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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요선 Jul 08. 2024

자신을 던지는 즐거움

배우가 될 때까지 2: 기쁨과 설렘의 해방

07.06. 토


오늘 워크숍의 주제는 '기쁨과 설렘의 해방'이었다. '해방'에 방점이 찍힌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결국 나는 해방하지 못했다.




1. "하나도 설레어 보이지 않는다"


정해져 있는 대사 중에 하나를 골라 독백을 발표했다. 친구라고 하기에도 연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관계였지만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 상대에게 정말 고마웠고, 찬란했다는 내용의 대사였다. 가장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골랐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어서 골랐다. 어떤 대목에서는 울음이 났지만 그것마저 포함해서 설렘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백 발표가 끝난 뒤 들은 피드백은.

"하나도 설레어 보이지 않는다. 애써 고마워하고 상냥한 척하는 것 같다. 왜 그러지?"였다.


사랑과 기쁨을 이야기하기에는 원망과 상처가 계속 묻어 있으니 차라리 그렇다면 그 원망과 상처를 드러내보자는 피드백을 받았다. 대사는 똑같이 하되, 너 때문에 엄청나게 상처받았고 그래서 너를 증오한다는 마음으로 해보라는 거였다.


"증오하는데 어떻게 고맙다고 이야기해요?"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지만! 일단 했다.


그리고 그것도 잘 안 됐다. 중간중간 계속 멈추고,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마음이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선을 넘지 못하는 이유


사실 이런 연기를 할 때 나는 좀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나에게 없는 감정이나 기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기에서 잘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설레어하는 나'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그런 나를 자주 '연기한다'. 놀기 좋아하는 파티걸이고, 인생을 재미있고 즐겁게 살고, 화끈하고(?) 이런 역할로 종종 인식된다. 나도 그렇게 보이는 거 좋아한다. 그러니까 너무 익숙한 상황인데 왜 안 되는 거지? 무엇이 나를 방해하는 거지?


이런 감정을 일종의 '유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마음으로 설레고 기쁜 게 아니라 일종의 장난이고 유희이고 놀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인식이 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계속 괜찮다, 더 해봐라, 더 해보자 엄청 푸시해야만 마지못해 뭔가를 하는 것도 나의 문제이다. 무언가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감각이 없으면 어떤 선을 넘지 못한다.




3. 우리의 정체성이 곧 한계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건 공부가 많이 된다. 모두에게 각자의 정체성과 그로 인한 한계가 있다. 성실하고당찬 H에게는 은밀한 음지의 느낌이 없다. 그래서 어떨 땐 연기가 무난해진다. 덤덤하게 잘 전달하는 D에게는 왜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절제하나라는 의문이 든다. 배우에게 마음을 주고 싶어도 배우가 능숙하게 절제하니 관객은 마음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오리엔테이션 때 했던, 자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H는 '모든 걸 주고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 모든 걸 주고받아야 돼? 그게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그럼 너는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것만 욕망하는 거야? 거기에서 H의 음지 없는 느낌이 기인하는 셈일 수도 있다. 


D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야기를 했다. D는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괴롭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절제하려는 마음이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도 원망과 의심이 은연중에 묻어난다.', '사랑하니까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멀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든다.'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주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나는 오리엔테이션 때 남해에서 지낸 며칠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글에도 남해가 좋긴 좋은데 '생활물가가 생각보다 비싸네, 왜 음식을 2인분부터 팔지?, 벌레도 많네.' 이런 생각이 계속 교차했다. 그 감정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을 인식하는 게 나의 특징이자 한계일 것이다.




4. 연기는 나와 인물을 분리하는 작업이기도


물론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다. A라서 B라는 결론이 일괄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큰 특징들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이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온 이유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H가 씩씩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된 것, D가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것, 내가 의심하는 사람이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자 동시에 한계일 것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삶은 차치하고, 연기에서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 상황에 대한 믿음. 이 인물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믿음. 나와 인물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간 백요선까지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 인물이 이것을 믿고 있다는 건 믿어야 한다. 내 감정에 편견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 인물은 나와는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상정해야 한다. 


나는 감정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설레어하면 민망하고, 분노하면 자기연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기를 할 때만이라도 그것들을 그 감정과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그건 잘 모르겠다 ㅎㅎ 이제 해봐야 한다. 후훗.




차라리 분노해 보라는 주문에 새롭게 하는 독백




5. 자신을 던지는 즐거움


이건 좀 슬픈 일인데 우리 반은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끼리라서도 있겠지만 자신을 던지는 느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이게 다 재밌고 즐겁자고 하는 일임을 잊지 말고, 무언가를 검사받는 게 아니라 나를 던지는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이게 다 재밌고 즐겁자고 하는 일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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