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쌍둥이면 좋겠어. 힘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과정을 세 번 거치는 대신 단 한 번으로 퉁치는 것이야. 딸과 아들 한 명씩, 마지막 셋째는 하늘에 맡기는거야."
"...세 쌍둥이를 갖는다는 게 어떠한 일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말하는거야?"
아이가 셋이면 기저귀를 가는 것도, 밥을 먹이는 것도, 씻기는 것도 세 배. 쌍둥이라해서 이들의 생체 리듬이 기계처럼 똑같을 리도 없을테니, 첫째의 똥기저귀를 갈고 나면 둘째의 똥기저귀를 갈고, 셋째의 똥기저귀를 갈고 이제 끝이라며 한숨 고를 때쯤이면 또 다른 똥기저귀가 나올테다. 똥기저기의 무한 루프.
진땀 꽤나 흘리는 임신 기간과 양육을 단 한 번으로 굵게 치르고 끝내는 것이 그래도 세 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수월하지 않겠나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생각이 높게 쌓인 똥기저귀 탑 앞에서 무너진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을 전적으로 나에게 기대는 존재에게 안전하고 따듯한 환경을 제공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나에게는 수많은 역할 중 아빠라는 역할 하나가 더 추가될 뿐이지만, 그 아이의 세계는 전적으로 나에게 의존한다. 나 없이는 밥을 먹지도, 축축한 기저귀를 벗지도, 따듯한 곳에 누워 잠을 자지도 못 하는 것이다.
난 지금의 나이가 되서도 여전히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 사이의 허들에 자꾸만 발목이 걸려 비틀대곤 한다. 그런 내가 한 아이한테 세상 모든 것이 되어줄 수 있을까?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며 알게 된 한 형님과 출장길에 같이 오른 적이 있다. 당시 막 결혼을 한 상태였던지라 결혼 및 자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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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혼 준비는 없듯이 자녀를 갖는 것 역시 마찬가지. 누구나 다 부모 역할은 처음인만큼 완벽한 부모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한계를 정해 놓으면 그 한계를 결코 뛰어넘지 못 하겠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 그 한계를 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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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게 되면..... 뭘 어쩌겠나. 한계를 멋지게 훌쩍 뛰어넘지는 못 할지라도 죽기살기로 기어서라도 어떻게든 넘어야겠지. 그렇게 하면서 부모가 되어가겠지. 세 자녀를 낳고 기른 부모님에 대해 뒤늦게 떠올려본다, 당신 역시 어머니, 아버지 역할은 처음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잘... 음?) 자랐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