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기자 분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이란시리즈를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거절당하기 연습'이기억에 남는데요,내용은 대충 이런 겁니다. "햄버거 리필 되나요?", "연봉 1억 올려주실 수 있나요?"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하고 거절도 당해보는 겁니다.
그때는그저'와~대단하시다' 하고넘어갔는데…
예? 설문조사요?
한창 교환학생의 꿈이 좌절되어 낙심하던 차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르바이트를 하나 찾아오셨습니다(신기하게도 제가 찾으면 안 보이는데 잘 찾으십니다). 시청에서 올라온 공고였습니다. 저는 그게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일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지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뜻밖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첫몇 주 간은소상공인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려야 한단 것이었습니다.각자 배정된 업체의 수를 보니 백 단위가 기본이었습니다. 물론 그걸 다 돌아야 했던 건아니고,거절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전체 리스트를 뽑아 주신 것이었죠.
…하지만저는 동네 지리를 샅샅이 알게 됩니다.(두둥)
겨울처럼 얼어붙은 마음
때는 2020년겨울이었습니다. 한창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신 시기였지요.상권침체는 당연한 얘기였습니다. 게다가추웠고요. 음, 좋지 않았습니다. 딱 봐도 좋지 않았습니다. 설문문항을 들여다 보니 더 아찔해졌습니다. 월 매출 금액, 향후 사업 여부,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걸 상인분들께 드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죄짓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나쁜 놈이 된것 같았거든요.하지만상권 실정을 알아야 하는 입장에서도어쩔 수 없는 노릇이란 건이해하였습니다.
그래도 일전에 밴드부한번 성공해 본 경험이 있다고 용기 내어 첫 가게를 방문하게 됩니다!'어서 오세요!'하시는 목소리에 저 또한'안녕하세요!'하고 밝게 인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시청에서 설문조사를 하러 나왔다 말씀드린순간,바로축객령을 받았습니다.당황하여"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가이내 사태를 파악하곤조용히문을 닫고나왔습니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습니다.(심각)다들 힘든 시기일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대뜸 날 선 감정을 마주하게 되니 버벅거리기도 했습니다. 한순간귀한 손님에서 불청객으로전락한느낌,한겨울에물벼락을 끼얹은느낌,그 앞에서 위축되는 건 당연했습니다.그래서 속으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상냥히 말씀해주시지'하는 생각과 '당장 생계가 달려있으면민감할 수밖에 없지'라는 생각이 치고 받았지요. 결국그날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손에 넣은 건 4장정도뿐이었습니다.
탈주자 속출 시작
첫날 이후 바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시는분도계셨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었으니까요!!!하루에 수차례를 거절당하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솔직히 과거의 제게살면서 거절당해본 경험을 말해 보라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을 겁니다. 거절당할 것 같으면 아예 말을 안 꺼냈거든요.(ㅋㅋㅋㅋ) 그러니 저같은 (강화)유리심장에겐극한의 훈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막막했습니다. 다소 의기소침해진 저를 보며 '괜히 그 알바를 찾았나 보다'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죄송해졌습니다. 죄송한 건 별개로 치고 고작 이런 거 하나에 주눅드는 제 모습도 별로였습니다. 그래서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습니다.사실 서두에 언급한 기사를 보기 전에도 거절당하기 연습에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도전해보면 좋겠단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하지 않았죠.(끄덕)
누가 대뜸 음식점에 찾아가서 "햄버거 리필 되나요?"라고 물어보겠습니까?(기자분은 하셨지만)그러니 굴러들어온 기회를 걷어찰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겐 설문조사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습니다. 게다가이번에 포기하게 된다면 미래의 제게 '거 봐, 잘 안 되지?' 하는 선례를 남길 것 같았습니다. 불발된교환학생탓에 기존에 하던 알바도 끊겨서용돈도 필요했고요.
역시 생계가 중요합니다.(끄덕)
안 좋은 것만 골라 먹으면 탈 난다!
