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찍어 먹어 보기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1 나이 듦에 관한 이중잣대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왜 재미가 없을까? 아무래도 비슷한 이미지의 향연처럼 느껴져서 아닐까? 패션 분야라면 스타일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쏟아지는 xx 코어들이 정말 다른 게 맞나? 그저 ‘팔리는’ 거죽에 ‘팔릴 것 같은’ 거죽을 덧씌운 건 아닐까… 보여지기를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고 슬그머니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 꾸미는 행위가 삶에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꾸밈’은 특정 성별에 더 부자연스러울 것을 강요한다. 젊은 여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잘 팔리는 광고 중 하나이다. 모두가 젊은 여자, 특히 젊고 예쁜 여자의 이미지에 끌린다. 그녀가 무엇을 입고 있던 입고 있지 않던 간에 말이다.
수전 손택은 「나이 듦에 관한 이중잣대」에서 노년과 나이 듦을 구분한다. ‘노년’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객관적 고통이자 시련이지만, ‘나이 듦’은 주로 상상 속의 시련이며 본질적 특성상 남성보다 여성이 피해를 훨씬 많이 입는다. 특히 사회는 ‘젊음’에 정서적 특권을 부여하는데, 이는 여성에게 예뻐 보일 것 말고도 젊어 보일 것을 강제한다. 도시화 된 라이프스타일은 ‘젊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젊음’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는 세속 사회가 만들어낸 행복의 은유기 때문이다. 상업화된 행복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타인의 나이를 집요하게 의식하게 만든다. 수명이 연장되는 시대 속, 우리 사회는 나이 듦에 쫓겨 기행을 벌이기 시작한다. 별로 늙지도 않은 자신을 말라가는 과일처럼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이 듦’을 외모라고 부르는 표면의 싱싱함 그리고 심부 조직의 싱싱함으로 나눠서 생각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내가 속한 ‘성별’은 그 싱싱함을 유지하는 것에 집착한다. 수전 손택은 이 ‘집착’의 이유를 젊음의 프로파간다 외에도 ‘나이 듦의 이중 잣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중 잣대는 우리 삶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여성을 치장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성적 매력과 직결된 외모에 들이대는 이중 잣대 아닐까? 남성은 섹스할 수 있는 한 계속 성적인 존재로 남는다. 외모가 늙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이 듦이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저 고추가 서지 않는 것, 혹은 이런저런 체위가 수월하게 되지 않는 ‘기능’을 걱정하는 정도일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외모 및 나이와 관련된 훨씬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성적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피부는 코끼리처럼 갈라져 기미가 피어 있고 얼굴은 해골에 가까워져 있으며, 가슴은 축 처져 있고 엉덩이 아래에 늘어진 살이 접혀있는 늙은 자신이 섹스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여성은 몇이나 될까? 여성은 몸을, 젊음을 보존해야 한다. 젊음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기 위해 여성은 다양한 기행을 벌인다. 노화를 성공적으로 미룬 여성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며, 여유를 누리며 자신을 가꾸기 위한 기행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부유한 여성의 기행이 외모를 향한 집착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대 SNS 시대에 부유한 계급의 여성이 전시하는 삶은, 여성의 외모는 젊고 예뻐 보여야 한다는 환상을 지속적으로 살포하고 강화한다. 이 환상은 여성에게 자기의 얼굴과 몸을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수전 손택은 이 장에서, 여성은 얼굴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자신이 가혹하게 경험하고 있는 나이 듦의 이중 잣대를 먼저 분연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덧붙이면 과격할 수도 있겠지만, 섹시 바디 프로필은 나이 든 여성이 찍었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 말고. 우리가 상상하는 ‘섹시함’이 젊음에 과도하게 묶여 있다면, 그것은 성적 자유라기보다 조건부 자유일지도 모른다. 천년만년 소녀 같은 얼굴, 갖고 싶은 얼굴, 자신의 리즈시절 얼굴 등을 욕망하는 퇴행적 행동에 머무르지 않고, 그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에게 유리한지, 무엇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젊고 예쁜 여자’라는 이미지가 무한히 재생되는 시대에 나이 든 여성의 상상은 점점 더 빈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여성이 걸린 무한츠쿠요미를 깨야 한다.
(*무한 츠쿠요미 : 일본 만화 ‘나루토’에 등장하는 깨기 힘든 궁극의 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