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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Jan 21. 2024

싸구려 꿀단지 속의 꿀벌


내게 주어진 과제는 다음 주에 퇴사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대상은 회사의 동료다. 동료엔 팀장님, 그리고 팀장 위에 있는 실장님이다. 내게 많은 걸 알려준 척척박사 아저씨, 특이한 성씨를 가진 그와 내가 의지했던 몇몇 적은 동료에게 이 사실을 전할 것이다. 본래 10월까지는 근무하다 떠나려고 했지만 남은 시간을 순수하게 내 의지를 위해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회사 생활은 단 한 달.


벗어던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포장하고 싶지 않다. 서점에 가면 매대에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써져 있는 직장인 퇴사 에세이. 그것으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의 여정. 싸구려 인조 꿀단지에 절여져 있던 죽었고 작고 썩은 내 꿀벌 몸뚱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거기서 끄집어내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나는 가짜 꿀을 흠뻑 머금었다. 한번 스테로이드에 손을 대면 죽을 때까지 그 독소가 몸에 남아있는 것처럼 내 체내에서 이게 쉽게 빠져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난 이 젖은 날개를 다시 펼칠 생각이다. 거짓 꿀이 작은 날개 표면을 따라 굳어버려 손가락으로 톡 치면 바스러질지도 모른다. 두려운 추락.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세상, 밀림, 그리고 대지.


내가 지내온 도시의 엘리트주의. 편 가르기. 숫자를 올리기 위한 레이싱. 비교에서 살아남기. 시스템에 대한 순응. 거기에 희생하는 내 인간성. 난 이것을 벗어던진다. 나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연신 반복해 들으면서 그저께 서강대교를 지나오며 내내 울었다.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가수는 음독자살을 기도한 어린 네 자매의 끔찍한 기사를 보고 단 이 분 만에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러한 작사의 배경을 알기 전부터 난 비슷한 사연이 있는 내 어떤 가족을 추억하며 이 노래를 들었고 이따금 눈물을 흘렸다. 내게는 몸을 떨게 하는 작은 울림이 계기가 된다. 울림은 요동치고 죽은 벌을 다시 숨 쉬게 한다. 난 꿀단지를 벗어난다. 내게 놓여진 진짜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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