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하지 않는 이유

by 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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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특징 중 하나가 허례허식이 없는 것이다. 정도가 좀 지나칠 때도 있다. 내 아홉 살인지, 열한 살인지, 초등학교 중저학년 어느 생일날, 동생과 부모님 그리고 나까지 모두 내 생일을 잊은 적이 있다. 밤 아홉 시에 순풍산부인과(당시 제일 잘 나가는 시트콤)를 보는데 그날 미달이의 제일 친한 친구 의찬이가 생일을 맞은 화가 방영되었다. 그제야 본인 생일임을 깨달은 나는, 아차, 사실은 내가 생일이라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놀람 반 황당함 반으로 어머나, 하더니 깔깔깔 웃었다. 나도 깔깔깔 웃었다. 1할 정도 서운했지만, 해프닝이 있어서 더 좋았다. 그날 밤 우리는 허겁지겁 동네 피자를 시켰고, 금방 도착한 뜨거운 피자 위에서 케이크초는 녹는 바람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그마저도 웃겼다. 친구들을 잔뜩 불러 파티를 열만 한 인맥이 없없던 나는 생일은 그렇게 가족끼리 조용히 넘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내심 소공원에서 배스킨라빈스, 피자, 치킨, 헬륨 풍선, 꼬마 왕자님 공주님 옷과 함께 파티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우리집은 그럴만한 기념일에 대한 관심도, 부모의 시간적 여유도, 무엇보다 내가 두루두루 끌어모을 친구도 없었고 별 기대 없는 척 생일을 넘어갔다.


결혼식도 이유는 일부 비슷하다. 나는 그렇게까지 부를만한 친한 친구가 없다. 친하지 않더라도 부르는 게 아직까지는 살아남은 홀 임대형 현대의 한국의 웨딩 문화 같은데, 나는 어색한 초대를 무릅쓸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정확히는 그러한 초대에 사용되는 감정과 고민이 내 삶에선 소모적이다. 그것으로부터 얻는 바가 없다고 느끼니 내가 주인공인 내 결혼식에서 만큼은 수고로움을 덜고 싶었다.


여기서 보통 하는 말이 부모님의 축의금 문제다. 그래서 내가, 이제는 템플릿이 거의 되었는데, 답변하기를, 신부의 언니와 내 여동생이 이미 일반적인 결혼식을 해서 받을만한 축의는 이미 다 받았다는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꼭 덧붙인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동생이 없었어도 결혼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인신고만 하고 살 생각도 했는데, 양가가 모여 기분 좋은 식사 자리 정도는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에서 비롯되어, 나름 고가의 호텔 숙박도 예약하고 야외 장소도 빌려 작은 파티도 준비했다. 형제와 형제의 배우자까지, 단 열 명만 모이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나는 이걸 결혼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마저도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부로 결혼식이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는데 예비 신부님과 나눈 대화가, 이마저도 하지 않고 간단히 식사만 했어도 좋았을 거라는 공통 의견이다.


나는 중요한 가치에 집중하는 게 좋다. 행위의 이유가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효능감을 느낀다. 남들이 하니까 그대로, 내가 한국인이니까, 남자니까, 회사원이니까, 성인이니까, 무엇이니까 하는 게 싫다. 웅성이는 사람 무리에 속해있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내 실루엣에 컬러를 부여해 다른 사람들은 회색빛, 나는 다채색의 주인공 캐릭터로 주조한다. 사람은 모두 다 그렇게 산다. 그래서 결혼식을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그게 자기 색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무채색으로 보일 때 자기 선택을 하면서 계속 자기 색의 채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나는 그 기본적인 가치에 집중하고자, 내가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힙해 보이려고 안 하는 게 아니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결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일반적이고 비일반적인 기준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 가장 친한 직장 동료가 있고, 그녀는 평생 의지할만한 이성 친구가 있는 게 부럽지만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여기서 내가 하는 조언이 있다. 만약 결혼을 하고 싶게 된다면 꼭 결혼을 하시라고, 그러나 지금 상태가 좋다면 잘 맞는 사람 만나 동거를 하거나 그것도 싫으면 다른 취미를 잘 찾아보시라고. 윤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혼인 성사의 유무는 오롯이 자기의 욕구에 달린 것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현대의학이 대단하게 발전하지 않는 한, 나는 이제 고작 60여 년을 더 살다 세상을 마감할 것이다. 비약적으로 수명이 늘어 120살까지라고 해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의 25%를 아직 그다지 멋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경제력을 갖춘 첫 그럴싸한 어른줄에 접어들어서도 남이 하니까 하는 짓을 할 순 없다. 나와 애인은 2년 정도 동거를 이어오고 있다. 아파트 전세를 구해서 안정적인 루틴으로 삶을 영위 중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결혼을 계기로 각자의 가족과 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 부디 우리의 하루하루 다를 것 없는 지난한 행복이 결혼을 문제 삼아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식보다 삶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