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촬영 뒤풀이는 꼭 소주 마시면서 해야 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개백수 기간 (돈 버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 돈 못 버는 일만 골라할 이 기간은 어쩌면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지 않을까...) 동안의 기록. NO 정제, NO 숙고. 그냥 내가 뭐 하고 살았는지를 남겨놓는 용.
2024.12.12. 금요일: 이번에는 정말 달라져보겠다고 사정하기
요즘 나름 열심히 수강 중인 워크숍의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내가 그다음 수업들을 또 왕창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빠져서 너무 죄송하다고, 저도 내년은 나름 걸었다고 답하며 꼭 열심히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전 어린 나이는 아니자나요...그래서 진짜 연기 잘하고 싶어요. 무대 연기하고 싶어요. 배우의 몸을 만들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2025.12.13. 토요일: 독립영화 촬영 중 우는 감독 조롱하기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인 형인이가 '드디어' 첫 연출작을 만들겠다고 하여서 참여한 <여럿이 집에> 촬영 날. 형인이는 이 작업을 위해 자신의 작고 귀여운 자취방에다가 사람 40명 정도를 불렀다. 자기가 아는 재미있고 독특한 사람들을 한 데 모아 그들이 벌이는 여러 대화와 난동을 그대로 찍겠다는 "예비 예비 영화감독"의 포부였다.
그렇지만 "예비 예비 영화감독"의 꿈은 생각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가지 못했다. 일단 '영화 경험자'들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도대체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집요하게 물었다. 나 역시 어쭙잖게 경험자였기에 형인에게 작업의 의도를 물었다. 나름 좋은 마음이었다. 감독의 의도에 맞게 구현해주고 싶은 배우로서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창작자의 의도에 맞는 연기를 해내고 싶은 욕망이 아주 크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해내고 싶다.)
기술 스텝들은 당연히 마이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느낌을 내고 싶은 것인지 집요하게 물었다. 형인은 우리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며 답했다. 테스트 촬영도 했다. (테스트 촬영 날은 방구석 홈파티를 실제로 벌인 날이기도 했다. 나는 세 명이서 키스할 수 있다는 폴리아모리 친구에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보여달라고 해서 '3인 키스' 장면을 두 번 목도했다. 다음 작업에 큰 영감을 얻었다^^)
광란의 테스트 촬영이 끝난 후 형인은 드디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촬영 이틀 전에, 26페이지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40명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형인의 높은 기준에서의 "재미있고 독특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럴 때마다 나는 나의 '평범성'에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촬영하시는 분만 3명 이상이어서 내가 계속 "이렇게 큰 촬영 현장은 처음이야"라고 말하자, 재영이가 "그만 좀 조롱하라"라고 했다^^ (내가 아는) 갈등만 두세 번 정도 있어 들고 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 친구에게는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도 일어나 구급차가 오기도 했다.
형인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이자 진심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5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는 신을 찍을 때였다. 배우가 오지 않아 3인 장면을 2인 장면으로 바꿔서 찍기로 했는데 형인이 그 장면에 자신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살풀이 느낌이 오기는 했다.)
그리고 형인은 오열했다. 나는 오열하는 형인을 보며 개 쳐 웃었다(...) 그리고 안아도 주었다. 그러다 다시 웃었다. 그러다 현진이 참여했다. 서연도 참여했다. 대본에는 없지만 어쩌면 형인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을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무언가 진짜 이야기가. 형인이는 질질 짜면서도 "이거 이거 꼭 찍으라"라고 말했다.
나는 이럴 때가 재미있다. 무언가 '진짜'가 벌어지면 모두가 집중하고야 만다. 카메라마저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카메라 너머에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서 '진짜 이야기'가 벌어지는 순간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뒤풀이 가는 길에 퍼커션 뮤지션이자 신체개조 작업을 하는 석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나 역시 그의 외형을 보고 어떤 선입견을 가졌다. 그런데 짧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석현은 무척이나 귀엽고 다정한 친구였다. 어느 정도의 피어싱과 타투에는 익숙하지만 '신체 개조'라고 부를 정도의 피어싱과 타투 등은 여전히 생경하다. 석현은 코와 볼과 귀를 뚫었고, 반으로 자른 혀도 낼름 내밀어 보여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신체 개조를 하고자 하는 건 어떤 욕망이야?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합의한 미를 추구하는 성형과는 다르잖아."라고 물었다. 석현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냥 재미있어서"라고도 덧붙였다. 늘 이런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점점 더 "그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늘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그걸 왜 하고 싶냐고. 무슨 욕망이냐고. 맥락은 다르지만 나 역시 왜 연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냥"일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알았다.
마지막으로 뒤풀이는 꼭 소주와 맥주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형인은 칵테일 집을 예약했다.
2025.12.14. 일요일: 30대 중반에 무용수 몸 가지고 싶다고 쥐럴하기
진심 한 10년도 더 전에 찾아갔던 무용센터에 다시 찾아갔다. 시간 참 무상하다. 뒤늦게 무용을 시작하는 이들도 한예종 무용과에 척척 붙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무용수가 될 건 아니지만 왜 이렇게 계속 춤을 추고 싶은지 모르겠다.
면담에 앞서 설문지도 작성해야 했다. 나는 이렇게 적었다.
"귀하가 무용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늘 몸을 자유로우면서도 아름답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무용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역동적인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귀하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입니까?"
"요즘의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제가 기다리는 것, 믿고자 하는 것,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구현해내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경험한 것을 사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증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써의 예술을 상상합니다."
면담에서도 말했다. 신체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래서 이 신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내가 제일 조아하는 연기쌤이 언젠가 나에게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같다고 말해주신 적이 있다. 과거의 경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인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보니 맞고, 그간 들인 시간 덕분에 어느 정도 벗어나기도 했다. 요즘 내가 벗어나고 싶은 것은 나의 몸이다.)
무용 선생님은 물었다.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게 무어냐고. 그러게.. 일단 나는 '무대에서 자유로운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거는 나름의 전략이기도 한데... 내가 보기에 이 바닥 뚫기는 만만치 않지만... 그나마... 무대 연기를 잘하는 30대 중반 여자 배우를 도전해 보는 건 의미가 있어 보인다. 거기가 비어있기도 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몸을 바꿔 볼 참이다. 그래서 핸드투핸드라는 일종의 서커스적인 균형 잡기 워크숍도 어렵게 어렵게 남자 파트너 찾아서 신청해 버렸다.
결국 무당이 되려고 이러나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