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유리 Jul 30. 2020

채식하고 좋아진 게 있어?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여섯 번째 질문

"살이 좀 빠진 거 같아, 그치?"  


오랜만에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친구들과 만났다.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데도 3년간 유럽에서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정든 이 땅에 오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친구들 얼굴을 보니 휴가를 쓰고라도 온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직 채식을 드문드문하던 때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고 비건이 된 후 따로 '난 이제 비건이야!'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에 근황을 전하며 이제 비건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채식 식당에 왔을 때부터 알았다며, 언제, 왜, 어떻게 등의 의문사로 시작하는 질문이 쏟아지는 사이 한 친구가 살을 빼기 위해 채식을 하느냐고 물었다.  


채식을 하고 난 뒤 내 몸과 마음에 여러 변화가 온 것은 사실이다. 왜 채식을 하느냐는 질문 뒤에 자주 따라오는 질문이 채식을 하면 어떤 점이 좋아지냐는 것이다. 그건 아마 채식을 시작해 보고 싶거나 완전 채식이 아니더라도 한 주에 한 두 끼쯤은 고기 없이 식단을 꾸리고픈 생각은 있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해서 좋은 점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도 시작하기 전에 괜히 걱정이 많았기에,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그렇지만 나는 체중감량을 바라고 채식을 시작한 게 아니다. 그리고 살이 빠지는 건 채식을 했을 때 오는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해야 할 점으로 생각한다. 고지방 고단백의 고기를 제외하면 하루 섭취하는 열량이 낮아지기 쉽고 그래서 오히려 더 영양소를 고려해야 하고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채식은 다이어트의 한 방법이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서 '채식 = 체중감량'으로 정의하고 채식을 시작한다면 오래 이어나가기 힘들다.  


내가 채식을 하며 겪고 느낀 정말 좋은 점들은 따로 있다.




몸이 가볍다.

무게가 덜해서 오는 가벼움이 아닌 내 몸의 행동과 움직임이 채식을 한 후로 가벼워졌다. 어려서부터 다리에 부종이 심해서 몇 시간만 걸어도 금방 지치기 일쑤였고, 운동을 하려고 해도 움직이고 싶은 기력도 의지력도 없었다. 고기를 먹으면 기력이 올라간다고 해서 곰탕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백숙 열심히 맛있게 챙겨 먹어도 영 내 몸은 더 무거워질 뿐 움직일 힘은 나지 않았다.   


처음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기 시작한 건 자연스럽게 천천히 일어난 일이라 ‘어느 날 채식을 하고 난 뒤 모든 게 기적처럼 좋아졌다’ 같은, 들으면 혹할 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채식을 하고 2년이 넘은 나의 모습과 5년 전 나의 몸은 전혀 다르다. 체력도 기력도 고기와 유제품을 모두 끊고 훨씬 좋아졌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많은 내가 더 많은 것을 실천하게 된 것도 채식을 하기 전과 전혀 다르다.  


하루를 계획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편이 아닌데도 채식을 한 뒤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일주일에 최소 두 아침은 달리기로 한 스스로의 약속도 지키고 있고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회사 일로 하루 반 절을 보내고 나서도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다른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 잘 먹고 잘 자기 위해 들이는 공과 노력이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더 좋은 채식을 이어나가기 위해 하는 투자가 내게 끝없이 이윤을 가져다주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과 더 가까워진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살면 나만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나 좋자고 시작한 채식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환경과 생태계에 더 선한 영향력을 주고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전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것들이 채식을 하고 눈에 들어왔다. 계절의 바뀜과 식물의 성장, 변화 하나하나가 작지만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줄기에서 처음 뻗어 나오는 새 잎사귀를 보듬을 줄 몰랐었다. 너무 감성적이고 어떻게 보면 조금은 진부한,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엔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여린 잎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눈치채는 나를 발견한다. 채소를 사도 고기를 사도 그 전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엔 과일 각각의 모양들, 작지만 하나하나 다 다르게 큰 재료들을 보며 냉장고에 들어있는 그 많은 것들이 그만큼 자라나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써야 했을까 마음속 아주 작게 벅찬 기분도 든다.  


