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처음이라구요?"
놀라서 반문하는 상담 선생님.
"네. 어쩌다 보니 그렇네요."
괜히 멋쩍어서 흐흐흐 웃으면서 대답하는 나.
"전 요선 씨가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산 줄 알았어요."
선생님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한다.
"엇, 왜요?" 이번엔 내가 반문한다.
상담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잠깐만요. 왜 이제까지 혼자 살아볼 생각을 안 하신 거예요? 엄마랑 그렇게 싸웠으면서?"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찍 혼자 살기 시작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왜 혼자 살아볼 생각을 해보질 못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났을까. 막상 살아보니 별 것 없는데.
아무튼 나는 혼자 산 지 이제 1달이 조금 넘었다. 그간은 엄마집에서 엄마와 징그럽게 싸우면서 살았고, 우연히 만나 엄청나게 친해진 언니집에서 (왔다 갔다를 대여섯 번은 했지만) 2년 정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드. 디. 어 자취를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은 언제 들리냐', '전세 대출받으려면 복잡한데' 하는 귀찮음이 발목을 먼저 붙잡았고, 어느 규모의 집에 들어가야 나의 짐들이 다 들어가는지, 얼마 정도까지를 지불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는 망설임도 발목을 마저 붙잡았다. 또 '혼자 산다'는 말이 주는 외로움과 무서움도 내 앞에 걸림돌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10년 이상을 경기도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쌓인 피로감이 더 이상은 안된다고 말했다. 혼자 지내보고 싶기도 하고 지내야 하겠다는 개인적인 다짐도 있었다. 마침 엄마까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모든 것이 척척 맞아떨어져 나를 혼자 살아보게 만들어주었다.
혼자 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시간도 돈도 많이 필요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짐을 한 데 모으기 위해 이삿짐 아저씨와 일정을 조율하고, 입주 청소를 신청했다. 엄마집에 있는 짐 정리를 하면서 고등학생 때 쓴 플래너와 믹키유천 굿즈를 버렸다. 망할 놈의 책이라고 욕하면서 책을 노끈으로 튼튼하게 묶었고, 설레지도 않는 데다 근 5년간 입지 않았던 옷들까지도 '그래도 혹시 몰라'라면서 이삿짐에 넣어두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행거와 커튼을 설치하기 위해 당근에서 사람을 불렀고, 예쁘게 정리해 보려고 산 200개의 옷걸이가 부족한 지경에 이르자 설레지도 않는데 근 5년간 입지 않았던 옷들 일부를 다시 버렸다. 그럼에도 옷걸이가 부족해 친구에게 받아오기도 했다. 일반 형광등 조명이 거슬려 삼색변환이 가능한 조명을 사서 사람을 불러 교체했다. 책을 색깔별로 정리를 하다 지쳐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래 건조대와 청소기를 샀고, 세제와 습기 제거제를 대량 구입했다. 오가며 헌 옷 수거함은 어디 있는지, 어떤 세탁소와 수선집이 괜찮을지를 눈여겨보았다. 혼자 가기 좋다는 술집도 찾았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헝. 부럽따! 나도 혼자 살고 싶다!"
"그치? 좋지?"
"응. 이렇게 쓰레기처럼 살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하잖아!"
이사 첫날, 놀러 와준 현지가 아직 치우지 못한 (그리고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다 치우지 못한) 짐 무더기들 사이에서 전자 담배를 뻑뻑 피우며 말했다. 우리는 새벽 두 시에 나가 놀자며 집을 나섰다. 이태원까지 택시비가 2만 원이 안 든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나고, 다음날 내내 쓰레기처럼 나란히 누워 있었다.
쓰레기처럼 살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하니 쓰레기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나름의 사투를 벌였다. 배달 어플을 지웠다 깔기를 반복했고, 심심할 때 헛소리하면서 술 마시려고 만나는 남자와의 만남을 정리해 나갔다. 이 말인즉슨 다 먹지도 못할 배달음식을 수없이 많이 시켰고, 별 의미 없는 만남을 여러 번 해보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집 근처 러닝 클럽에 들어갔고, 집 근처 발레 학원과 헬스장에 등록했다.
어떤 날은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고, 어떤 날은 혼자라는 적막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체리와 함께 하이볼을 홀짝거리며 이불속에서 책을 읽었고, 어떤 날은 소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강박적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틀어놓았다. 한 달이 지나자 과일을 깎지 못해 한입 과일만 먹던 내가 그냥 껍질째 과일을 먹게 되었고, 이불의 감촉은 빨래라는 노동을 거쳐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살기 위해 세제와 햇반과 닭가슴살을 대량 주문했던 나는 한 달 사이에 더 잘 살아보기 위해 김치통과 종이호일을 구비하는 나로 바뀌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자책하며 버리던 나는 배달음식을 시키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다독이며 세 개의 통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는 나로 바뀌었다.
"해야 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 돼!"
막 자취를 시작해 택배 상자가 쉴 새 없이 몰아닥쳤던 초반. 세제가 무더기로 들어 있어 굉장히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외쳤다. 앞으로는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해야 된다고. 그게 혼자 사는 법이라고. 진짜 혼자 살아보기 시작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일기에도 적었다.
그런데 후추와 굴소스와 참기름을 부엌 서랍장에 넣어둔 어제가 진짜 나의 자취가 시작된 날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배달음식에 딸려 오는 일회용 소스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때, 그렇다고 엄격한 식단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굴소스를 샀으니 말이다. 내일 회사에서 먹을 닭가슴살 야채 볶음밥에 굴소스를 1.5스푼 넣으며 생각했다. (원래 레시피에서는 한 스푼만 넣으라고 했다) 비로소 혼자라고. 그간 온갖 소동 속에서도 혼자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진짜 혼자라고. 그래서 일단은 좋다. 좋은데 외롭기도 하다기보다는 외로움까지도 좋다. 일단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