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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Aug 22. 2023

시효 이야기1

시효란 일정한 사실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된 경우, 그 사실 상태가 진실한 권리관계에 합치하느냐 여부를 묻지 않고 법률상 일정한 효과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그 효과에는 권리의 소멸을 가져오는‘소멸시효’와 반대로 권리의 취득을 가져오는‘취득시효’가 있다. 이는 민사상 시효이다. 그런가 하면 형사적으로는 형의 시효와 공소시효가 있다. 여기서는 주로 민사상 채권의 소멸시효와 형사상 공소시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일정한 기간 동안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잃고 의무자의 의무를 면하게 하는 소멸시효 제도는 왜 있는가? 그 이유로는 사회질서의 안정과 분쟁 없이 오래 지속된 데 따라 입증 곤란 상태에 놓인 당사자를 구제하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사례1

 A가 1억짜리 차용증을 소지하고 방문하였다. 변제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채무자의 행태를 더는 묵과할 수 없으니 본안 소송을 제기해달라는 의뢰다. 서류를 살펴본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채권자가 너무 늦게 찾아왔다. 금전을 거래한 대여금 채권의 경우, 일반 채권으로서 민법상 그 시효는 10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야 찾아온 것이다. 도대체 왜 지금까지 차용증을 가지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야 찾아왔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금고 속에 꼭꼭 숨겨서 보관하고 있었다는 답변이다. 차용증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라도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차용증을 마치 돈다발처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화폐마냥 여긴 것이 화근이다. 

 차분히 설명해주자 시효의 개요를 전해들은 채권자 A는 얼굴이 사색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구제받을 방법이 없느냐고 발을 동동 구른다. 법적 비용은 얼마든지 댈 테니 소송을 제기해달라고 떼를 쓴다. 하지만 차용증에 걸려 있던 시효는 이미 만료되었고, 한번 시효를 넘긴 권리는 후진이 안 되고, 유턴도 안 된다. 나라님조차 구해주지 못하는 것이 소멸시효이다.     


 그가 소정의 권리자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기간을 챙겼어야 했다. 증서 하나하나는 집이다. 권리가 몸을 담고 있다. 그런데 권리에게는 임기가 있다. 그 임기를 법의 제국에서는 시효라고 칭한다. 임기가 만료되면 권리는 자리에서 무조건 내려오고 닥치고 물러나야 한다. 민사적인 권리는 기간만 충실히 관리하고 때에 맞추어 연장한다면 영구집권도 가능하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죽는 날까지 의무자에게 따라붙는다. 심지어 의무자가 죽으면 그 상속인들에게 옮아 붙어 따라간다. 그만큼 시효는 집요하다.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무자)과 단절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권리의 습격을 피할 길이 없다. 상속인들은 권리자 앞에 복종하느냐 아니면 의무자와의 상속 관계를 포기하느냐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시효는 권리자들이 자기를 보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도 권리자가 기간을 업신여기면 시효는 권리의 이해관계인을 등져버린다. 일편단심과 초지일관을 미덕으로 삼는 당사자에게만 자비를 베푸는 시효는 침묵의 저격수이다. 말없이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잠자는 권리자를 저격해 쓰러뜨린다. 시효에 대한 경험이라곤 없는 장삼이사나 시효에 대해 가르쳐줄 사람 하나 없는 갑남을녀는 시효를 놓치기 일쑤이다. 그들은 액면에만 신경을 쓸 뿐 그 효력에는 둔한 경향을 보인다. 시효를 넘긴 차용증을 품에 안고 의무자를 찾아가 봐야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법의 제국에서 시효를 넘긴 자에게 용서란 없다. 기간에서 돌아서면 끝이다. 법의 문을 두드리며 자비를 구하더라도 한번 닫힌 시효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시효는 권리의 죽음으로 일대의 사건이다. 기간을 넘기는 순간 그것은 권리자를 사슬로 묶고, 의무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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