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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Jun 29. 2023

철학을 전공한 난 어떻게 금융회사에 들어왔는가?

직무는 경영기획, 데이터 시각화


수 번의 인턴, 계약직이 있었다. 원천징수영수증 기준으로 내 첫 정규직 직장은 여덟 번째였나 그랬다. 보통 정규직 취직을 취업이라고 부르니 여기서도 그리 하겠다. 그 사이 여러 부조리도 겪고 능력 있으면서 친절한 사람을 만났다. 반대로 능력이 없어 인성이 일그러진 사람도 만났다. 보통 회사에서 실력과 인성의 크기는 비례한다. 월등히 뛰어나면 여유가 있어서 정치적으로 굴지 않는다. 임원은 워낙 경쟁적으로 치고 올라간 사람이라 다를 수 있다.


다시 돌아와 내가 금융권에 취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논리력이다. 카카오가 첫 대규모 인턴십을 열었을 때, 그때도 대게 취업에 유리한 동료들이 모였는데, 전형 과제와 면접을 통과한 비결도 논리적인 사고였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알맞은 답변을 하는 게 내 강점이다. 그런데 회사 일이라는 것이, 디자인, 금융, 오퍼레이션, 컴플라이언스, 데이터, 플랫폼 등등 소재가 다양하지 중요한 건 논리력이다. 다루는 재료에만 익숙해지면 구조적인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


카카오는 전환되지 못했고, 좌절 후 이곳저곳 지원하다 나이스 그룹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계열사 중에선 조금 인기가 덜한 곳이었는데, 그래도 고연봉, 여의도에 위치한 괜찮은 회사였다. 면접에서 임원이 물었다. 금융 관련 배경이 없는데 와서 잘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난 그래서 IT회사에서도 관련 지식이 없는 채 시작했지만 논리적인 사고로 새로운 지식을 정리하고 학습하면서 능력을 키웠다고 했다. 난 입사 후 실제로 그리했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성장이 덜한 평가사가 답답했고, 근처의 금융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와서도 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일을 했다. 경영 기획, 그중에서도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담당한다. Tableau라는 국제적으로 니즈도 있고 전문적인 시각화 툴을 전담해 다룬다. 회사가 자산을 늘리는 게 위주라 내 역할이 어느 때에는 사내에서 각광받지 못하지만, 분명히 고난도에 가치가 높은 일이다. 나는 단기간에 이를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그 배경엔 논리력이 있다. IT, 금융, 데이터라는 말이 들어가면 할 수 있는 사람만 하는 거라는 편견을 머릿속에서 제거한 것도 한 몫했다. SQL 쿼리도 사용하는데, 이런 류의 기술은 사실 자동차 운전 같아서 내가 어떻게 차를 몰까 싶지만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강조하고 싶은 건, 난 편하고 효과적으로 직장인으로서의 급여와 잠재력을 올리고 싶어 학습을 선택한 것이지, 이게 누구보다 낫고 좋고의 기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한다면 하는 것이고, 다른 뜻이 있다면 그것대로 좋다. 그러니까, 멋지고 대단하고 전문적이라는 건 막상 해보면 허상이다. 유연한 마음가짐과 논리적인 사고력이면 적어도 사무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소화할 수 있다. 구분 짓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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