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만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2

어떻게든 찍어 먹어 보기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by 요새난


2 여성의 아름다움 : 모욕인가, 권력의 원천인가?

아름다움 : 다음엔 무엇으로 바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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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SCMP / 한국경제 유지희 기자의 기사 속 사진


최근 성형 전 자신과 성형 후 자신이 함께 있는 모습을 AI로 합성해 올린 사진이 이슈였습니다. 그 사람의 용기와 기괴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타고난 외모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추구하는 외적 아름다움이 주어진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여성과 남성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중 여성은 특히나 그렇겠지요.


이제는 표준어처럼 자리 잡은 ‘추구미’는, 업계 사람들 그리고 소비자들이 모든 역사 속 여성과 가상의 여성에게서 아름다움을 찾고, 이를 팔기 위해 발명된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도 추구미가 있지 않느냐? 라고 여쭤보실 수 있지만, 남성의 추구미는 주로 ‘태도’나 ‘능력’에 관한 것이지 외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능 산업이 발전한 이후로 조금씩 외모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성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미’는 가슴 설레는 단어입니다. 신선함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성’과 관련되면, 특히 여성의 외모와 관련되면 순식간에 지루해집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공식과 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이 반영된다 하더라도 소량씩 첨가되는 정도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과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E-girl이 있겠지요. E-girl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은 여성 스타일입니다. 인터넷 문화, 게임, 특히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속 ‘미소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거기다 몇 년 사이 K팝의 영향도 커진 것 같습니다.


E-girl은 노골적인 콘텐츠로 팬들을 끌어들입니다. 이에 따라 쉽게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지요. 이를 거부하는 E-girl들의 움직임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성이 세운 기준 안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위신을 잃은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E-girl들은 수익을 어떻게 창출하고 있을까요? 그녀들은 주로 플랫폼을 기반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틱톡, 유튜브, 트위치, 인스타그램, 그리고 Only fans, 아프리카 TV 등이 있겠지요. (아, 저는 BJ도 E-girl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산업 속에서 아름다움은, 여성들이 추구하도록 권장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입니다. 수전 손택은 이 권력이 ‘무엇인가를 하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힘’이며 타고난 자기 외모를 부정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업에서 아름다움은 기본 조건입니다. 소비자의 욕망은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여성이 ‘꼴리는 행위’까지 수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름다움이 선행 조건이라면, 꼴림은 소비자의 명령이자 요구입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상품으로서 차별화하기 위해, 그녀들은 예쁜 외모로 엽기적이거나 추한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좋아서, 수익이 높아서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여성과 남성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분히 연극적인 이 콘텐츠의 주 소비자는 남성이고, 여성은 철저히 남성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메소드 연기자입니다. 명령과 수행이 주된 이 콘텐츠의 유행에 질린 남성 소비자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설까요? 자연스러운 콘텐츠가 주는 자극을 원하는 소비자가 생기지 않을까요? ‘자연스러운 자극 추구’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물은 스너프 포르노 필름이겠지요. 만약 어떤 여성이 진정 원해서 자발적으로 이 필름에 참여한다고 주장한다면, 뭐 그런거겠지요.


수전 손택은 말합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아닌 ‘아름다움’은, 특히 ‘아름다움’이 유일한 권력이라고 부추기는 현상은 여성의 나르시시즘을 장려하고, 의존성과 미성숙함을 강화한다고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여성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아름다움이라는 탁월함 및 특권과 거리를 두고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지탱하기 위해 아름다움 자체가 얼마나 축소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럼, 이 ‘아름다움’으로 자극적이고 섹슈얼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닌. 인플루언서로서 각종 브랜드의 제품과 외모를 내세우는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요?


인플루언서인 그녀들은 스스로 ‘미’를 설계하고, 플랫폼을 선택하고, 제품을 만들거나 홍보해 수익을 챙깁니다. 이 경우, 겉으로 보면 경제활동의 주체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판매를 위한 수단인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성이 세운 기준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여성 고객의 제품 구매율이 더 높습니다. ‘남성의 시선’이 쌓아 올린 미의 기준에 여성도 동의를 하고 있고, 여성도 예쁜 여성을 보며 쾌감과 욕망을 얻는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남성의 기준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어떤 얼굴과 몸이 팔리는지를 결정하는 시스템 안에서 산업이 작동한다면, 과연 이것은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일까요?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일까요?


수전 손택은 「아름다움: 다음엔 무엇으로 바뀔 것인가?」에서 (1975년 기준으로)현재 모두가 힘을 합쳐 영속적일 것만 같았던, 정적인 아름다움의 신화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혁명이지요. 다시 처음 언급했던, 성형 전 모습과 성형 후 모습을 나란히 놓은 사진을 떠올려 봅니다. 스스로 성형을 택한 사람이 얻은 ‘아름다움’은 남성 기준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AI로 사진을 만든 여성의 행동은, 남성 기준의 아름다움 이전의 자신도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요? 성형 전 자신을 지우지 않고 나란히 서는 것, 어쩌면 손택이 말한 ‘아름다움의 복권’에 가장 가까운 몸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비바 라 레볼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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