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지 모른다.

by 백윤

나도 아직 모른다. 그래서 헤매는 데, 소크라테스가 그랬던가 너 자신을 알라, 라고. 그것은 당신이 무지한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분수를 알라는 게 아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걸, 안다. 내가 트렌드를 따라 하는 건지, 잘나 보이고 싶어서 셔츠와 신발을 고르는지, 이걸 근본적으로 내가 원해서 걸치는지 모른다.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서로 과시 퍼레이드를 이어간다. 아닌 친구를 만나면 이 사람과는 오래가야겠다 싶다. 그만큼 편하고 담백하다. 한국은 트렌드에 지나치게 순종적이다. 무엇이 유행하면 다 그 옷을 입는다. 지금도 연희, 연남, 성수를 다니면 네이버웹툰 남자 주인공 머리를 다들 하고 있다. 무신사에서 모두 사 입는다(혹은 멋있다고 정의된 옷들). 인스타 셀럽식으로 화장해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다들 이쁜 음식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 그럼 나는 묻는다. 왜?. 그렇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한다는데, 이게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냥, 어떻게 보이고 싶으니까 그걸 따라가는 것이다.


학벌, 직장, 연봉, 차, 연애, 결혼, 집, 들이 이걸 따라간다. 왜 거기 살고 싶은지 이유를 모른다. 돈을 벌고 싶다고 하는데, 배달의 민족에서 마라샹궈에 소고기를 원 없이 추가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목적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년에 3억을 벌지만, 직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밖에서 멋지게, 트렌디하게 꾸몄지만, 막상 집에서 인스턴트와 라면으로 매일 때우는 사람이 있다. 사실 장래도 불안하고 마음도 공허하다. 그럼, 왜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고 물질적인 것에만 무게를 두냐고 물으면, 그 질문 자체에 대한 공격성을 띤다. 내가 느끼는 숨겨진 답변은, 그걸 생각하고 살지 않는 게 한국의 룰인데 왜 갑자기 깨어있는 척 묻냐는 것이다. 난 잘난 척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내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묻는 것이다. 내 상태가 어떤지 아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이 마련되는데, 그걸 나누거나 고민할 사람이 참 드물다.


나는 IT라고, 금융이라고, showing off, 하며 과시하는 자들을 본다. 같은 직장인인데 어느 업권에 속해있다고 또 자랑한다. 그럼 정말 그게 좋아서 그러는 건지, 잘나 보이는 게 좋은 건지 구분이 안된다. SNL코리아와 코미디언들이 개설한 유튜브에서 그렇게 비꼬고, 우습다고 말해도 보통 그러고 산다. 과시용 문신을 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나는 차라리 옷에 관심이 없어서 다들 회색빛 옷을 입고 다니던 호주의 어떤 거리와 캐나다가 더 인상적이었다. 관심이 없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캠핑, 독서, 러닝, 크리캣, 럭비를 즐긴다. 한국에선 겨우겨우 거리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삶의 과제 중 하나고, 그래야 위신이 좀 서고, 취미조차도 과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찾아보면 미국은 더 한 사람도 많다(해외도 똑같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도, 캐나다도 남이 좋아하는 것에 치중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얘기는 한국은 그런 사람이 종종 있는 게 아니라, 그러고 사는 게 기본이라고 약속하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머리를 기르네? 옷을 힙하게 입네? 결혼식은 왜 작게 했어?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아? 차는 새로 살 생각이 없어? 신입인데 여유 있어 보인다고 누가 그러더라? 글을 쓴다고? 와 정말 신기하다.


난 그냥 좋아하는 걸 찾아, 그걸 할 뿐이다. 어떤 과시의 욕구도 없다. 내가 좋아해서, 이걸 나누고 싶어서 보여주는 경우는 있어도, 남이 좋아할 만해서 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욕구가 들 때면, 난 거울을 보고 정신 차리라고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