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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집 Oct 29. 2019

성령 뒤를 볼까요

아이가 밝은누리공동체 안 아름다운마을학교에 다닙니다. 강북구 인수동에는 초등과정이 있고, 홍천 서석면에 생동중학교, 삼일학림이라는 중등, 후기 중등 과정 기숙형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밝은누리공동체는 기독교를 바탕에 둔 공동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본 분들은 구성원 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하시지만 현재 '마을'이라고 하는 공동체들에 비해 밀도가 높습니다. 신뢰랄까, 응집력이랄까, 어떤 균질함이랄까. 종교가 끈이자 원동력일까. 그 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늘 궁금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방학에 3, 4년 전쯤 공동체로 이사 오신, 아이와 같은 학년 학부모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지낸 이야기를 하다가 이 공동체의 높은 밀도, 신뢰는 어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여쭸습니다. 매주 해날(주일) 작은 모임들을 나눠 갖는데, 그 모임에서 돌아가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들은 이들이 피드백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듣기 싫은 이야기, 기분 나쁜 말들도 있는데 그럴 땐 "성령이 저분을 통해 해 주시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한답니다.

출처 : 언스플래시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성령"이라는 단어에서 풉! 웃음이 터졌습니다. "성령"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편적인 지점을 보면 좋겠습니다. 요는 성령이 아니라 내가 듣기 싫은 이야기일지라도, 당장 기분 나쁜 이야기일지라도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핑계를 마련하면서 핵심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게으름. 찬찬히 살피고 맥락을 들여다보기보다 쉬이 단정 짓고 생각을 멈춰 버리는. 진짜 살펴야 할 것은 "성령"이라는 단어 뒤 마음가짐일 테니까요.


이 글이 무색하게 저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도 가까운 사람의 어떤 말에 기분 나빠하고, 숨기지 못해 다투고 겨우 다시 평화를 갖는 일이 있었습니다. 들으면 뭐하나, 책 많이 읽으면 뭐하나, 싶은 순간들. 윗분의 다른 말씀을 다시 주억거립니다. 공동체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7, 8년 지내온 분들도 "이쯤 되면 서야 하는데 아직도 바로 서지 못해서 부끄럽다!"는 말을 하신답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답니다. "숨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고개 빳빳이 들고 계속 돌아다녀!"라고.


출처 :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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