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근육
중등에서 말과 글 수업을, 11학년들과 비판적·논리적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등 친구들과는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윤동주 시인을 다룬 안소영 작가의 소설 〈시인/동주〉를 함께 읽고 있고, 11학년 친구들과는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림책(〈블랙독〉, 〈수영장에 간 아빠〉, 〈아기 돼지 세 마리(데이비드 위즈너)〉, 〈검은 새(이수지)〉 등을 읽었습니다.
중등 말과 글 수업에선 매주 윤동주 시인의 시(詩) 한 편을 읽고(한 명이 낭독합니다.) 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지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합니다. 11학년들은 각자 선택한 그림책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찬찬히 살피고 자신을 생각을 글로 써와서 나눕니다. 11학년들은 매주 2명씩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기로 했고, 이번에는 영화 《주토피아》를 함께 보고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서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읽고 11명의 친구들이 모두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데까지 55분이 걸렸습니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100분인데, 반 넘게 걸렸습니다. 11학년 중에는 첫 번째 과제를 받은 후 “도대체 이 그림책을 갖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 열심히 인터넷에서 검색만 했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해석하고 읽어 내는 것보다) “글의 구조” 짜는 법을 배우고 싶단 친구도 있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낯선 텍스트를 앞에 놓고 이 이야기가 왜 세상에 필요한지, 이 이야기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탐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길어 올리는 것은 낯설고 어색합니다. 길어지는 침묵도 모두에게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40분이 지나갈 무렵, 중등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가는 시간에 부담을 느껴 전환해 버리면 말하는 친구들과 말하지 않는 친구들이 점차 고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것이 가장 염려된다고. 함께 버텨보자고.
이것은 근육과 같은 거라고. 규칙적으로 달리면 달리기에 필요한 근육이 발달하고, 도구를 꾸준히 사용하면 다루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몸(의 근육)에 익는 것처럼 내 앞에 놓인 텍스트를 향해 질문하고 나와 연결하고 내 생각과 느낌을 길어 올리는 것 역시 해야 는다고. 글자뿐만 아니라 영화, 뉴스, 성미산학교의 교육과정, 주변의 이야기 들 모두 ‘텍스트’인데, 텍스트와 만났을 때 “아, 그렇구나.”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게 필요하다고.
〈블랙독〉을 탐구한 친구는 글에 “공부를 못한다는 불안”을 언급했습니다. 공부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에 질문하는 태도가 첫 번째 아닐까요? 어떻게 ‘언어(言語)’의 형태로 돌아다니는 많은 정보들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문학이,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철학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루어져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물리학이 나왔을 테니까요.
학교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함께 살면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타자(他者)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입니다. 이는 다시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작동하는가? 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우리가, 내가 배워야 하는 것 들을 탐구하고 발견하고 정리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겠지요.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