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없는 전문가들

by 김보영

개발협력 현장에는 ‘전문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정부 기관이나 NGO, 국제기구, 용역회사에서 파견되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방향을 결정한다. 명함에는 “개발전문가”, “교육전문가”, “평가전문가” 같은 직함이 붙어 있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은 아프리카 관련 연구를 했던 사람이 몽골 교육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사람은 몽골을 방문한 적도 없었고, 몽골어도 전혀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회의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효과가 있었어요.” 마치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업 시작 전에 단 3일만 현장을 다녀왔고, 주민들과는 통역을 통해 짧은 인터뷰만 했다. 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사업을 설계했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맞지 않았다. 실제 상황을 잘 아는 현지 직원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지만, “그건 본부 방침입니다”라는 말에 묻혀버렸다.


현장에서 전문가들은 힘이 세다. 그들이 쓰는 보고서와 계획서는 곧바로 예산과 실행으로 연결된다. 문제는 그 계획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건 잘못됐어요”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는 ‘전문가’이고, 우리는 ‘현장 인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전문성이란 무엇일까? 많이 배운 사람? 영어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 회의에서 유창하게 발표하는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전문가는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현장은 늘 변한다. 마을의 상황도, 주민의 생각도, 날씨도, 예산도 매번 달라진다. 이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숫자와 표로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개발협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종이 위의 전문성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나 역시 때로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말이 부담스러웠다. 현장은 나를 계속 질문하게 만들었고, 나의 확신을 흔들었다.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국 나를 더 깊이 있게 만들었다. 진짜 전문가는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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