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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Apr 18. 2023

N년 후 나에게 쓰는 편지

6개월 뒤의 나


이 년 동안 회사에 다녀본 소감은 어때? 합격 메일을 받고 목동 41타워 앞에서 왁!, 소리 지르고 눈물 흘렸을 때의 감동이 여전한가? 지금의 나는 지루한 게임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데도 거금을 들여 시디를 샀기 때문에 억지로 퀘스트를 깨는 기분이야. 서재에 앉아 물건들을 둘러보는데 회사가 아니었다면 구비하지 못했을 것들 천지였어.


사실 지금 집도 그래. 돈과 신분이 없었다면 새 소파, 냉장고, 나무 책상, 모니터는 없었을 거야. 중간 목표 ― 중학생 때부터 훈련을 거쳐 머릿속에 각인 혹은 세뇌된 목표. 남부끄럽지 않은 직업 갖기. 우린 부끄러움의 정의를 강제당했어. ― 를 이루지 못했으면 연애도 결혼도 지금 같지는 않았겠지.


심리 상담 선생님도 이를 자랑스러워해도 좋다고 하는데 나는 속으로 그러는 주제에 완전히 빠지지는 못하고 계속 저항해. 이 삶을 깔봐야, 짓밟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의 세계로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래서, 내가 헌신한 세월을 부정하니까 자기가 파괴돼. 나는 자기파괴적인 자기저항을 하고 있어. 돋보이고 싶으면서 용기는 어째서 적을까? 나를 인정하는 용기가 부족해. 너는 알고 있니?




3년 뒤의 나


등단했는가? 그간 열심히 썼는가? 성의를 다했어? 나는 소설을 쓴다면서 퇴고도 제출에 닥쳐서 완벽하게 하지 않고,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딥다이브, 조사 분석하는 걸 주저해서 독특한 소설을 쓰는 기분을 느끼지 못해. 퇴근 후까지 시간을 쓰는 게 아직은 버거워. 건강한데 내일 죽을 것처럼 최선에 가깝게 사력을 다해야 하니까 말처럼 쉽지 않아. 그리고 내 재목이 유명한 소설가가 될 게 아닌 것일까 봐 검증하는 절차를 스스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겠어.


써야만 해. 쓰고 싶다면 ― 그래서 내 수준을 알아내려면 ― 펜을 잡아야 해. 나 본인이 알법한 이야기만 쓰는 건 곤란해. 머리에 가이드는 정해지지만 요소를 채우기 힘든 세계는 조사하고 경험해서 ― 간접적이라도 ― 차근차근 건설할 필요가 있어.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야? 무엇이 그렇게 무서워? 내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 그게 두려운 거지.

 



8년 뒤의 나


무엇으로 살고 있어? 이제 너랑 내가 나이 차가 좀 나서 혹시나 이 편지가 우습거나 하진 않지? 난 미래의 날 바라보고 있어. 그 모습은 채도가 없어. 이목구비 형상도 흐릿해. 검은 실루엣만 우주로 난 길 따라 멀리서 보일 뿐이야. 마흔이 된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새로 시작한다고 최고는 될 수 없을 것만 같아.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는 수많은 말, 책, 조언, 다짐이 있어도 내가 세워둔 삶의 중간 점검 지점은 십 년 단위 나이가 되었어.


당신은 곧 마흔이겠지. 그래서 이루어 놓은 게 없단 허탈함에 다시 자기 파괴를 할지도 몰라. 그러나 그러지 않아도 돼. 당신에겐 오랜 삶이 남았어. 사고가 없었다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이 있다. 이룬다는 건 내 안의 가치야. 내가 충분한 게 핵심이다. 당신이 사랑하고 그래서 나눈다면 사람들도 좋아해 줄 거야. 남의 눈에 드려고 이루려 하지 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 이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괜찮아 잘 될 거야.




15년 뒤의 나


나는 아내와 아이 ― 또는 아이들 ― 과 편견 없는 대화하는 남편, 아버지를 기대하고 있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면 좋겠어. 대화가 즐거운 아버지라서 각자 젊은 사람 그리고 덜 젊은 사람으로서, 주고받으면서 세상이 세밀해지고 확장했으면 해.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자. 사랑은 배를 줘도, 그 배도 과하지 않아.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아이들이 그걸 알 수 있게끔 사랑을 주세요. 직업과 장래는 후일담이다. 그건 아이들이 결정할 몫이야.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잖아. 조급해하지 말길. 엄격함이 멋이고 원칙이 정론이라고 단정 짓지 않기. 따듯한 구성원이 되기.


힘들 때도 있을 거야. 구속받는다거나, 제약이 있다거나,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거야. 화를 내고 싶을 거야. 그것은 울부짖음, 나는 알아. 슬프고 자존심 상하니 사과하기를 겁박하는 너의 난동...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면 좋겠어. 나은이는 도와줄 거야. 아이들도 그럴 거야. 네 지친 마음을 고백해. 그리고 도움을 구해. 행복해질 수 있어.




20년 뒤의 나


영어가 자유로울지가 궁금하다. 난 지금도 영어가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럼 검색의 범위도 넓고 받아들일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훨씬 늘어날 거잖아?  기술이 발전해서 사실 네 언어 수준과는 상관없이 이미 자유로울 수도 있지. 멀게만 느껴지는 너.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이어져 있을 거야.


너가 안심하고 지내면 좋겠어. 생기는 유지 하면 좋겠어. 아마도 욕망이 기반일 거야. 난 욕망이 확실한 너가 좋아. 그때도 움직이는 현재와 내일로 이어지는 설렘으로 아이처럼 살면 좋겠어. 그게 네게 도움이 될까? 안심을 바라면서 자글자글 마음이 끓으면 좋겠다는 건 자가당착일지도 몰라. 욕심은 부리지 않았으면 해. 이것은 분명해. 욕심은 네 것이 아니야. 남의 시선이야. 주입된 사상을 대상으로 할 거야, 분명히. 늙어가는 너를 사랑하면서 깊어지고 부드러워지고 덜 남겨져가는 삶의 토양에 감사하면서, 하고 있고 하고자 하는 것에 몰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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