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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Jan 11. 2019

비거니즘과 유기농 계란 그 사이 어딘가

비거니즘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비건이 되기로 결심할까?


얼마 전까지 다녔던 회사엔 내 또래 동료들이 많았다. 점심은 항상 회사 라운지에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게 우리의 관례였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우리들이었기에 점심시간에 여러 나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동유럽에서 온 아이들 같은 경우는 얼마나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많이 먹는지, 아시아 아이들은 얼마나 매운 음식을 사랑하는지, 남유럽 아이들은 얼마나 북유럽 음식이 자기들 나라 음식에 비하면 밋밋한지 등 선호하는 음식 스타일이나 재료 등을 공유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의 동료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 사실은 서로의 도시락을 비교하며 서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날 비거니즘 (veganism)에 대한 열띤 토론을 열었다. 나는 이미 비거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실천해 왔기에 왜 그가 그동안 자신이 비건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채식문화가 그나마 앞서있다는 유럽에서도 사실 모두에게 자신이 비건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번 연도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비건 페스티벌에서 생고기를 물어뜯으며 비거니즘에 반대하는 이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혹은 비거니즘을 흔히 말하는 힙스터 문화처럼 일종의 유행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되려 건강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단백질 섭취는 어떻게 해?" 혹은 "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아? 얼마나 맛있는데!"를 던지는 동료들에게 대답하던 그가 말한 비건이 된 이유를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고기를 먹지 않고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굳이 그 많은 동물을 죽여가며 살고 싶지 않아서 비건이 되었어.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그의 용기를 동경하지만 나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나의 최근 식단은 채식주의와 유기농 계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비거니즘 전파가 아니다. 무엇을 먹건 어떻게 먹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역량에 있다. 내가 왈가왈부할 바가 아니다. 이 글은 그저 비거니즘에 대한 요즘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는가?


비거니즘과 채식주의(vegetarianism)는 엄연히 다르다. 비거니즘은 동물과 관련한 어떤 것도 먹고 소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채식주의가 그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그칠 수 있다면 비거니즘은 모든 유제품과 계란은 물론 심지어 꿀도 먹지 않는 것이다.(사실 꿀을 소비하는 것은 아직도 비건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런 점이 대중들에게는 조금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삼겹살과 치킨이 국민 음식인 나라에서 비건을 선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요즘 꽤 많은 사람들이 비거니즘을 외치고 있다. 비건 식당들도 곳곳에 생기고 있고 비건 요거트 브랜드도 생겼다. 왜 사람들은 비건이 되기로 결정할까?


비거니즘을 선택하는 이유들 중 가장 큰 세 가지 이유는 동물보호환경보호, 그리고 개인 건강의 이유가 있다. 내 비건 동료의 경우엔 동물을 보호하고자 식단을 완전 채식으로 바꾼 경우이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서서히 나오는 것도 요즘  애완동물 문화가 발전하고 미국 유럽 등에서 많은 논의가 한국까지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도 내가 읽었던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책 'Eating Animals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닭과 소, 돼지가 길러지는 끔찍한 가축 현장과 그 보다 더 형용할 수 없이 잔인한 도축환경과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쉽게 넘길 수 있겠지만 미국산 소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아예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는 없다.


