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인데 '원조'나 '지원'이라는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네?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수혜자’라는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사용했다. 회의 자료에도, 보고서에도, 사업계획서에도 그 단어는 당연한 듯 박혀 있었다. 마치 그 단어 안에는 이 사업의 목적과 방향이 모두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고, 그들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주는 손과 받는 손. 그렇게 관계는 단순하게 설정되었고, 아무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의 어색함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수혜자’라는 말은 지나치게 말이 없었다. 그 안에는 개인의 이름도, 삶의 맥락도, 주체적인 판단도 들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수혜자’로 부르는 순간, 그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고정되었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권리는 사라졌다. 심지어 그가 그 도움을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를 수혜자로 분류했고, 그렇게 기록했다. 그의 동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업의 목적과 방향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가진 구조적인 폭력성은 미묘하다. 그것은 명령하지 않지만 통제하고, 요구하지 않지만 프레임을 만든다. 도움을 준다는 명분은 대체로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자주 권력이 숨어 있다. ‘수혜자’는 우리가 계획한 방향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예산을 받기 위해서는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성과지표에 맞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때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개발협력의 문법 속에서는 ‘감사의 표정’도 일종의 조건처럼 작동한다.
나는 몽골의 한 마을에서 축산개량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엔 정부 관계자와 회의를 거쳐, 해당 지역 주민들을 ‘수혜자’로 지정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정해진 예산과 일정에 따라 가축 사육 기술을 전수하고, 백신을 제공하며, 사료 공급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부 주민은 말했다. “왜 우리에게 이걸 주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필요한 건 이게 아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회의록에 담기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수혜자로 불렀고, 그 해의 보고서에는 “총 XX명의 수혜자에게 서비스 제공 완료”라는 문장이 인쇄되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남성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가 뭘 원하는지는 안 물어보네요. 그냥 필요한 걸 주고 가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제공했을 뿐이다. 그가 말한 불편함은 ‘수혜자’라는 단어가 만든 벽을 꿰뚫는 목소리였다.
‘수혜자’라는 단어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 구조를 전제하고, 관계의 위계를 고정하며, 인간을 대상화하는 일종의 기호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악의로 쓰인 것은 아니다. 행정적 편의나 보고서 작성의 필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어 하나가 만드는 현실의 힘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그 단어가 구조화한 관계 안에서, 누군가는 항상 주는 자의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끝까지 받는 자의 위치에 머물게 된다.
나는 그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름을 부르고, 공동체를 말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개발은 타인에게 주는 일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다. 언어부터 달라져야 구조도 바뀐다. ‘수혜자’라는 단어를 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