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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Jan 11. 2019

내가 더 이상 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

환경호르몬 비스페놀-에이(BPA)에 대하여

고등학교 때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 중 하나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팔던 참치 비빔밥이었다. 고소한 참치살에 상추와 갖은 채소를 넣고 따끈한 밥에 비벼 나오던 그 참치 비빔밥을 자주 먹었었다. 대학교 때 술집 가면 자주 시키던 황도도 참 좋아했다. 달콤했던 그 황도와 함께 나오던 물도 참 맛있었다. 하지만 이젠 모두 과거형이다. 나는 더 이상 캔 음식을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는 캔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다. 기껏해야 참치나 과일류, 옥수수, 혹은 골뱅이류가 캔에 담아져 팔린다. 사실 자주 먹지 않는 이상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 게 캔 음식이다. 먹기도 간편하고 이미 조리된 형태로 팔기 때문에 요리 시간도 덜어준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음식을 살 때 이런 장점을 가진 종류는 경계하는 편이다. 그 간편성 뒤에는 항상 어떤 단점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으로 가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을 때 집에서 줄곧 밥을 해 먹었어야 했다. 물론 한국에서 지냈을 때도 밥은 자주 했었지만 미국에서의 집밥은 다른 목적의 요리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것도 정해진 예산과 적은 시간만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밥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주로 캔에 담긴 음식이나 미리 조리되어 파는 음식을 자주 사 먹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통에 담아 그다음 날 점심까지 미리 준비했다. 나는 나 스스로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공부도 하며 도시락도 싸는 내가 기특하고 잘 생활하고 있다고 믿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건강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에 자꾸 뭐가 나는게 그 이상 징조 중 하나였다. 여드름도 아닌 것이 크게 그것도 빨갛고 누르면 아픈 뾰루지가 얼굴 여기저기에 자주 났고 생리 주기가 이상하게 바뀌기도 했다. 나는 집을 떠나와 한식을 못 먹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먹던 음식이 아닌 미국 음식을 먹으니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또 밤낮이 바뀌게 마음대로 생활하는 불규칙한 수면 습관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이고 한창 놀 나이였으니 그건 바꾸고 싶지 않았다.


캔 음식과 플라스틱이 내 건강을 해치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나는 열심히 싸 둔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뜨뜻하게 돌려 점심을 먹었고 저녁엔 캔 음식을 따서 조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몰랐을까 부끄럽고 나 스스로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그때는 우리 생활에 '환경호르몬'이라는 게 그렇게나 많은 곳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나는 무지했었고 또 안다고 해도 이런 사실을 무시하려 했을 것이다. 학생으로 외국에서 생활하는게 벌써 어려운 때였으니 말이다.


어렴풋이 BPA (비스페놀-에이)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미국에서 돌아온 후였다. 환경호르몬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환경호르몬은 말 그대로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호르몬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서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BPA는 특히나 우리 몸에서 여성 호르몬처럼 행동하며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연적 호르몬 주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주로 성조숙증을 일으키는 것도 이 비스페놀 에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1 캔 음식을 하루에 하나 이상 먹는 사람의 소변에서 24%나 많은 BPA가 검출되었다고 하는 기사도 있다.2 환경호르몬과 캔 음식의 확실한 연관관계를 증명하는 셈이다.


캔 음식이나 컵라면에서 환경호르몬이 많이 검출되는 것은 BPA의 특성 때문이다. BPA는 주로 기름이나 산성에 잘 녹아져 나오고 높은 온도에서 더 잘 녹아 섞인다. 따라서 기름이 들어있는 참치캔이나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에서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내가 자주 먹었던 토마토 캔도 토마토의 그 산성 때문에 BPA를 많이 함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엔 캔의 색을 보고 고르면 BPA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사도 읽었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신선한 채소를 사서 집에서 요리해 먹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식품안전청은 이런 BPA가 소변으로 배출되며 건강에 문제가 될 정도의 양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2년 전 프랑스 친구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었다. 그 친구네 가족은 전부 채식주의자로 건강하게 식단을 짜는 집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렌틸콩과 밥을 함께 먹었었는데 그만 다음날 내 얼굴에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캔 음식과 플라스틱을 멀리하고 조심하던 중이었는데 전날 저녁의 렌틸콩이 캔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모르고 먹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화학물질이나 농약 등에 더 크게 반응하는 나는 걱정해주는 친구 가족에게 뻘쭘하고 속상했다. 건강에 문제가 될 양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었다. 건강에 문제가 곧바로 느껴졌고 다른 사람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캔 음식을 우리는 믿고 먹어도 되는 것일까?


그 날 나는 확실하게 캔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후 건강한 집밥 위주로 생활하고 있는 나는 현재 생리주기도 정확하고 생리통도 없다. 피부에 그런 이상한 뾰루지도 나지 않는다. 물론 참치캔을 못 먹게 된 것은 아주 분하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자로서 각성하고 수요에 변화를 주면 식품회사들의 공급도 바뀌지 않을까? 언젠가는 유리병에 든 참치나 골뱅이를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본다.



1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76567420

2 https://edition.cnn.com/2016/06/29/health/canned-foods-bpa-risk/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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