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
드라마에서 특이한 게 있습니다. 황동만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그게 너무 오버라고, 구교환의 연기가 과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특히 최동현에게 모욕을 당한 뒤, 집에서 만두와 계란, 김밥을 미친 사람처럼 먹어대는 장면이요. 어떠셨나요? 연기가 지나치다고 느끼셨나요?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오버하는 거라고 보셨나요? 저는 그 장면에서 전율이 왔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걸 구교환이 아닌 다른 배우가 살릴 수 있었을까? 공허함, 잊힐 것에 대한 공포, 그 공포에서 비롯된 허기. 그걸 안고 사는 나약한 한 사람의 게걸스러움을 저렇게 처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현재까지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뒷산에 올라서 황동만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황동만, 동만아라고 소리를 치고 그리고 자기가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며 울던 장면입니다. 너무 좋지 않나요?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황동만이라는 인물에게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요. 특히 8인회 모임에서 두드러지죠. 첫째, 너무 시끄럽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산만해요. 둘째, 음식이에요. 모임마다 지나칠 만큼 게걸스럽게 먹어댑니다. 빠르게, 많이, 쉴 새 없이 떠들면서요.
최동현 대표에게 시나리오와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치욕적으로 모욕당하고 돌아온 날은 절정이었어요. 울면서 미친 듯이 음식을 입에 마구 집어넣습니다. 8인회에서 먹던 좋은 음식이 아니에요. 집에서 혼자 먹는 만두와 라면, 김밥이에요.
그런데 평소 혼자 있을 때 황동만은 안 그래요. 방에서 저렇게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저녁에 형 집으로 돌아갈 때도 김밥 한 줄 사서 조용히 들어가죠. 그러니까 황동만은 원래 식탐이 많은 사람이 아닌 거예요. 혼자든 누가 있든 늘 음식에 집착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 앞에서, 특히 8인회 앞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먹어대는 걸까요? 최동현에게 모욕을 당하고 나서는 왜 더 미친 사람처럼 음식을 밀어 넣은 걸까요?
황동만의 음식은 따로 떼어서 보면 안 됩니다. 카톡, 수다, 감정워치와 같은 맥락으로 들여다봐야 해요.
카톡을 보죠. 황동만은 8인회 단톡방에 메시지를 수백 개씩 쏟아부어요. 수다를 보죠. 모임에 가면 쉴 새 없이 말을 해대요. 감정워치를 보세요. 자기 내면 상태가 밖으로 보이는 시계에 매달려요.
이것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전부 무언가를 채우는 행위입니다. 황동만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빈칸을 못 견디는 사람이에요. 비어 있으면 자기가 지워질 것 같으니까, 뭐든 채우려는 거예요. 방법만 다를 뿐이에요.
카톡 수백 개는 빈 화면을 채우는 거예요. 쉴 새 없는 수다는 조용한 공간을 채우는 거예요. 감정워치는 보이지 않는 자기 안쪽을 바깥에 표시해서 채우는 거예요. 그리고 음식은 텅 빈 몸을 채우는 거예요. 물론 단순히 허기진 위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텅 빈 자기 자신을 채운다는 거죠. 채운다는 건 거기 있다는 뜻이거든요. 화면이 카톡으로 가득 차 있으면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잖아요. 공기가 내 목소리로 채워져 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거잖아요. 몸속이 음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거잖아요. 많이 채울수록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안도가 되는 거예요. 비어 있는 게 무서운 겁니다. 비워져서 사라지는 게 두려운 겁니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자신이 닿지 못하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먹는다’가 아니에요. '게걸스럽다’가 중요합니다.
8인회 자리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황동만은 맛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배를 채우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 자리에 자기가 있다는 걸 자기 몸에 절박하게 새기고 있는 거예요. 급하고 빠르게 많이 먹어대는 건, 비어 있는 감각을 빨리 덮으려는 거예요.
그게 특히 8인회 모임에서 더 심해지는 이유가 있어요.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감이 있거든요. 한때는 동등한 선후배로 지냈던 사람들이 모두 데뷔하고, 작품을 이야기하고, 돈을 벌고, 인정도 받아요. 어떤 방식이든 자기 삶을 이뤄가며 살아요. 모임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축하하고, 뿌듯해하죠. 다른 사람들은 대화로 존재하고, 작품으로 존재하고, 이름으로 존재해요. 자기를 빼고는 모두가 그렇습니다. 황동만에겐 그게 없어요. 내세울 작품도 없고, 불러줄 직함도 없고, 화제가 될 이야기도 없어요. 자신의 시나리오를 읽어주는 사람도 없고, 왜 저러고 사나 싶은 눈치까지 받죠. 그게 무려 20년입니다. 가장 가까운 형마저 그 존재감에 무너졌어요. 그 자리에서 황동만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거예요. 비교할수록 더 그렇겠죠.
그러니까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곧 인정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이 세계 안에 자리잡지 못하는 상태 그 자체예요. 지워질까 봐 무서운 사람의 몸부림인 겁니다. 황동만은 배고파서 그렇게 먹어대는 게 아닙니다.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드러나는 거예요.