내가 요즘 고기를 멀리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다. 책을 읽은 후에도 나는 종종 유기농 닭고기를 사서 요리해 먹었다. 최근 결정적으로 고기를 멀리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우연히 뉴스에서 보여준 소의 도축 현장을 본 후이다. 독일의 방송법 자체가 원래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장면은 모자이크도 없는 생생한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극심하게 몸부림치던 소와 갈라진 목에서 쏟아져 나오던 피, 의식을 잃어가던 눈동자가 내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혔다. 내 입에 고기를 넣으려면 어떤 생명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 나서 나는 앞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동물의 권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빠르게 악화되어가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도 비거니즘이 해결책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지구 전체 농지의 80%는 동물 가축을 위해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열량은 전 세계 인구 기준 18%에 그친다. 또 1kg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는 10kg, 돼지는 6kg, 그리고 닭은 3-4kg의 곡물 식량이 필요하다. (자료: The Economist - How could veganism change the world?) 가축의 수를 줄이면 아프리카 대륙만 한 크기의 땅을 아껴 인간을 위해 다른 채소 및 과일 재배에 쓸 수 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경작지가 동물을 키우는 데에만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소는 메탄과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이미 악명이 높다. 전 세계 소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을 국가에 비교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양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염려의 마음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건강을 염려해서 비거니즘을 결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채식이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 당뇨, 암 등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 역시도 유제품 - 특히 우유와 요거트 - 를 끊은 지 꽤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 건강을 염려해서이다. 체질상 알레르기 질환과 비염, 아토피 등 자가면역질환이 많은 나는 유제품이 염증 유발과 악화에 백해무익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로 먹고 있지 않다. 내 경험상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십 대 때 나를 괴롭혔던 비염이 싹 다 나았다는 것이다. 또 수많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맞은 동물과 그 부산물을 먹지 않는 게 건강상 더 좋을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와 육류, 계란을 먹지 않는 비건이 되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나는 왜 비거니즘을 '주로' 실천하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위 세 가지 이유에 모두 동의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도 학대받거나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환경오염이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 건강도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 중 최소 다섯 날은 채식을 한다. 비건식을 하면 단백질이 부족하거나 단조로운 식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고기를 먹는 식단과 다르지 않게 양질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비건은 비타민 B12를 자연적으로 섭취할 수 없다. 비타민 B12는 적혈구를 생산하고 DNA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이 B12는 동물성 재료인 고기나 계란에 많이 포함되어있고 채소나 과일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비건이라면 따로 비타민제를 섭취해야 한다.(영양 효모라고 불리는 Nutritional Yeast로 섭취도 가능하다.)


이렇게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하는 비건식을 자연스럽지 않고 정상적인 식단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그래도 고기는 가끔 먹어줘야지" 하시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 추측에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육류 섭취를 많이 한 사람이 심혈관계 질환에 걸려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을 두고 "그래서 비건은 자연스러운 식단이 아니라니까?"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따로 비타민제를 챙겨 먹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완전 비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완전' 비건이 아닌가


사실 나는 이 제목을 "나는 왜 (아직) 완전한 비건이 아닌가"라고 짓고 싶다. 내가 여태껏 바꿔온 식단이 차츰차츰 비건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현재 나는 비건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가끔 유기농 계란을 먹거나 아주 드물게 - 유기농일뿐더러 동물 권리도 지켜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 닭고기를 사서 요리해 먹는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떤 극단적인 한 신념이나 믿음을 가져본 적도 없을뿐더러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종교도 없으며 삶의 신조가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이 되어보자"이기 때문에 절대 000은 하지 않겠다, 먹지 않겠다 등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이런 경향을 꺼려하는 나 스스로의 특성 때문에 나는 비건이 되어야겠다고 결정하지 못한 것 같다. 또 동물의 권리에 대해 완전히 알고 이해하지 못해서 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소와 돼지는 안타깝지만 왠지 닭의 죽음은 곧바로 슬픔과 직결되지 않는 것이 그 예이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내가 비건이 아닌 이유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였다. 요즘 줄곧 왜 인지 모를 압박감을 느껴왔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부족한 것 같고, 변명 같았으며 나 스스로 유약하다고 느껴졌다. 확실한 것은 물 흐르듯 유유히 살고 싶은 내게 완전 비건을 외치는 것은 (아직) 너무나 큰 결정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더 단단히 내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나와 비슷한 곳에 서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강압 감이나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에 따르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당신의 식단마저 압박받지 않기를 바란다. 주말에 친구와 함께 점심으로 비건 음식점을 시도해 보는 것도 작지만 의미 있는 기여이고 시도라고 생각한다. 혹은 일주일에 하루 비거니즘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건이기를 선택했다고 해서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거나 그와의 대화를 차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 생각에 결국 비거니즘은 서로 모든 동물 간 평화롭게이해하며 살자는 운동이기 때문에 인간인 우리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우리나라에도 좋은 비건 문화가 자리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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