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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Jan 11. 2019

우리 또 먹는 얘기 하니?
- 집밥 먹는 즐거움

나의 새로 만난 엄마와 나누는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집밥 먹는 기쁨


바르셀로나 뒤편 산에 위치한 발비드레라 (Vallvidrera)에 토마스의 부모님이 산다. 일 년 중 가장 기대되고 신나는 시간이 나의 시부모님인 세실리아와 세르지를 보러 스페인으로 오는 이 연말이다. 토마스와 연애하고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운명처럼 나는 토마스의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 세실리아는 따뜻하고, 넓고, 천방지축 소녀 같은 내가 너무나도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끊임없이 먹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의 좋은 친구이다. 그 첫 만남 후로 나는 토마스와 내가 오래 함께 있을 사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발비드레라 산 길을 산책할 때, 함께 앉아 책을 읽을 때, 혹은 그녀가 스도쿠를 풀고 내가 블로그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먹는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우리 대화의 팔 할은 음식 이야기이다. 내가 만든 비트 수프 요리법부터 그녀가 만드는 모과 디저트까지 우리는 새로운 집밥 이야기를 한다. 저녁밥을 먹으며 내가 이건 어떻게 만들어요? 여긴 뭐가 들어간 거예요? 물어보는 게 다반사다. 그렇게 우리가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하면 토마스가 묻는다. "Are we talking about food?" (우리 먹는 얘기 해?) 그럼 식탁 위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가 또 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니? 하며.


구운 가지와 피망, 고수를 섞어 만든 파스타 소스와 갓 만든 참깨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그녀가 만드는 모든 요리는 맛있다. 재료 하나하나 다 맛이 살아있고 사려 깊은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진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세실리아의 흥얼거림이 거실까지 들리면 나는 책을 읽다가도 부리나케 달려가 도움이 되고자 청한다. 우리는 함께 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저으며 또다시 먹는 이야기로 밥을 한다. 양파 졸이는 향과 갓 볶은 참깨 냄새가 어우러지는 주방 안이 나는 어느 다른 곳보다 편안하다. 다양한 향신료와 고운 접시들이 주방 이곳저곳을 채우고 나면 금세 식사 시간이 된다. 내가 가장, 그리고 세실리아가 가장 행복한 먹는 시간이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한다는 것, 가장 흔하고 간단한 일이라지만 매일 다른 방법으로 요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세실리아는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생소한 재료로 요리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재료의 어우러짐을 고민할 때나 새로운 요리법에 갸우뚱할 때 그녀는 내게 말한다. "There should always be the first. Then it's not difficult.' (언제나 처음은 있어야 해. 그래야 어렵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함께 시도하고 그 안에서 배운다. 토마스와 나만을 위해 밥을 하면서도 버거워할 때가 있는 나로서는 세실리아의 부엌에서 보내는 날들이 재충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다시 집밥의 즐거움을 찾는다.


해바라기 씨를 뿌린 당근 꽃이 가득한 샐러드


고수와 염소치즈를 뿌린 병아리콩과 가지를 넣어 만든 카레



시엄마가 만든 소박하고 정갈한 마음까지 차오르는 따뜻한 집밥


이번 연도 방문은 조금 색다르다. 물론 8월에 우리가 혼인 서약을 한 뒤로 내가 완전한 이 가족의 일부분이 되었구나 하는 기쁨도 있지만 다른 큰 이유는 내가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갈팡질팡이고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나는 사실 고민이 많다. 며칠 전 올렸던 라면에 대한 글도 그랬다. 라면에 대해 정말 쓰고 싶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라면에 대해 많이 알기 원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속으로 너무 비판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랬더니 세실리아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누구든 알고 싶어 하고 관심 있어한다면 읽을 것이고 고마워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항상 하는 "sin miedo!" (두려워하지 말고!)를 외쳤다. 내가 블로그던 영상을 만들던 겁먹지 말고 재밌게 하라고.


아직 아기 걸음마하듯 요리하는 내게 힘이 되어주는 세실리아가 항상 고맙다. 연신 그녀의 친구들에게 그리고 언니들에게 내 동영상을 보내며 자랑하는 그녀에게 쑥스럽다고 이야기하는 나를 다음 영상은 어떤 요리법인지 궁금하다고 격려해주는 그녀가 나에겐 천군만마이다. 그리고 그녀는 요리법을 하나하나 꼼꼼히 알려주며 집에서 내 식대로 요리해 보라고 얘기해준다. 내가 어떤 음식을 가리는지, 요즘 무엇을 아침으로 잘 먹는지도 챙기며 토마스에게 물어봐주는 그녀가 내겐 새로 만난 엄마이다.


참깨와 발효마늘 페이스트로 무친 찐 줄기콩



셀러리 뿌리와 사과로 만든 수프



그리고 나를 위해 만들어준 치즈 없는 치즈 케이크


그녀의 즐거운 집밥을 먹으며 나는 살금살금 솟아오르는 나에 대한 의심과 자책감을 눌러 담는다. 그리고 먹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다시 한번 왜 요리하는지를 깨닫는다. 우리 아직도 먹는 이야기 하니? 하고 깔깔 웃는 그 기쁨으로 요리하는유리도 더 잘 해보자 다짐했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리고 먼저 맛있게 먹기 위해 요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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