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난하지도 부자이지도 않았다. 왠만한 학원은 다녔고, 부족한 부분은 과외도 받았다. 일년에 두번 여행을 다녔다.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의 옷과 신발은 살 수없었다.
난 우리집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빚을 얻었지만 그 빚이 얼마나 있는지, 아빠 엄마의 수입이 얼마인지 대략적으로나마 듣지를 못했다. 우리집의 소비행태 등을 보고 귀납적 추론을 통해 우리집의 경제 사정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항상 불안했다.
맞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극도로 돈 이야기를 꺼리는 분들이셨다.
조금 부연하자면 아버지는 어떠한 방면이든 돈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분이셨지만, 어머니는 구체적인 가계 상황은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돈이 없으니 함부로 쓰지말라'는 뉘앙스는 풍기시며 부담감을 안겨주시는 분이셨다. 한번은 나이키 운동화를 사달라조르니 어머니는 돈이 없다 말하셨고'그럼 학원도 끊고대학도안가고그냥 돈이나 벌겠다' 했다. 그런나에게 엄마는 "공부하는 게 돈 버는 거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답변만 남겼을 뿐이다.
"그럼 돈 없단 소리는 왜 하는 거야. 마음의 부담만 되게."
그렇게 실체가 없는 모호한 우리집 경제 사정에 대해 머리가 커갈 수록 불안감은 커져만갔다.
친구와 돈
반면 나는 오랜 친구들과는 돈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음으로 인해 더 안정감을 느낀다.
직접적인 돈 이야기를 꺼리는 부모 탓인지, 나는 돈에 대해 면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마치 '돈만 밝히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면 난 더치페이를 권하기보단 '내가 쏠게'라는 말을 하게 되고, 내 친구들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 자란 탓인지 '아니야 이번엔 내가 쏠게'라며 맞받아치곤 한다.
우리에겐 이게 서로를 존중하고 우정을 지키고 싶다는 표현방법 중 하나이다. 저번에 내가 쏜 게 소고기이고 친구가 지금 쏘는 게 떡볶이 일지 언정 우리에겐 그 정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우리가 다음을 기약하고 싶고 서로를 아낀다는 마음을 우리는 돈을 이야기 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친구와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아주 오래된,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보고 또 공감했을 이 명제를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어떤 만남은 칼같이 100원 단위로 만남을 위해 사용된 비용을 배분하기도 한다. 그래야 뒤끝이 없고 향후 만남이 지속되더라도 부담없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종류의 만남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가족과 돈
가족은 부담없는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칼같이 돈을 계산해야 하는 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족과는 반드시 면전에서 돈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관계이다. 가족과 친구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분류되지만, 결정적으로 가족은감정적 위안과 공감을 주고 받기 위해 만나는 친구와 달리 서로에게 심적 의지를 줌과 동시에 서로의 경제적 상황이 서로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부모가 벌어 온 돈으로 자녀들과 더 넓게는 조부모들까지 먹고 산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한 가정의 라이프 스타일이 판가름 나는 것이다. 즉, 망하면 같이 망하고 흥하면 같이 흥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보통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는 부담을 주고싶지 않아서다. 돈에 대한 압박이 일상을 뚫고 들어와 마음엔 근심이 얼굴엔 그늘이 어깨는 무거워 축 늘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나하나로 족하다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돈의 무게가 말하지 않는다고 자식들에겐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매일 같이 한 집에서 밥먹고 얼굴 부딪히며 사는 식구(食口)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아이들은 표현방법을 모르기에 집안에 흐르는 분위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이가 집에 오기 전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부부싸움을 멈춘다고 해도, 아이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쎄한 기분을 감지할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부모 대상 강의로 진행한 감정코칭 수업에서 들은 내용이다. 강사는 심장은 제2의 뇌로 뇌에서 파동을 보내는 뇌파가 있듯 심장도 파동을 보내는 전류가 흐른다고 했다. 심장에서 보내는 그 파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부모의 불안감, 분노 그리고 공포와 같은 감정을 공간 안의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물론 강의의 내용은 그러니 부부싸움 하고 안한척해도 아이들은 다 아니 근본적으로 화목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뭐 그런 좋은 내용이었다.
다시 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이에게 부담 지우지 않으려해도 아이는 다 안다.
사실 불안감은 '무지'에서 온다. 알면 대응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모르면... 실체없는 불안감만 증폭될 뿐이다.
우리 집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구체적으로 우리 집 상황이 어떤지를 모른다면 아이는 불안하며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쉽게 포기하려 할지도 모른다. 혹은 돈이 있는데 얼마나 있는지를 모른다면 아이는 한계를 모르고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으로 성장할 지도 모른다. 돈이 있든 없든 아이에게 집안의 경제 사정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집안의 경제 사정은 아이의 연령에 따라 조절해 가며 설명해줘야 한다. 5살 난 아이에게 노후 연금 수령액을 말해주면서 지금 당장 인형 혹은 로봇을 사줄수 없다고 말해봤지 뭐 알기나 하겠는가. 영유아기엔 경제 사정을 알려준다기 보단 '한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커다란 좌절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좌절일지라도 이를 경험하게 하고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있음을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과정 자체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얻는 커다란 자신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자란 어린이들에겐 우리집 경제 사정상 어떤 학원은 다닐 수 있고 어떤 학원은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닐 수 없는 학원이 있는데 아이가 그것을 공부하고 싶어한다면 다양한 대안을 부모가 함께 모색해보는 것 역시 아이의 인생에서 얻게 된 소중한 자산이자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좀 더 자라 청소년이 된 아이에겐 대략적인 연봉을 공개하는 것도 좋다.(수위 조절은 부모판단) 그리고 생활비로 대략 이 정도 사용을 할 수 있으며 교육비와 식비로 우리는 이 정도를 할애하고 있는데 만일 사고 싶거나 배우고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가계 운영 계획을 세워볼 지 함께 논의하는 게 좋다.
돈 앞에 당당해지자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채로운 감정 표현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맞는, 표현 방식도 가르친다. 하지만 유독 돈 앞에서는 쉬쉬한다.
사실 돈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돈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돈 자체를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들 역시 조금 더 그 욕망을 구체화시켜보면 아마도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일하는 스트레스 안받고 편히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와 같은 돈으로 해결가능한 다른 욕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롭다 여기는 부분에 대해 당당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은 그 표현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일년에 석달은 해외여행을 마음 껏 하면서 보내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다고 치자.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 어떤 재정 상태인지 파악하고 책임질 가족이 있다면 그들과 구체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가 아이에게 대놓고 돈 이야기를 할 수록 아이들은 더 당당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로 그리고 생산자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물론 현재의 30, 40대 부모들은 나와 비슷하게 돈 앞에서 유독 쉬쉬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났을 확률이 높지만, 그건 우리 세대의 일이고 이젠 그 이상한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있어도 없어도 돈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도록 '태도'부터 가르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