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프로젝트, 폭력적 개입

by 김보영

“우리는 이 나라 사람들을 도우러 왔다.”


이 말은 내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다. 한국에서 온 공무원, NGO 실무자, 그리고 단기 봉사자들은 모두 선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먼 나라까지 날아왔고, 대부분은 자신의 사명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때로는, 아니 자주, 상대방의 삶에 대한 폭력적 개입이 되곤 했다.


나는 한 가축 위생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몽골의 유목민들에게 백신 접종과 가축 건강 관리법을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업 초기, 한국 측 전문가들은 몽골의 낙후된 수의 시스템을 비판하며 “선진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제작한 교육자료를 그대로 가져왔고, 몽골어 번역본도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건 우리한테 안 맞아요.”

지역 수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회의록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회의는 형식적으로 ‘의견 수렴’을 진행했고, 우리는 계획대로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백신 공급 일정, 교육장 위치, 전달 방식—all 한국이 정한 기준대로였다. 그리고 1년 후, 그 지역에는 백신이 남아돌았고, 교육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 선한 태도 뒤에는 질문이 없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라는 물음,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존중, ‘우리는 잘못할 수도 있다’는 겸손이 없었다. 프로젝트는 주민의 욕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답을 전달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다.


특히 정부기관과 협력할 때, 이런 구조적 폭력성은 더 강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기준은 종종 ‘정상’으로 간주되고, 현지 정부는 ‘지도를 받아야 할 파트너’로 위치 지워진다. 회의에서는 현지 공무원이 조용히 앉아 있고, 한국 측 발표자는 성과지표와 기대효과를 열거한다. 그 회의에서 오간 말들 중 진짜 협력은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폭력은 꼭 소리치거나 강제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착한 프로젝트’는 종종 대상자의 삶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권리를 앗아간다.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고, 거절은 ‘비협조’로 간주된다. 우리는 회의에서 ‘참여’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동의를 강요한다. 선의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성 없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착한 프로젝트란 없다. 오직 ‘관계 속에서 성찰하는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 해도, 그것이 일방적인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건 협력이 아니라 개입이다. 협력이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후 나는 회의에서 자주 이렇게 말하게 됐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무엇을 해주러 온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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