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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Jan 11. 2019

라면 안 먹는 한국인의 고백

라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방문을 열었을 때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공동 부엌으로 향했다. 같은 집을 함께 사용하던 한국인 룸메가 이제 막 끓인 라면과 김치 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나는 간단히 목례를 했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방으로 향했다. 부엌 싱크대에 남은 건 라면 봉지뿐이었다. 나는 그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 전엔 단 한 번도 라면봉지 뒷면에 적힌 영양성분이나 첨가물 목록을 읽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이 지독한 냄새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바스락 거리는 은박지를 뒤집어 원재료 및 원산지 목록을 읽기 시작했다. 폐를 찌르는 듯한 그 냄새를 맡으며 구겨진 내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런 걸 내가 그렇게나 맛있게 먹었었다고?

처음 놀란 것은 '재료'의 가짓수였다. 50가지가 넘는 재료가 라면 한 봉지에 들어있다. 고작 면과 수프만 들은 이 봉지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지 한 숨에 다 읽을 수도 없었다. 면을 만드는데만 열 가지가 넘는 성분이 필요하다니 겨우 두 줄을 읽고 수프 재료를 읽기 시작했다.


그다음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수많은 '맛', '향', 혹은 '풍미' 분말이었다. 녹차면 녹차이지 녹차'풍미'유는 무엇인가. 햄이면 햄이지 (그렇다고 햄이 가공식품이 아닌 것도 아닌데) 햄'맛'진액과 햄'맛'분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게다가 돈육'풍미'분말, 베이컨'향'분말, 김치찌개'풍미'분말, 마늘'맛'오일 등이 과연 이제 음식에서 나온 것일까 의문이 들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맛 베이스, 향미 증진제, 혼합양념 분말 등 끝이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첨가물의 이름들이었다. 첫 줄의 미감 에스유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왼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고 검색했다. 이 성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영어로 검색도 할 수 없어 이 재료의 정체는 밝힐 수도 없었다. 경남의 한 신문사에서 발행한 기사도 이 미감 에스유에 대한 궁금증만 제기할 뿐 답은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넘어간다고 해도 지미 맛 분말, 디엘-사과산, 호박산이 나트륨, 홍국색소까지 알 수 없는 재료 투성이었다. 몸에 좋지 않다, 자주 먹지 말아라 소리만 종종 들었지 라면에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라면을 먹어오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이 사랑받는 국민 음식이 안타깝고 슬펐다. 라면의 성분을 처음 읽었던 그 날부터 벌써 3년이 지났고 나는 그동안 라면을 먹은 적 없다. 나는 라면을 안 먹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라면을 먹지 않은지는 6년 정도가 되어간다.


정확히 그 날짜를 모르고 대강 예측만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느 날 날을 잡고 굳은 결심으로 라면을 끊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아토피와 비염, 알레르기로 고생했고 건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라면을 끊은 것은 그런 노력의 과정 중 하나였다. 때문에 자주 먹던 것을 가끔, 가끔 먹던 것을 드물게 천천히 줄였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라면을 완전히 먹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은 라면을 먹지 않고 살아온 나의 고백서이다.


