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중간 다리가 되어 연결해 준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서류 합격하여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사실 연락을 돌리고, 자료를 취합하고, 이를 전달하고 하는 게 엄청난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기회인데 되도록이면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친구들이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누군가가 기회를 얻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하고 물으면 나에게는 나에게 꼭 맞는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란 확신이 이제는 든다.
연기라는 일을 하면서 괴로운 이유야 수없다. 도대체 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늘 모르겠어서, 기회를 얻지 못해서, 그러다 보니 도저히 능숙해질 수 없어서, 더 예쁘거나 더 마르지 못해서, 이걸로는 도저히 돈을 벌지 못해서.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나의 친구들을 백 퍼센트 응원만 할 수 없을 때 또 다른 괴로움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매력적인 친구들에게 감탄하면서도 내가 저들과 경쟁했을 때 어떤 비교우위가 있을지 계산했다. 비교하고 좌절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의식했다.
왜 그 친구는 부르고 나는 안 불렀을까?
왜 이 친구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을까?
이래서 내가 ‘여배우’로 승인받지 못하는구낳ㅎㅎㅎ”
여전히 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직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언젠가 나에게 꼭 맞는 이야기를, 배역을, 서사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들을 ‘응원만’ 했다. 내가 그들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더 맞는' 기회를 만날 거라고 생각해서이다. 이제는 드디어 그런 믿음이 생겼다. 이 믿음을 얻기까지.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