 지난 시즌 한국인 모델을 썼던 브랜드들이 모조리 백인을 데려와 컨셉 화보를 촬영하는 지금 한국 패션계의 현상은 의문스럽다.
스웨덴 브랜드인 아르켓은 특유의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의류를 판매한다. 아르켓의 어느 나라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다양한 인종이 그들의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의 타겟 시장이 글로벌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아르켓의 주요 무대는 유럽이고 2021년 여의도 한국 매장을 오픈 한 것이 첫 아시아 진출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그들은 특정 인종을 통해 그들의 패션 아이덴티티를 전달하지 않는다.
특정 인종의 차용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타 인종을 배제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브랜드의 우아함은 인종에서 오지 않는다. 좋은 브랜드는 옷으로 말해야 한다. 감동적인 퀄리티, 입었을 때 훌륭한 핏, 그리고 그로 인해 전달되는 일관적인 메시지.
튼튼한 기획이나 아이덴티티 없이 단순히 백인 모델을 씀으로써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면, 얻고자 하는 이미지는 무엇이며 그것이 과연 특정 인종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패션은 다양한 아름다움과 개성에 대해 논해야 하는 분야임이 분명하기에, 나는 우연히 들어간 한국 쇼핑몰에서 무분별한 화이트워싱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책<다문화 쇼크>, 법무부 출입국 통계 인용
**패션업계 화이트워싱 관련 최근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