총 몇 곳을 방문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로 다양한 분들을 만나뵀습니다.어떤 곳에선 거절을 당하기도 했고, 어떤 곳에선 차 한 잔을대접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곳에선 멋쩍은 미소를 마주하기도 했고, 어떤 곳에선 눈물을 훔치셔서 급하게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게 특별한 행운이나 불행이 따라붙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길 방문하면 설문을 받기도 하고, 저길 방문하면 설문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거구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상상력이 풍부해서 실패에 관한 상상도 풍부했습니다. '실패도 경험이라는데 실패했다가 쫄딱 망하면 어쩌지? 그래서 회복불능의 상태까지가면 어쩌지?!'하고말이죠.(현실: 아직 시작도 안 함)
아마 '도박사의 오류'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지금까진 계속 앞면이 나왔으니다음 번엔 뒷면이 나올 것이다!" 하는 심리말입니다.그런착각대로라면저는 '이제까진 잘안 됐으니앞으로는 성공할 거야!'라는 낭만으로 가득 차야했습니다. 하지만오히려'여태까지못했으니 앞으로도 못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건 '뜨거운 손 현상'이라고 합니다. 가령, 스포츠 경기에서 어떤선수가 연속으로 득점하게 될 경우, 관중들도그 열기에 휩싸여"저 선수가 또 득점할 거다!"라고 느끼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치자면전이상했습니다. 일을 잘 해내면 '도박사의 오류'가일어나고,잘 해내지 못하면 '뜨거운 손 현상'이 일어났으니까요. 즉, 무언가를 성공하면 다음 번엔 실패할지도모른단 생각이 들고,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번에도 실패할 것이란 생각이 든 것입니다.주워 먹어도 안 좋은 것들만 골라먹은 셈이죠.(ㅋㅋ)
앞뒤가 없는 동전
그러니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앞면도 실패, 뒷면도 실패라고 느껴지는 동전을 누가 던지고 싶겠습니까?애초에 던질 의미가 없었습니다.그런데 설문조사를 하게 되면서 제 동전엔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동전 두 쪽다 성공으로가득 찼다!' 하는 꿈같은 얘긴 아니고, 성공과 실패의 균형이 맞아떨졌다는얘기입니다.
어떤 가게를 방문하면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가게를 방문하면 성공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간단한 사실이 멀고도 먼 길을 돌아서야 있는 그대로 입력됐습니다. 저는 모든 상인분들께 똑같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사람이다 보니 100% 똑같았다고 장담드릴 순 없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따라서 이건누구의 잘못이라 할 것 없이그저 그 순간세상과 나의 합이 맞았느냐,아니냐 하는 게다였습니다.
그래서점차 문을 여는 데에망설임이 없어졌습니다. 한 곳이라도 더 빨리 방문해야 답변을 얻을 확률이 컸으니까요!그렇게 도장깨기를 하듯 달리다 보니, 종국에는하루에15장 내외의 설문을회수하게 됩니다.(사실 구체적으로몇장인진가물가물해서대충 3배정도는 뛰었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무조건 외치는긍정은NO!
이에 관해선 대표적으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예스맨(Yes Man)>이 있겠습니다. "예스!"를 외치면서부터 인생이 술술 풀리기 시작하는남자,과연 그것이 그의 모든 걸 이뤄줬을까요?직접 확인해보시죠!(죄송합니다제가까먹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매일 일어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라 일상에 가까울 것입니다.설문조사를 통해 단단해진 마음은 현재의 제가 되기까지의 일부였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도 덜덜 떨면서 해낸 일이 많았습니다.(예: 면접 보기) 그런데 그것도 익숙해지니 점차 무뎌졌습니다.(예: 청○환 필요 없어짐)
저는 어릴 적네○버 카페 가입하기 버튼조차 벌벌 떨며 누르던 초딩이었습니다. 심지어 '가입하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승인되는 구조였는데도 심장이 콩닥거렸습니다. <동○의 숲>이었는지 뭐였는지 아무튼 게임 공략 카페였는데요, 가입 질문에서부터 막중한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기껏해야'필독사항을 잘 읽어보셨나요?', '그걸 잘 지키실 건가요?'하는 내용들이었는데도 저는 쓸데없이 비장했습니다.(비장)
그래서 무수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깨지고 부서지며 딱지를 달아야 할 나이에 상처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먼저 하고 행동한다는 것. 그것은제 인생 전반을 지탱해준 아주 좋은자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그게 너무나 지나쳐서 생각만 하다 기차를 떠나보낸 적이 많았습니다.(ㅋㅋㅋ)게다가 나이를 먹으니 오히려 실수하기가 눈치 보였죠. 그래서 1초라도 어릴 때 더다양한 체험을 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물론범법 행위는No…)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재빨리 흡입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뼈를 씹고 '컥!' 소리도 내보고, 탄 걸 먹고 퉤퉤뱉기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고기를 골라내는눈도 나아지겠지요. [고기를 씹다가 갑자기 그 속에 섞여 들었던 나노 기계를 건드려 우주인이 지구를 침공해온다]와 같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배를 곯을 순 없습니다.일단 먹어야 살지요! 사는 맛을 안다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걸 고민하려면 일단 밥부터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급소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