그걸 좀 더 친절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최동현에게 모욕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동만의 감정워치에는 '허기’라고 표시돼요. 최동현에게 받은 모욕은 단순히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존재감의 상실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걸 확인당한 거예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이 세계 안에 머물지 못하는 잉여라는 것. 그게 왜 '허기’라고 표시됐을까요. 허기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거든요. 먹을 것이기도 하지만, 사랑이기도 하고, 인정이기도 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기도 하고, 자리이기도 하고, 응답이기도 해요. 동만은 그 세계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존재 자체가 굶주린 사람인 겁니다. 변은아도 그러잖아요. 감독님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파워가 생길 거라고요. 사랑한다는 건 사랑을 받아보는 거잖아요. 받아들여지는 게 음식 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는 걸 ‘도끼’인 변은아는 간파하고 있었던 겁니다. 감정워치는 황동만의 바로 그 상태를 말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날 최동현이 한 말은 사실 8인회 모두가 품고 있던 생각이기도 하죠. 누군가 한 번은 해야 할 말이라고, 해줘야 하는 말이라고들 했으니까요. 아마 동만도 이미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다만 관계 때문에 아무도 직접 입에 담지 못했고, 그게 확인되는 순간이 동만에게는 늘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거죠.. 아주 잔인한 이야기였죠. 황동만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것, 존재감도 없고 잊혀야 할 사람이라는 걸 말로 확인해 버렸으니까요.
구교환의 연기가 감탄스러웠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에요. 동만이라는 인물은 속으로 허기지고 채워지지 않는 사람인데, 그걸 겉으로 드러내면 안 돼요. 웃어야 하고, 천연덕스러워 보여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굴어야 해요. 그러면서도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집어삼키는 모습 안에서, 거부당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람의 절박함이 비쳐야 하거든요. 텅 빈 자기 안을 무엇으로든 채우려는 몸부림이요.
그 이전까지의 행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불안을 일부러 덮으려는 쪽에 가까웠어요. 두렵지만 아직은 모른 척할 수 있는 단계였던 거죠. 그런데 최동현에게 모욕당하고,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확인당한 날은 달라요. 같은 행위인데 훨씬 처절하고 절망적이에요. 그럼에도 동만이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그것뿐이었어요. 비어버린 존재감을, 사라져 가는 자기 자신을, 무엇이든 입 안에 넣어서라도 붙잡는 것. 그게 스스로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예요. 최동현에게 모욕당하고 돌아온 그날, 동만은 커다란 만두를 밀어 넣고 밥솥에서 주걱으로 엄청 많은 밥을 퍼석 입에 넣고 시어버린 것 같은 총각김치를 우적우적 입에 밀어 넣어요. 사발면을 미친 듯이 입에 넣고 씹어 댑니다. 침묵이 오면 떠들고, 화면이 비면 카톡을 채우고, 감정이 흔들리면 워치를 확인하고, 존재론적인 허기가 밀려오는 두려움을 음식으로 채워 넣는 겁니다. 비어 있다는 건 자기가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눈물 흘리며 먹던 그 장면이 먹먹했어요. 아마 동만은 멈추는 순간 텅 빈 감각이 그대로 밀려올 걸 알았던 거예요. 멈추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들이닥치니까, 차라리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멈추지 않았던 거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택한 마지막 방어였어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 무서움이었던 거예요. 동만의 감정워치에 뜬 '허기’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오릅니다. 게걸스러게 음식을 집어넣는 것으로 당연히 존재감이 채워지지 않겠죠. 늘 황동만은 그 불안한 경계를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마저도 도 불안하고 무서운 동만이 뒷산에 오른 겁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자기가 ‘네’라고 대답을 해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 아무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존재, 그래서 자기가 불러주고 자기가 대답을 해주는 겁니다. 눈물을 흘리면서요. 뭉클하더라고요. 구교환이라는 배우 정말 좋지 않나요? 구교환의 발성은 배우로서는 사실 장점이 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남자로서는 약간 높고 얇은 톤, 때로는 사투리가 섞인 말투예요. 가공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게 ‘연기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실제로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강점으로 연결이 돼요. 표면적 감정이 예측가능하고 연속적이지가 않아요. 개구쟁이처럼 웃고 아무렇지 않으려고 하고 돌발적이고 엉뚱하게 말을 던지거나 행동을 해요. 마음속의 불안이나 내면의 심리적인 균열을 감추고 숨기려는 하지만, 안쓰러운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을 담는데 탁월해요. 이 드라마에서 동만은 그게 극대화됐거든요. 그런데 절대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때 동만이 산에 올라서 자기 이름을 부르고 ‘네’라고 자기가 답을 해요. 토해해 내듯이 울부짖듯이 말을 합니다. 그 불안과 처절함의 끝에선 사람의 감정을 너무 잘 담아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화에서 변은아가 반찬을 내밀어요. 할머니가 싸주던 반찬도시락이에요. 늘 버려야 했던 은아였죠. 아마도 할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사연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늘 버리고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은아는 그걸 황동만에게 내밉니다. 자신의 존재를 채우기 위해 절박하게 음식을 밀어 넣던 동만에게 음식을 건넨 거예요. 동만의 음식이라는 메타포가 이제 변은아에게 넘어온 겁니다. 변은아가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인물이 될 것을 암시하는 거죠. 단순히 반찬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채워지지 않는 존재론적인 허기, 비어있음. 그 받아들여진다는 게 음식밖에 없어 파워가 없던 황동만인데 이제 그곳을 사랑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채운다는 겁니다. 반찬이라는 음식이었지만, 이전에 채워지던 음식과 다른, 황동만이 진짜로 받아들여지고 채워질 사람이 다가왔다는 메타포를 갖고 있는 겁니다. 진짜로 채워질 사람이 찾아왔다는 거죠. 황동만이 그 반찬통을 들고 그토록 즐겁게 춤을 췄던 건 그래서예요.
구교환이 아니었다면 저 장면들을 누가 얼마나 살려냈을까 싶을 만큼 전율이 왔던 장면들이었습니다. 비어져서 잊혀가는 한 사람의 두려움을, 채우는 것으로밖에 버틸 수 없는 한 사람의 몸부림을, 저렇게 살려낸 작가도, 연출도, 배우도 감탄스러웠어요. 특히 눈물 흘리며 음식을 입에 밀어 넣던 그 연기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솔직히는 눈물도 좀 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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