라면을 완전히 먹지 않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눈으로 나를 보며 '아예 안 먹는 다고? 어쩜 한국인이 돼서 라면을 안 먹고살 수 있어?'라고 하거나 '참 대단하다, 그 맛있는걸 어떻게 안 먹니'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선 내 첫 고백을 해야 한다. 나는 라면이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면은 입에 넣을 수 있는 화학제품일 뿐이지 내게 음식이 아니다. 라면 없이 못 살았던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도 식단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라면을 사랑하고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나는 정말 간절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건강에 좋을 수 없는 것이 이 인스턴트 라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애정품 라면은 사실 유럽에서 여러 차례 의문 제기로 판매를 중지당했거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농심은 2003년 방사선을 쬔 재료 표기를 하지 않은 이유로 스위스에서 판매 중지를 당했었다. 2005년엔 영국에서도 방사선 미표기로 식품 경보를 받아 논란에 휩싸였었다.1 방사선 문제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라면이나 다양한 가공식품에 뿌려지는 Tertiary-butyl hydroquinone (TBHQ) 역시도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로 외국에선 논의되어 왔다. 이 TBHQ는 석유 가공의 부산물로 가공식품의 색이나 향, 맛을 보존하기 위해 뿌려진다. 특히나 이 화학물질은 발암물질 중에서도 위암을 잘 일으키고 우리의 DNA도 손상시킨다.2 더욱이 라면에 들은 각종 화학 보존제와 첨가제는 운동의 여부나 나이에 상관없이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며 이것은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 3 이런 제품에 대한 연구나 조사가 세계 1인당 라면 섭취 1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부족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4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지 않은 채로 라면을 즐기고 싶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몇 사람들은 라면을 즐기는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며 가끔 먹어주는 것은 나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라면이 그립지 않다. 그 맛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화학조미료 (MSG)로 무장한 이 화학 물질의 냄새를 오랜만에 맡았던 나는 무서웠다. 그 끔찍한 냄새를 맛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MSG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된장과 간장 같은 자연 재료에도 MSG가 들어 있으므로 괜찮다고 하지만 그것이 화학적으로 발생되고 첨가되었을 때 좋은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중독적인 맛이 나는 두렵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냄새만 맡아도 미칠 것처럼 먹고 싶었던 라면과 짜장라면의 어떤 화학제품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라면 맛 뒤에 숨겨진 이런 사실을 모른다. 혹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사랑 라면이 국민의 건강에 어떤 위협을 끼치는지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라면 제조 회사에서도 제품의 재료와 성분을 알기 쉽도록 모든 정보를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앞으로도 라면을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더 읽고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의 일이므로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조금 더 궁금해하고 조심하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2019년엔 조금씩 라면을 줄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1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02377


2 http://preventdisease.com/news/14/011914_This-Is-What-Happens-In-Your-Stomach-When-You-Consume-Packaged-Ramen-Noodles.shtml


3 https://realfarmacy.com/scientists-reveal-ramen-noodles-cause-heart-disease-stroke-metabolic-syndrome/


4 https://foodrevolution.org/blog/ramen-noodles/



*추가

먼저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지적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과학자도 의사도 아닌 일반인이기에 지식이 부족한것을 많이 깨닫고 Monosodium glutamate (MSG)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자료를 좀 더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미국식품의약국과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정청 등 식품 모두 인체에 무해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L-글루탄산나트륨이라고 불리는 이 식품첨가제는 작년 2018년도 부터 화학조미료가 아닌 '향미증진제'로 이름이 바뀌어서 표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라면에 MSG, 즉 화학조미료가 들은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사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진술로 이 '향미증진제'를 섭취한 후 두통을 호소하거나 호흡이 가빠지고 흉통 및 메스꺼움을 느낀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논란이 많은 John Onley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L-글루탄산나트륨을 주입한 어린 쥐의 뇌 세포가 손상되고 성장했을때 비만이나 불임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후 시행된 연구들에서 이런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쥐가 아닌 사람에게 조사한 연구결과에서는 일반인에게 3g의 MSG를 주었을때 건강한 성인이 위와 같은 증상들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식약청은 MSG가 과다한 용량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이 식품첨가제가 우리 몸에 완전히 유해하다는 확실한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사람에 따라 특정 식품첨가제에 대한 반응이 다르고 개개인의 건강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MSG가 완전 무해하다 혹은 완전 해하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식품첨가물에 예민한 편이니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추가로 더 적었습니다.



https://www.mayoclinic.org/healthy-lifestyle/nutrition-and-healthy-eating/expert-answers/monosodium-glutamate/faq-20058196

http://www.bbc.com/future/story/20151106-is-msg-as-bad-as-its-made-out-to-be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802046/

http://nrs.harvard.edu/urn-3:HUL.InstRepos:8846733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553331&memberNo=36237592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164/38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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