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출발한 개발협력의 신화

현장에서는 다시 쓰여야 할 맥락들

by 김보영

“우리는 개발도상국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국의 개발협력 관계자들이 해외 컨퍼런스에서 자주 하는 이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진심을 의심한 적은 없다. 그 말 속에는 진심어린 공감이 담겨 있었고, 또한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과 민주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골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현실은 그 말이 가진 낭만 너머의 구조적 한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한국은 개발의 성공 신화를 등에 업고 국제개발협력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했다. 과거의 원조 수혜국에서 이제는 원조 공여국으로,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은 그 상징적 전환점이었다. 정책 문서들은 “한국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말로 가득했고, 국내 개발협력 교육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자랑스러운 모델로 삼았다. 문제는 바로 그 신화가 협력의 언어를 단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모든 나라가 한국처럼 발전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듯한 전제가 깔려 있었다.


몽골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마을 주민 역량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의 새마을운동 사례를 벤치마킹했고, 주민 참여를 강조하며 회의와 교육을 열었다. 하지만 한참 설명을 듣던 어느 마을 대표가 물었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죠?” 그 질문은 단순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가 들고 온 ‘정답’은 주민에게는 질문조차 허락하지 않는 구조였다.


개발협력의 초기 한국 모델은 효율과 성과 중심의 사고에서 출발했다. 공무원 중심의 의사결정,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 계획, 한국어로만 쓰인 보고서와 교육자료. 그 모든 것들이 ‘전달’에는 능했지만, ‘이해’와 ‘소통’에는 취약했다. 그리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현지 맥락을 놓치곤 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한국이 개발협력을 시작할 때, 정말 ‘협력’을 생각했는가? 아니면 ‘전달’을 목표로 삼았던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성공 경험을 세계와 나누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우리가 처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지, 보편적 해법은 아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조언을 수백만 명에게 똑같이 적용하듯, 개발 경험을 그대로 수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현지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은 여전히 개발협력 분야에서 배워가는 중이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해’보다 앞선 ‘전달’의 태도를 재고하는 것이다. 현장의 주민은 수혜자가 아니라 동등한 주체이며, 그들의 삶의 맥락을 모른 채 제시하는 해법은 착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폭력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개발협력의 신화는 이제 다시 쓰여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인정하는 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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