닭, 소, 돼지 등 사회가 식용으로 생각하는 동물들을 직접 마주칠 일이 생활 속에 자주 없기에 달라진 점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길에서 자주 보는 개와 고양이들을 보며 느끼는 건 동물들이 가장 근본적으로 당신이 누구인가를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점을 느끼는 게 전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느낌이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할 수 없지만 동물들이 나를 대하는 눈빛과 태도가 분명 달라졌다고 느낀다.   


시중에 고기가 되어 나오는 동물뿐만 아니라 실험을 위해 쓰이는 동물들 역시 그렇다. 워낙 내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채식을 하기 전엔 몸에 좋다는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는 관심이 없는데, 완벽할 순 없어도 천천히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은 비건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나만 생각했다면 불필요할 삶의 변화를 자꾸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찾는 건 채식을 한 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달라진 일이다.  



아픈 날이 거의 없다.


아토피를 달고 살았고 장염으로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병원 약을 먹어야 했던 내가 근 5년간 어떤 약도 먹지 않고 너무나 잘 살고 있다. 병원을 잘 찾지 않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분위기에 맞춰 사는 이유도 있겠지만 채식을 하기 전과 비교해서 약 하나 없이도 잘 사는 내가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주에 2-3회는 꼭 파스타 빵 등 밀가루를 먹고 사는데도 소화가 잘 되고 배변활동도 원활해서 정말 ‘잘 먹고 잘 산다’라는 게 어떤 건지 매일 느끼고 있다.  


특히 아파서 쉬어야만 하는 날이 없어졌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정말 아파서 일할 수 없기만을 바랄 때가 있는데, 채식하고 병가를 낸 일이 한 번도 없다. 일어나서 힘이 너무 넘쳐나기 때문에 아프다고 거짓말도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이젠 너무 좋아진 내 건강을 탓하며 열심히 일을 시작한다. 회사 여자 동료들끼리 간 여행 숙소에서 소파를 옮겨야 할 일이 있었는데 소파를 번쩍 들어 올리는 나를 보며 “유리는 역시 비건이라 힘도 세”라고 얘기한 동료가 있었다. 그때는 그저 수줍게 웃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아프지 않은 이유는 몸 안에 염증이 줄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뭐가 나면 3-4일은 넘게 가고 운동 후에도 회복이 더딘 편이었다. 등산을 하거나 근육을 많이 써야 하는 격한 운동을 하면 통증 때문에 많이 움직이지 못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근육이 늘어난 흔적은 없었다. 채식을 한 후 근육 통증도 하루면 빠르게 회복하고 눈에 보이는 잔근육들이 많이 늘었다. 그렇게 늘어난 근육들이 다시 나를 더 건강하게 하고 채식을 하며 끝없는 선순환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음이 (더) 건강해진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하게 긍정적으로 달라진 점들은 그 외에도 너무나 많다. 마음에 치던 요동이 줄었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내 주변 환경을 돌아보며 그 감정을 빠르게  털어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작은 일에 집중하고 내가 한 일로 혼자 번뇌하는 날들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채식을 한 후 그런 끙끙거리던 마음을 묵히는 일이 없어졌다. 


마음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 까닭은 단순히 채식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직접 만지고, 씻고, 다듬어 요리하고 그렇게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음식은 돈을 위해 파는 요리와 성질이 전혀 다르다. 그렇게 집밥을 만들고 나누면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더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좋은 음식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내 마음이 더 건강해졌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 불만 등 감정 소모가 클 수 있는데, 채식을 하면서 회사 내에 다른 채식인들과 남다른 연대감을 쌓기도 하고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시도하며 그 나라의 사람들과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모든 게 다 채식 덕이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의 요동을 줄여주는 채식이 힘든 회사생활을 건강히 보낼 수 있게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발걸음을 땐 채식 여정이지만 앞으로 걸을 채식인으로서의 길이 나는 더 기대된다. 그 길 위에서 이 보다 더 많은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인하기 때문에, 더욱.

매거진의 이전글 비건이 되기 전에 뭘 유의해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