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일기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271125
몇 달 전에 새로운 질서라는 이름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 수업은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해서 핸드메이드, 그러니까 수작업으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연사님이 코딩은 컴퓨터의 언어로 쓰는 글쓰기이고, 여기에는 지켜져야 하는 질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질서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껴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질서’라는 단어 자체는 제게 살짝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생각해 보니, 앞선 수업의 선생님 말씀이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생명의 여정에서는 초기 생명체의 본질을 ‘질서의 주머니’로 표현했더라고요. 과학의 관점에서 생명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을 달리해 볼 수 있었던 단어였습니다.
질서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만난 다른 종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주로 포유류랑 식물을 많이 만났어요.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너무 크게 드러나니까, 생명체를 이루는 질서도 시작점이 많이 다르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역시 식물이 짱이었다…!
‘역시 식물이 짱이었다…!’는 감탄을 뒤로 하고 책을 좀 더 읽어보니, 식물뿐만 아니라 생명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닐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초반의 남세균 이야기부터 식물이 대지를 재편성하고, 동물들이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며 환경을 조각해 왔듯이. 생명은 지구에 질서를 새겨넣고 능동적으로 자신이 사는 장소를 다시 짜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만이 세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환경을 경험하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해마의 인사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언어를 구사하고 문명을 이룩한 ‘인간’ 중심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성과 기술의 힘으로 지구의 환경에 비정상적으로 영향을 미친 존재는 인간이지만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바꿀 힘을 얻었고, 그로 인해 인간종 외의 종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고요. 지구에서 녹색지대가 사라지는 결과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생명체들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피터 고프리스미스가 지적하듯이 말입니다.
마무리로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 인간의 치아가 농사를 짓던 인간의 치아보다 튼튼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 집 고양이의 치석은 어쩌면 나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생명의 여정은 좇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갑오징어를 쫓아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피터 고프리스미스의 마음만큼은 정말 깊게 와닿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