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
근 두 달간의 나의 생산성, 의욕, 에너지는 말 그대로 미쳤었다.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고' (와 이게 긍정의 힘???) 설령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목표를 유동적으로 조정해서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고' 정말 안 된 것은 아쉬워하면서도 깔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토록 바라던 '30대 여성'으로서 '성장'한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이 선순환의 루프는 가열차게 돌아 회사, 나와의 관계를 비롯한 모든 관계, 내가 하는 작업,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이 건강함은 늦어도 자정에는 잠에 들게 했고, 덕분에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회사는 9시에서 9시 30분에 출근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고, 월 단위로 회사에서 하는 셀프 피드백 점수는 4점을 기록했다. (나는 그전까지는 늘 나에게 3점 이하를 주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하는 회의나 미팅의 생산성이라는 게 올라갔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작업도 비슷했다. 오디션에 떨어져도 하루 이틀 좌절하고 말았고, 내가 할 수 없다고 굳게 믿는 움직임 수업을 위주로 빡세게 몸을 굴렸다. 몸을 계속 쓰니까 몸이 좋아졌고, 연기에도 자신감이라는 게 붙었다. 일단은 누가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골몰하느니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책 출간을 위한 구상도 혼자서는 잘 안될 테니 친구와 주기적으로 비대면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건강 관리를 위하여 제때 병원에 다녔고(도수치료 20번 받아서 실비보험사에서 연락 엄청 옴), 누가 지랄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제일 중요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나를 지켜냈다. 이 모든 것을 나는 플래너와 일기에 차곡차곡 기록했다. 하루하루의 투두리스트를 지키고, 우선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둬 그날의 점수까지 매겼다. 스스로에게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지난주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잠을 설치기 시작해 새벽 3시에 잠이 들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졌다. 일어나도 침대에서 빈둥거리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침 운동은 사라졌다. 두통이 시작됐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머리는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에 집중하기도 어렵거니와 뭐에 집중해야 할지 분간도 들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예민해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경질적인 모습과 폭력성(?) 같은 게 올라왔다.
위고비 때문일까? 의사 선생님의 권유 하에 우울증 관련한 약을 안 먹기 시작한 지가 2달 되었는데 그 영향이 시작된 걸까? 날씨 때문인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정말로 뭔가가 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럴 때면 와 세상 진짜 살 만하다고, 역시 원하는 것을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의미'라는 게 발견된다고 하는 말이 다 개소리임이 분명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ClAtRLABeJw 그,
그 와중에 이런 거를 보면 진짜 열이 받는다. 진짜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쉽게' 얘기하는 거 열받는다. (하긴 유튜버한테 뭘 기대해,라고 일반화하면 저들도 열받지 않을까?) 저 영상의 요지는 미국 10대들을 위주로 자신의 정신과적 병력이 곧 자신의 정체성임을 드러내는 현상이 기괴하고, 병은 치료의 대상이지 어떤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건데...
그냥 다 떠나서 원래 10대들은 '느그들'이랑 본인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 '느그들'이 만들어내는 기존 질서가 다 존나 구리니까 나는 다르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 한다고. 그러니까 저건 특수한 예이지 않나?
그리고 패션 정병과 자기 연민이 극심한 사람에게 뭔가를 당했나 본데 (당하면 좀 안 되냐? 좀 당해도 보고 견뎌도 봐라.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한지 ㅉㅉ) 그럼 안되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다. 물론 나도 당해봤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 선사했겠지. 그런데 원래 그런 게 '사회'라는 거 아님? 저 기저에는 자신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선사할 수 없으리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은데 그거야말로 진짜 '무서운' 사람 아닌지? 게다가 자기 연민 극심한 사람만 문제인가? 자아가 비대한 사람(이야말로)은 문제 아님?
왜 이렇게 사람들이 타인의 나약함을 견딜 수 없어하는지, 왜 이렇게 혐오하는지 묻고 싶다. 건강해야 한다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진취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 모든 압박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우울해지고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마지막으로 저 '패션 정병'으로 조롱받는 행위의 맥락 안에는 그간 개인의 문제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실은 병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알 수 없는 문제를 의학과 과학이라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오는 해방감이 있다. 또 '정신병'이나 '정신병자'라는 말에 함의되어 있는 부정성을 긍정화해 보자는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런 것도 모름?)
물론 나도 회사원이고^^ 능력주의와 성장라이팅에 미쳐버린 근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내 주변의 무수한 (어쩌면 나를 비롯한) '패션 정병을 호소하는' 정신병자들 지겹고 지친다. 그리고 적어도 저 유튜버와 저 유튜브에 댓글 단 사람들보다는 내가 더 많은 정신병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보다 내가 더 '열심히' 산다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아는 '정상인'이라면 타인을 견뎌주길 바란다. 님을 다른 사람들이 견디는 것처럼.
+ 아침부터 갑자기 알 수 없는 분노감이 치밀어서 점심시간에 글을 썼다. (이 글 쓰는 데 10분 걸림) 이렇게 감정적일 시간에 다른 걸 해야 하지 않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오늘 회사에서 할 일 하고, 오늘까지 마감인 글이 있어 퇴근 후에는 그것을 쓸 예정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운동을 갔다가 홈케어하고^^ 밤에는 오디션용 독백을 찍어 보낼 예정이다. 다 그 와중에 틈틈이 분노도 하고 자기 연민도 하는 거다:) '느그들'이 자기연민하는 사람 싫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 사족을 덧붙이자면...나의 이런 태도 역시 무언가를 꼭 성취하고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 하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더불어 가을을 맞아 침구를 바꾸었고, 슬로우 조깅을 시작했다. 다친 다리가 2달이 넘어도 완전히 낫지를 않아 한의원을 다니고 있고, 두통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돈 버는 일은 쉴 수 없으니 돈 버는 일에 집중하고, 돈 쓰는 일 (뭔가를 배우고 작업하는 일)은 빼먹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인드로 임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기로 했는데 빼먹었다고 자책을 엄청나게 했음) 어려운 때를 잘 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